유럽여행(2011.6.30-7.29)

[유럽] 7월 21일 - 베를린 (쿠담 거리, 프리드리히 거리)

아는사람 2011. 8. 28. 22:39


7월 21일(목)
-쿠담 거리, 프리드리히 거리


이날은 온종일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아침 일찍 쿠담 거리에 갔다. 옛 서베를린의 가장 번화한 쇼핑가로 유명한 곳이다.



너무 이른 시각에 찾아갔던 것이어서 문을 연 상점은 거의 없었다. 



다른 상점과 마찬가지로 문이 닫혀있던 한 음반가게를 살펴보니 파울 칼크브레너의 신보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재작년이었던가,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바로 이 DJ겸 일렉트로니카 뮤지션인 파울 칼크브레너가 주연한 [베를린 콜링]이란 영화를 워낙 감명 깊게 보았기에, 이곳에서는 아니지만 베를린을 떠나기 전 마지막 날 다른 음반 가게에서 이 신보를 사서 돌아왔다.  



쿠담 거리에 있던 것으로 기억되는, 특이한 동상.



저녁 즈음에 다시 와서 상점들이 문을 연 풍경을 살펴보기로 하고, 버스에 올라탔다. 베를린에도 런던처럼 이층버스가 있었다.



이층버스를 타고 지나가며 다시 마주한 전승기념탑.



이곳은 어디였는지 잘 모르겠다.



이곳 역시... 무슨 문화원이었던 것 같은데 잘 기억나지 않는다.



국회의사당.



그리고는 다시 브란덴부르크 문으로 왔다. ㅎㅎ 숙소에서 가까워서 자주 찾아갔던 곳이다.



마찬가지로 다시금 찾은 유대인 학살 기억 조형물. 



이곳 지하에 있던 박물관을 둘러보려고 시간 맞춰 갔던 것이지만, 입장시각 10분 전에 갑자기 정체 모를 단체 관광객이 수십 명 들이닥쳐서 길게 줄을 늘어서는 바람에... 그냥 발걸음을 돌렸다. 앞서 말했듯 이날은 온종일 비가 부슬부슬 내렸고, 비가 내리니까 이전에 브뤼헤와 암스테르담에서 고생했던 기억이 되살아나서 웬만하면 바깥에 오래 서 있고 싶지가 않았다.




유대인 학살 기억 조형물 바로 옆에 있던, 베를린 경찰과 관련된 건물이었던 것 같은데 정확히 그 정체는 모르겠다.



그 근처에 한나 아렌트의 이름을 딴 거리가 있어서 반가운 마음에 찍었다. 아직 제대로 읽어본 책은 없지만, 이번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꼭 읽어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주변을 둘러보다가 비바람을 피해 간 곳은 박물관섬이었다. 비가 조금만 와도 성질이 날카로워졌기에 역시 밖을 돌아다니기보다는 그냥 어디건 안에 들어가 있는 게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박물관섬에 가려고 역에서 내려서 걷던 중에 우연히 굉장한 서점을 발견하기도 했다. 예술서적 전문 서점이었는데... 그야말로 그 규모부터 그 안에 비치된 책의 질까지, 무엇이건 대단하지 않은 면이 없었다. 워낙 다양하고 질 좋은 책이 많이 있기도 했거니와, 가격도 한국에서 파는 그 말도 안 되는 가격에 비해서는 싸게 여겨졌다. 특히 할인 판매를 하는 책이 많아서 상대적으로 그 진입 장벽이 낮게 여겨졌다. 

아무튼 그렇게 박물관섬에 도착해서 가장 가고 싶었던 페르가몬 박물관 앞까지 갔지만, 그곳에는 유대인 학살 기억 조형물에 있던 것보다 훨씬 더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기다리며 맞는 비나 돌아다니며 맞는 비나 그게 그것일 것 같았다. 처음에는 그냥 기다릴 생각이었지만 기다리다 보니 실제로 꽤 비를 많이 맞아서 그냥 바깥 거리를 돌아다니기로 마음을 바꿨다.



그렇게 해서 갔던 곳은 프리드리히 거리. 숙소 근처이기도 했고, 또 한 번도 들러보지 못한 곳이었으며, 무엇보다도 근처에 흥미로운 상점이 많다고 해서 안에 들어가서 시간을 보낼 수 있으리란 생각으로 갔다. 

과연 프리드리히 거리에는 명품 상점도 많았고, 영어 서적만 전문으로 파는 서점이나 교보문고에 필적하는 규모의 대형 서점/음반가게 등 내가 관심을 두고 볼 수 있는 곳도 여럿 있었다. 

프리드리히 거리와 운터 덴 린덴이 맞물리는 지점에는 위 사진에서 볼 수 있듯 '어퍼 이스트사이드 베를린'이라고 표시가 되어 있었다. 



[바스터즈Inglourious Basterds]로 칸에서 남우주연상을 탄 크리스토프 왈츠! 독일에서는 그런 크리스토프 왈츠가 가전제품 광고를 하는구나, 싶어서 신기해서 찍었다.  

첫 이틀간 제법 많은 곳을 둘러보았으니 이날만큼은 그냥 쉬어도 상관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가 오니 도저히 돌아다니고 싶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묵는 곳은 홀로 쓰는 최고급 호텔의 객실이 아니라 다른 룸메이트와 함께 쓰는 호스텔 도미토리였기에... 숙소에서 가만히 쉬는 게 또 그리 편하지만도 않았다. 다른 여행객과 정보도 교환하고 더 친하게 지낼 수 있었으면 또 좋았으련만, 그런 일은 또 생각처럼 잘되지 않았다.

점심을 간단히 해결하고 얼마간 쉬다가 다시금 나왔다.



정확히 어디였는지는 잊었지만, 한 지하철역(U반) 입구에 이러한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날 나는 전날 갔다가 실망했던 로자 룩셈부르크 거리와 비슷한, 개성적이고 독특한 상점과 카페가 많다던 또 다른 거리에 갔는데, 때마침 역에서 내려서 올라가 보니 비바람이 너무 거세게 불어서 아무 구경도 못하고 뒤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또 찾아갔던 곳은, 숙소에서 쉬는 동안 따로 알아본 유명한 서점이었다. 오전에 우연히 지나쳤던 서점이 워낙 인상 깊었기에 한번 일부러 괜찮은 서점 한 곳에 찾아가서 원래 평균적인 서점의 수준이 그렇게 높은 것인지 알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곳이 바로 그 서점이다. 얼핏 보기에는 허름해 보이지만, 베를린의 유명한 상점 대부분이 그렇듯 이곳 역시 겉에서 보는 것보다 한 10배 정도는 대단한 내부 공간을 자랑하는 곳이었다. 전철역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어 찾아가기도 쉬웠고, 결정적으로 앞서 보았던 서점만큼이나 대단한 면모를 자랑했다. 장서량도 워낙 많았고, 책 자체도 그저 내가 아는 바만 놓고 견주어 보아도 엄청나게 여겨지는 책들이 수두룩했다. 독일어를 알았더라면, 그리고 내 안목이 조금 더 뛰어났더라면, 혹은 내가 경제적으로 자립한 사람이었다면 이곳에서 적어도 두툼한 책 서너 권은 샀을 것 같다. 

나는 학생이었던 터라 이곳에서는 그냥 구경만 하고 나중에 다른 곳에서 더 합리적이고 신중한 선택 과정을 거쳐 몇 권의 책을 사기는 했지만, 만약 자금적인 여유가 있다면, 예술 어느 분야에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이 서점에서 그야말로 쉴 새 없는 지름신의 유혹을 받게 될 것이다. 유럽에 막상 가서 보니 한국과 견주어볼 때 여러모로 실망스러운 부분도 있기는 했지만, 서적과 관련된 면이라면 어느 것이건 다 훌륭하게 여겨졌다. 파리에서 보았던 철학 잡지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베를린에서 그렇듯 여러 훌륭한 서점을 마주하고 나니 유럽인들의 진가가 어디에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서점을 다 둘러본 후, 다시금 쿠담 거리로 왔다. 비가 여전히 내리기는 했지만 이제는 박물관 문도 아예 닫을 시점이었기에 더욱 마음 편히 거리를 활보할 수 있었다. 상점 문은 대부분 열려 있었지만 딱히 쇼핑에 뜻이 있던 것은 아니어서 그리 열심히 둘러보지는 않았다.

쿠담 거리는 개인적으로 큰 감흥이 이는 곳은 아니었다. 베를린의 다른 곳처럼 이곳 역시 너무 크고 멀리 퍼져 있다는 감상이 우선 들어서 그냥 걷는 일 자체가 사막을 걷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막처럼 드넓고 황량한 번화가를 걷다 보니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되었다.



아침과 점심을 비교적 간단히 해결했기에, 저녁 식사는 조금 근사하게 먹자는 생각에 쿠담 거리에 있던 제법 괜찮은 스페인 식당에 들어갔다. 



스페인식 스프를 전채 요리로, 야채를 곁들인 스테이크를 메인으로 주문하고 맥주를 곁들여 빵과 함께 먹었다. 약간 비쌌고 맛도 그렇게까지 훌륭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런던에서 고생하며 먹던 음식보다는 훨씬 나았다. 그리고 어쨌든 따뜻한 음식을 먹고 나니 마음이 편해지고 기운이 났다.



쿠담 거리에 있던 포스터. 앞선 여행기에서 [에비타]가 베를린 스타츠오퍼의 공연이라고 썼는데, 지금 이 포스터를 보니 도이치오퍼의 공연이다. 이전 여행기를 읽은 분들은 적당히 살펴주시길.


이렇게 하루 일정이 또 끝났다. 이날부터는 한국인 룸메이트가 계속 들어왔기에 편하면서도 더 불편하게 지냈다. 호스텔 측에서는 왜 그렇듯 새삼스러운 배려를 해주는 것인지 모르겠다. 물론 좋은 면도 있지만, 외국에서 굳이 호스텔을 숙소로 택한 사람이라면 같은 나라 사람이 아니더라도 함께 지낼 의지가 있는 것으로 생각해도 될 텐데. 약간 아쉬웠다.

베를린에서 벌써 나흘째 잠을 청하는 것이었음에도, 여전히 이 도시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생각만 들었다. 주요 관광지는 거의 다 둘러본 셈이었기에 어디를 둘러보아야 할지 막막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