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백/기타 등등

HONG KONG

아는사람 2010. 2. 24. 01:19


2월 11일부터 18일까지, 7박 8일 일정으로 홍콩에 다녀왔다. 예전에 처음 홍콩에 갔을 때는 정말 숨이 막힐 정도로 일정을 꽉 짜서 갔는데, 이번에는 거의 아무런 일정도 세우지 않고 갔다. 그도 그럴 것이 예전에 꽉 짜인 일정을 짜서 가보니 그대로 움직이는 것이 갑갑하게 느껴지고, 또 여러 변수가 닥치면서 그대로 일정을 따르는 것에 무리가 따랐으며 나중에는 일정이고 뭐고 그냥 멋대로 돌아다녔는데 그것도 그리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그렇듯 더 자유롭게 돌아다니고자 마음을 먹었기에 카메라도 챙겨가지 않으려 했지만 그래도 일단 하나 챙겨갔다. 우습게도 그렇게 챙겨간 카메라는 도착한 첫날 고장이 났다. 엄밀히 말하자면 카메라가 고장 났다기보다는 그 안에 있던 메모리카드가 고장 난 것이지만, 어쨌든 그렇게 고장이 나니 홀가분한 마음이 되었다. 어차피 사진 찍는 데 별 소질도 없고, 사진기에 익숙하지 않은 채로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는다는 것이 사람을 얼마나 구속하는지 여러 차례 경험으로 터득한 바가 있으므로, 더 가볍고 좋은 기분으로 돌아다닐 수 있었다.

그래도 가끔 인상적인 풍경을 사진으로 담고 싶은 순간이 있기는 했는데, 그때는 휴대폰의 사진 기능을 이용했다. 약간의 후보정을 거치고도 상태가 별로 좋지 않은 것은 사진가의 실력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진기가 별로 안 좋기 때문이기도 하다는 변명을 일단 해야겠다! 


1. 문화


(홍콩문화센터와 더불어 홍콩의 대표적인 문화 공간, 프린지 클럽.)

이번 여행은 거의 모든 면에서 흡족했지만, 그중에서도 한국에서 하기 어려운 측면으로만 따져보자면 가장 큰 만족을 표할 수 있을 법한 분야는 바로 문화 체험일 것이다. 

일단 홍콩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말러 교향곡 3번 실황을 볼 기회가 첫날 있었고,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학생 할인이 50%나 적용되는 공연이었는데, 한국에서 온 학생도 할인을 받을 수 있다고 해서 꽤 좋은 좌석을 저렴한 가격으로 차지하고 공연을 보았다 :)

사실 예전에 처음 홍콩을 방문했을 때에도 홍콩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챙겨 보기는 했다. 그때는 일본 현대 작곡가의 곡(타이코 드럼과 파이프 오르간 협주곡)과 드뷔시의 「바다La Mer」를 연주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오케스트라 연주만 놓고 보자면 다소 둔탁하고 지루한 편이었다. 그때 홍콩 필하모닉의 상임 지휘자로 있던 에도 데 바르트Edo de Waart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어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고, 그래서 큰 실망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빛나는 순간이 더러 있었고, 어쨌든 말러 3번 교향곡을 실황으로 듣는 것은 그리 흔치 않은 경험이므로, 그것만으로도 흡족했다. 


(말러 3번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부분 - '딩동딩동!')

그날은 홍콩 HMV 매장에서 말러 탄생 150주년 기념 그라모폰 특별판을 보고 덥석 사기도 했다. 서울시향의 말러 사이클이 올해 시작된 것도 그렇고, 홍콩 필하모닉의 공연도 그렇고 레퍼토리로 말러 교향곡을 선정한 공연을 왜 그렇게 자주 접하게 되는지 신기해하기만 했는데,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던 셈이다.



(배두나의 [공기인형空氣人形]을 상영 중이던 홍콩의 '브로드웨이 시네마테크')

영화도 한 편 보았다. 여행 기간에 홍콩의 대형 쇼핑몰에 있는 여러 영화관에서는 홍콩 메이저 영화와 할리우드 영화를 거의 동등한 비율로 상영하고 있었다. 기왕이면 그곳에서만 볼 수 있는 영화를 보고 싶어서, 처음에는 [72 Tenants of Prosperity72家租客]란 영화를 보려고 했다. [무간도無間道]에 나왔던 증지위의 낯익은 얼굴이 보이기도 하고, 포스터도 흥미롭게 생기고, 우리나라에는 좀처럼 개봉할 수 없을 것 같은 영화로 여겨져서...


([72 Tenants of Prosperity]의 포스터.)

그런데! 몽콕의 시장을 둘러보고 내려오던 차에 론리 플래닛의 조언에 따라 들러본 영화관 '브로드웨이 시네마테크'에서 낯익은 제목의 영화를 상영하고 있었다. [Air Doll]! 혹시나 하고 주변을 살펴보니 배두나의 얼굴이 있는 포스터가 보였고, 고레아다 히로카즈 감독의 사진이 실린 기사가 붙어 있었다. 

에어 돌, 즉 [공기인형空氣人形]은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했을 때 알게 된 작품이고, 국내 개봉이 바로 되지 않아 은근히 기다려왔던 작품이었는데, 홍콩에서 이 영화가 상영하는 것을 보니 운명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보았고, 꽤 기대치가 높았음에도 흡족하게 극장을 나설 수 있었다. 별점으로 굳이 평가를 하자면 별 네 개 반 정도는 선뜻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브로드웨이 시네마테크라는 영화관은 '시네마테크'라는 이름이 명시하듯 예술영화나 독립영화 혹은 고전영화를 상영하는 공간이었지만, 동시에 메이저 영화를 비슷한 비율로 상영해주는 곳이기도 했다. 시설은 그럭저럭 괜찮았고, 관람료는 우리나라 돈으로 약 10,000원 정도였다. 봉준호 감독의 특별전을 안내하는 팸플릿 같은 것이 있어서 반갑기도 했다. :)

DVD 몇 장과 CD 몇 장을 사기도 했다. 어느 한 레코드 가게는 매장을 곧 옮기는 것인지 'Removal Sale'을 하고 있었는데, CD 한 장을 우리나라 돈으로 1,500원에서 3,000원가량에 팔고 있었다. 몇몇 낯익은 힙합 아티스트의 음반을 발견할 수 있어서 여러 장 사왔다. DVD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제법 괜찮은 가격으로 양질의 상품을 판매하는 곳이 더러 있었다. 홍콩의 DVD 지역코드가 한국과 같은 3번 아니던가! 벼르고 벼르던 [브로크백 마운틴Brokeback Mountain]을 이번에 드디어 구했고, 칸 영화제 60주년 기념으로 기획된 옴니버스 영화 [그들 각자의 영화관Chacun Son Cinema]의 DVD도 구해왔다.



(홍콩 우주 박물관.)

박물관도 한 곳 둘러보았다. 원래 계획은 홍콩에 있는 박물관을 하루에 다 몰아서 둘러보는 것이었지만, 처음 들른 홍콩 예술 박물관 한 곳만으로도 볼 것이 넘쳐나서, 그리고 또 조금 지치기도 해서 결국 이곳 한 곳만 보고 말았다. 총 4층으로 된 건물에는 중국과 홍콩의 현대미술부터 시작해서 홍콩 관련 기획전이나 전통 공예품 등을 모아놓은 공간 등등 다양한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미술에는 문외한에 가깝지만, 그저 별 감식안 없이 바라보아도 진기하고 좋은 작품이 꽤 많이 있어서 좋았다. 

사실 이번에 홍콩에 가면 정말 가보고 싶었던 박물관은 홍콩 우주 박물관이었다. 위 사진에서 볼 수 있듯 반구형의 외관만으로도 매력적인 공간이다. 여유로운 일정 속에서 그 입구에조차 가보지 못했다는 것이 조금 아쉽다. 우디 앨런의 [맨하탄Manhattan]에 나온 그 매혹적인 우주 박물관의 파노라마 비슷한 것을 볼 수 있으리라 기대했건만. 아마 가면 볼 수 있을 것이다. 안 가봐서 확언은 못하겠지만.

프린지 클럽에도 가보았다. 홍콩 섬의 대표적인 유흥가로 볼 수 있는 란콰이퐁의 끝 부근에 있는 프린지 클럽은 재즈를 비롯한 여러 음악 장르의 공연이 성사되고, 또 얼마 전에 문을 닫기는 했지만 M at the Fringe라는 유명한 레스토랑이 있는 곳으로도 널리 알려진 공간이다. 불행히도 내가 찾아갔을 때가 설 연휴 기간이었고, 이곳은 설 연휴 기간 때 쉬는 몇 안 되는 홍콩의 명소 중 한 곳이었으므로 내부를 구경하지는 못했다.  미리 계획을 하지 않고 간 여행이 아쉬운 점은 이렇듯 가는 날이 장날인 경우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멋진 외관을 보는 것만으로도 흡족했고, 그리 아쉽지는 않았다.


2. 쇼핑


('똑똑한 사람은 비평한다. 멍청한 사람은 창조한다. 멍청해져라!' -디젤)

지난번 홍콩 여행과 이번 홍콩 여행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쇼핑'에 있을 것이다. 지난번에는 관광이 위주가 되어 쇼핑몰 같은 곳은 이동 경로 정도로만 생각했던 반면, 이번에는 쇼핑몰 역시 적극적인 관광지로 활용하여 둘러보았다. 그렇다고 해서 명품 가방, 시계, 구두 등을 줄줄이 사서 돌아왔다는 얘기는 아니다. 야시장도 둘러보고, 새시장이나 금붕어 시장 같은 곳 역시 구경하면서 이러한 쇼핑 공간이 홍콩의 빼놓을 수 없는 요소임을 몸으로 느낀 정도라고나 할까.

우선 앞서 언급했듯 CD, DVD 같은 품목을 샀고, 기본적인 아이템으로 여길 수 있을 법한 옷이나 신발 등을 샀다. 우리나라에도 곧 문을 열 예정이라고 하는 스웨덴의 H&M 매장이 홍콩에는 여러 군데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ZARA에서처럼 스스로 옷을 둘러보고 고르고 입어볼 수 있어서 딱 내 성향에 맞았다. 백화점에 가면 옷을 입어보라고 권하고 옆에 서서 점원이 지켜보지 않나. 그러한 것이 지금은 예전처럼 그렇게까지 불편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조금 신경이 쓰이는 것은 사실이다. H&M은 가격도 상당히 저렴한 편이고, 옷의 질 역시 비교적 양호한 편인데다가, 기본에 충실한 옷이 위주지만 제법 파격적인 색상의 옷도 종종 있어서 많은 이들을 사로잡는 게 당연한 브랜드로 여겨졌다.

12월 무렵부터 시작하는 겨울 세일의 기간이 통상 설 연휴 무렵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되어 있어, 내가 갔던 시점에도 여전히 여러 상점에서 큰 폭으로 세일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홍콩의 쇼핑몰은 미국이나 영국의 백화점처럼(영등포 타임스퀘어처럼) 대부분 층수는 그리 높지 않지만 양옆으로 길게 뻗어 있는 편이다. 그런데 그 규모가 정말 다들 장난이 아니어서, 홍콩에 있는 쇼핑몰만 마음먹고 제대로 돌아보려고 해도 일주일은 걸리지 않을까 감히 짐작해본다. 그러한 공간이 온통 'FINAL SALE' 내지는 'UP TO 70%' 같은 문구로 둘러싸여 있다고 생각해보라! 

아무튼 그래서 그 좋은 쇼핑의 기회를 최대한 잘 누려보려고 했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 줄 선물을 제대로 못 샀다는 것. 일단 누구에게 선물을 줄지 명확히 생각해보지를 않았고, 가서도 종종 생각나는 사람이 있기는 했지만 그 사람에게 무엇을 주어야 할지 머릿속에 잘 떠오르지가 않았다. 마지막 날 공항에서 가장 보편적인 선물 몇 가지를 사려고 했지만, 어쩌다 보니 공항에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탑승 게이트를 찾고 비행기에 올라타기 바빴다. 다음에 여행을 간다면 꼭 선물을 사는 일을 제대로 한번 해보고 싶다. 그렇게 챙길 사람이 많은 것도 아니지 않나!

선물로 하면 좋을 것 같았던 내 쇼핑 목록 중에는 홍차가 있다. 예전에 가서 먹어보았던 페닌슐라 호텔의 애프터눈 티를 유념에 둔 채, 호텔 부티크에서 얼 그레이를 한 상자 사온 것이다. 집에 와서 시음해보니 그때 그 황홀했던 맛 그대로였다. 우리나라 백화점 수입품 코너에서 파는 웬만한 홍차 가격대보다 비교적 저렴한 편이었고, 맛은 그보다 전혀 뒤지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훨씬 낫다고 감히 짐작해본다.

그 밖에도 시장에서 홍콩과 관련된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몇 장 사오기도 했고, 조금만 먹어도 목이 심하게 메는 마카오산 아몬드 쿠키를 사오기도 했다. 아무튼 정말이지 쇼핑하기에는 여러모로 좋은 공간임이 분명하다는 감상이 들었다. 환율이 예전보다 올라서 그렇게까지 저렴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세일 폭을 참작하면 비싸다고 보기는 힘들 것이다. 


3. 관광

역시 여행의 핵심은 관광 아니겠는가. 예전 홍콩행 때 시간이 빠듯하다는 이유로 못 보았던 홍콩 섬 남부의 여러 명소, 몽콕의 시장 거리 등을 여유 있게 천천히 둘러보았고, 음식 역시 패스트푸드를 먹을 때조차 홍콩 현지식 패스트푸드점을 찾아서 먹었을 정도로 이 나라의 향취가 물씬 풍기는 음식을 주로 먹었다. 물론 끼니 같은 경우 주로 혼자 해결한 것이어서 그만큼 다양한 폭의 음식을 소화해내기는 힘들었지만 그래도.



(몽콕의 거리. 낡은 건물이 숨 막히게 붙어 있다)



(홍콩 섬의 트램.)

음식 사진은 따로 찍지 않아 하나도 없다.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사진을 찍어서 올릴 만큼 감탄이 나오는 음식은 없었다. :) 어쨌든 내가 가장 즐겁게 취했던 음식은, 비교적 날이 쌀쌀했음에도 그 시원한 맛이 여전히 달가웠던 망고 주스다. 우리나라의 망고 주스와는 비교할 수 없는 상쾌함이 가장 큰 매력이었다. 크리스탈 제이드에서 먹어본 소룡포와 탄탄면도 나쁘지 않았고, JW 메리어트 호텔의 애프터눈 티 뷔페도 괜찮았다. 내가 주로 끼니를 해결한 여러 쇼핑몰의 푸드코트에서 파는 홍콩 현지식도 나에게는 좋았는데, 다만 7박 8일 이상 체류하면서 그러한 음식만 먹기에는 조금 느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교통수단도 다양하게 이용해보았다. 2층 버스부터 시작해서 트램, 스타페리, 그리고 마카오까지 가는 대형 선박까지 홍콩에서 이용해볼 수 있는 웬만한 교통수단은 다 이용해본 것이다. 택시 하나만 제대로 못 타본 셈인데, 영어가 가장 잘 안 통하는 상대가 바로 홍콩의 택시 기사란 얘기를 들은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굳이 택시를 타고 갈 만한 곳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됐다. 

홍콩의 여러 교통수단 중 가장 전통적이고 인상적인 것에 속한다고 볼 수 있을 법한 트램은, 매우 낡은 전동차이다. 겉면이 알록달록하고 명품 광고로 치장된 것이 많아서 실제로 타보기 전에는 낡았다는 것을 실감하기가 어렵다. 말 그대로 달달 거리며 달리고 휘어질 때마다 진동이 장난이 아니다. 원래 해안도로를 따라 선로가 난 것이어서 그만큼 심한 진동이 보장된다. 지금은 간척 사업 때문에 해안 풍경이 보이지는 않는다. 탑승료는 전 구간 2달러(홍콩 달러로), 그러니까 300원 정도인 셈이다. 저렴한 만큼 거의 항상 만석이기에 가이드북에서 추천하는 '2층 맨 앞좌석'을 차지하고 앉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그 부근에서 창밖으로 내다보는 풍경은 과연 좋았다.

돌아다니면서 보니 쇼핑뿐만 아니라 관광하기에도 홍콩은 굉장히 쾌적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는 바로 굳이 현지어인 광둥어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거의 어느 지역에서나 교통편부터 음식문제까지 다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영어가 그만큼 잘 통하였는데, 대형 쇼핑몰이나 유명 관광지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그냥 길거리에서 만나는 시민 중에도 친절하게 영어로 말을 건네거나 받아주는 이들이 많았다. 많은 이들에게 말을 건 것은 아니므로 확신은 못하겠지만, 먼 이국 땅에 와서 영어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다소 안이한 관광객에게 그만큼 친절한 지역은 많지 않으리라 짐작한다. 물론 이곳이 예전에 영국 식민지였고 또 금융(자본주의)의 중심지라는 데에서 얼마든지 그 이유를 찾아볼 수야 있겠지만.



(마카오의 한 성당 내부. 예수 그리스도를 보는 사람들.)



(마카오의 한 골목길.)

홍콩 여행에서 가장 부담이 될법한 관광지는 마카오일 것이다. 마카오까지는 홍콩 섬에서 배를 타고 1시간 남짓만 가면 도착할 수 있는 곳이지만, 홍콩에서 건너갈 때 출입국 신고서를 작성해야 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홍콩과는 달리 지하철이 없어서 교통수단을 잘 고려해야 한다는 점 등 여러모로 불편한 점이 있기 때문이다. 당일 여행으로 소화하기에는 볼 것이 많은 편인 데다가 카지노 이용을 할 생각이라면 당연히 이곳에 따로 숙소를 잡는 것까지 생각해보아야 하기에 더더욱 부담이 큰 여행지라고 볼 수 있다. 

다행히도 나는 네이버 여행 카페 '포에버 홍콩'에서 미리 일정이 겹치는 이들과 연락을 해서 마카오에 가는 동행 인원을 구할 수 있었다. 그러한 인원을 구해놓으니 자연스레 마카오에 관한 정보를 얻고 배우는 데 더더욱 게을러졌고, 결과적으로 동행한 이들의 인솔에 따라 매우 수동적으로(그러나 나름대로 즐겁게) 마카오를 둘러보았다. 마카오의 핵심 지역은 대부분 다 둘러볼 수 있었기에 나쁘지 않았다. 

마카오에 가면 꼭 가보리라 생각했던, 드라마 [궁]에도 나온 적이 있다는, 한국에도 지점이 있는, 로드 스토우 베이커리Lord Stow's Bakery에도 가보았다. 에그 타르트의 창조자로 유명한 이가 설립한 이 베이커리의 본점이 바로 마카오의 자그마한 마을인 꼴로안 빌리지에 있었던 것. 설날이었던 터라 가게 앞에서 폭죽을 터뜨리고 글루바인 비슷한 뜨거운 과일주를 행인에게 대접하는 진풍경을 목격할 수 있었을뿐더러 그 풍경의 일부가 될 수 있어서 좋았다. 한국 지점보다 저렴하였던 에그 타르트의 맛 역시 두말할 것 없이 좋았다.

[꽃보다 남자]의 촬영지로 유명한 '호텔 베네시안Venetian'에도 가보았다. 특급 호텔 여러 개가 한 장소에 몰려 있었고, 중심 지역에는 베니치아의 수로를 재현해놓은 공간이 있었다. 규모는 정말 상상을 초월했다. 그 호텔만 제대로 살펴보려고 해도 삼일 정도는 훌쩍 지나갈 것 같았다. 그러한 공간을 서너 시간 동안 둘러보려니 조금 힘에 부쳤다. 짐이 제법 많아서 포시즌스 호텔의 컨시어지에 짐을 맡겼는데, 나중에 짐을 찾을 때 마카오 페리 터미널까지 가는 교통편으로는 무엇이 있는지 물어보자, 호텔 셔틀버스가 그곳까지 간다면서 어디서 그 버스를 탈 수 있는지 안내해주고, 직원 한 명까지 대동시켜서 그 버스를 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호텔 투숙객만 그러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역시 세상은 넓고 배울 것은 많다. 


4. 그 외 기타 등등

숙소는 '에릭하우스'라는 한인 게스트하우스였다. 홍콩 침사추이 중심 지역에 있어 이동하기에는 상당히 편리했다. 시설은 그리 좋지 않았지만, 혼자 와서 자고 가는 정도의 장소로만 사용하기에는 제격인 공간이었다. 인터넷이 되는 컴퓨터가 두 대 정도 설치되어 있기도 하고, 아침밥도 제공되어서 좋았다. 게다가 이곳에 머무는 이들 역시 대부분 한국인이어서 서로 인사하고 간단한 여행 정보를 나누며 숙소에서의 여가 시간을 심심하지 않게 보낼 수 있었다.

비행기는 아시아나를 타고 갔다. 캐세이 퍼시픽을 이용하려니 자리가 만석이어서 어쩔 수 없이. 갈 때는 정말 좋았다. 홍콩 현지에서 이미 개봉한 영화를 기준으로 기내 영화가 선정되어 있었다(그런 것 같았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개봉 소식조차 들리지 않는 [괴물들이 사는 나라Where the Wild Things Are] 같은 영화도 목록에 포함되어 있었던 것. 게임 기능도 지원되기에 신기해서 하나 둘 누르며 리모컨 뒤편에 있는 게임 패드를 만지작거리다가 보니 결국 영화는 한 편도 못 보았다; 헤드폰이 조금 불편해서 쉽사리 볼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이기도 하지만. 사실 돌아올 때 보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지나친 면도 있었는데... 돌아올 때는 한국에서 상영 중인 영화만 있었다. 그러한 것이 인생 아니겠는가!

뭐 그 밖에 너츠포드 테라스에서 물담배를 피워보는 등등의 체험을 하기도 했지만 그러한 얘기는 다른 기회에 더 개인적으로 하는 편이 나을 듯싶다...


5. 결론

전반적으로 무척 만족스러운 여행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웬만한 얘기는 이곳에 다 털어놓았지만, 그 감흥을 온전히 전달해내기란 역시 힘든 일 같다. 그만큼 좋은 여행이었고, 나쁜 점도 더러 있기는 했지만 그 모든 것이 결국에는 좋게 다가왔다. 

앞으로 당분간은 또 블로그에 글을 자주 쓰지 못할 것 같다. 이제 곧 개강이고, 개강에 맞추어 해야 할 일이 몇 가지 있기 때문이다. 정말 올해부터는 정신을 차리고, 더 잘 해보고 싶다. 무엇이 되었건 그동안 나는 조금 안이하게 자라난 구석이 있다는 게 분명해졌다. 지금처럼 계속 나아가다 보면 길이 보이겠지. 그러리라 희망한다.


P.S. 홍콩 필하모닉의 공연과 [공기인형]의 리뷰는 따로 써보고 싶다. 둘 중 하나는 꼭 써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