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백/영화

[Martyrs]

아는사람 2010. 7. 16. 11:49


마터스: 천국을 보는 눈
감독 파스칼 로지에 (2008 / 프랑스,캐나다)
출연 모르자나 아나위,밀레느 잠파노이,카테린 베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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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마터스Martyrs]는 처음부터 끝까지 피로 얼룩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잔인한 영화이지만, 아무 생각 없이 사람을 난도질하며 장르적 쾌감만을 추구하는 고어물은 아니다. 그것은 우선 제목으로 쓰인 심상치 않은 단어에서도 짐작해볼 수 있는 바이다. '마터martyr'란 '목격자'란 의미의 어원을 지닌 단어로, 순교자를 뜻한다. 즉, 마터의 복수격이자 영화 제목인 마터스martyrs는 '순교자들'을 의미한다. 이를 고려해보면 스크린을 흥건히 적시는 피는 영화적 유희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순교자 혹은 순교자와 연관이 있는 누군가에 대한 가장 즉물적인 표현방식으로 제시되는 무엇임을 유추해볼 수 있다. 

순교자의 사전적 정의는 '자신의 신앙 혹은 (더 넓은 의미에서) 신념 때문에 박해받아 죽음에 이르는 자' 정도로 정리해볼 수 있다. [마터스]의 순교자, 즉 '마터'는 그렇다면 과연 어떠한 신념 때문에 죽음에 이르는 것일까? 이 영화의 논쟁적인 면모는 바로 이 지점에서 두드러진다. [마터스]의 순교자는 신념 때문에 박해를 받아 목숨을 잃는 것이 아니다. 그가 박해받는 것은 애당초 신념 같은 문제 때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니, 그는 '박해'를 받는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저 희생당할 뿐이다. '마터'는, 다시 말하자면, 신념과 관계없이 순교한다. 

이렇듯 일반적이지 않은 개념의 순교는 어떠한 집단에 의해 강제로 집행된다. 영화 속에서 그 정체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 이 광적인 집단의 순교란 고통으로부터의 해탈을 뜻한다. 즉, 인간을 극한의 고통으로 내몰며 죽음에 이르도록 할 때, 대부분은 정신적 외상에 의한 환영에 시달리며 끔찍한 자해를 거듭하게 되지만, 매우 드물게 몇몇 이들은 고통에 초연해지는 해탈의 경지에 다다른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그들 집단이 이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순교 행위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까닭은, 일단 그것이 매우 드문 현상이기 때문이고, 이 드문 현상을 겪는 순교자는 죽기 전에 사후세계를 '목격'할 수 있다(마터의 그리스 어원의 의미인 '목격자'로서의 순교자가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결국 이 집단이 원하는 것은 사후세계를 목격하는 것이다. 다만 자신의 몸을 더럽혀가며, 스스로 '순교'하며 그것을 보려 하지 않을 뿐이다. 직접 나서서 시도하기에는 그 리스크가 너무 크기에, 그들은 일종의 '대리-순교자'를 고안해낸 것이다. 매우 비겁한 자들이 비정상적인 호기심을 지니게 되었을 때 드러내는 타인에 대한 무정함, 그것이 바로 이 영화 속에서 집행되는 순교의 성격이다. 여기에서 순교는 '신념 때문에 박해받는' 것이 아니라 '신념 때문에 박해하는' 것이며, 순교자는 숭고한 대의나 신념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실험실의 생쥐처럼 그저 이용당하고 죽어나갈 따름이다. 

광적인 신념을 공유하는 이들이 조직을 결성할 때 얼마나 무서운 결과가 나올 수 있는지 입증하는 결과물로 평가한다면 또 모르겠지만, 그 이상의 성과를 이 영화가 거두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영화 속 논리는 매우 정연하다. 사후세계를 목격하기를 갈망하는 광적인 집단의 지도자는 흡사 수많은 삶을 앗아간 대가인 듯 스스로 목숨을 끊고, 이 집단의 나머지 구성원은 그토록 염원하던 순교자가 생겨났음에도 그의 목격담을 전해듣지 못한다. 절제된 정의의 실현처럼 보이는 결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정의의 실현이라기보다는 현실을 바라보는 매우 염세적인 시선의 반영에 더 가깝다. 

이 염세적인 시선 내지는 세계관은, 오로지 사후세계에 대한 호기심만으로 무고한 타인을 고문하는 집단의 존재를 관객 앞에 제시하면서 정작 그러한 집단이 왜 생겨난 것인지에 대해서는 살펴보지 않는 감독의 무책임함에서 엿볼 수 있다. 만약 파스칼 로지에 감독이 이 영화에 진정 그 잔인한 소재만큼이나 진중한 메시지를 담아내려 했다면, 가해자의 입장 역시 더 상세히 보여주었어야만 했다. 가령, 이 집단에 속한 인간 가운데 무고한 이들을 고문하며 갈등에 빠지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고, 그에 대해 언급해볼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라면, 이 집단이 어떠한 거대한 정치세력과 연관되어 있다는 식의 음모론을 제기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더라도 지금보다는 나았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자신이 탄생시킨 괴물의 정체에 대해 일언반구의 언급도 하지 않고, 그저 황량한 기분만을 관객에게 안긴 채 끝난다.

그럼에도 [마터스]가 논쟁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것이 단순히 하나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잔인하기만 한 고어물로 치부하기에는 지나치게 관념적이고, 깊은 철학적 사유의 결과물로 보기에는 너무 얄팍한 이야기로 일관하며, 추상적인 궤변으로 여기기에는 매우 현실적인 파국을 제시한다. 어떠한 감동이나 깨달음을 준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충격적이다. 예술 작품으로 내세우기에는 어딘가 지나친 구석이 있는 것 같지만, 상업적이기만 한 영화는 절대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장르적이기만 한 B급 영화 역시 아니다. 

광기와 이성, 폭력과 순교……  이러한 논쟁거리의 경계선이 어떠한 한 지점에서 교차한다면, 그 교차점 위에는 바로 이 영화 [마터스]가 쉽게 지울 수 없는 핏자국처럼 묻어 있을 것이다. 쉽게 타협하지 않는 고통과 공포를 선사하는 이 영화를 견뎌낸 관객이, 쉽게 견뎌내기 어려운 고통 끝에 사후세계를 목격한 '마터스'가 그러했듯, 굉장한 무엇을 목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그러한 지점에 대해 생각하도록 이끄는 힘은 분명히 있다. 물론 그러한 힘이 이 영화의 부족함을 상쇄해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종류의 힘은 그저 충격적인 장면 몇 개를 제시하는 것만으로도 생겨날 수 있고, 그 자체로는 다소 무력하기 때문이다. 

별점 : ★★★ (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