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백/기타 등등

근황

아는사람 2011. 1. 23. 17:58


[황해]와 [소셜 네트워크] 리뷰를 쓰려다가 못 썼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아마 못 쓸 것 같다.

방학하고 나서 본 영화는 모두 다 언급해보고 싶으나 이미 이곳저곳에 하고 싶은 얘기는 다 해버려서 이곳에 굳이 따로 남길 말은 없는 것 같다. 다만 짧게나마 해보자면, [카페느와르]를 보고 나서는 비록 부드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좋은 대목도 상당하지만 절대 너그럽게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영화라는 확신이 들었고, [허드서커 대리인]은 코엔 형제의 위대함을 증명해준 사례라고 여겨졌으며(상업적으로 실패했을지라도 이 영화는 절대 실패작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주노]는 재기 발랄했으나 세상의 통념과 일종의 타협을 한 것으로 여겨져서 아쉬웠고([인 디 에어]와 마찬가지), [트론]은 시각을 온전히 자극하는 영화였고, [색, 계]는 오로지 배우들만이 빛나는 영화로 다가왔으며, [아메리칸]은 한 편의 하이쿠 같았고, [매드 디텍티브]는 홍콩영화 대부분이 그러하듯 B급의 요소로 가득했으나 그럼에도 나름의 미덕이 있는 영화란 생각이 들었고, [8월의 크리스마스]는 촬영이 실로 훌륭해서 보는 내내 그저 감탄했으나 그 이야기와 인물에는 설득되지도 않았고 공감하고 싶지도 않았다.

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언급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그러고 싶지는 않고, 다만 한윤형의 『키보드워리어 전투일지 2000-2009』와 페터 한트케의『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을 즐겁게 읽었다는 말만 기록해두고 싶다.

1월 초부터 줄곧 하나의 글을 쓰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억지로 쓰기보다는 내킬 때 쓸 수 있는 만큼 쓰기로 했고, 실제로 내가 쓰면서 망가지지 않는 방식이 그것밖에 없는 것 같아 계속 그럴 생각이다. 일단 분량으로는 하나의 글이 완성된 셈이지만 그 내용은 완결되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완결될 수 없으나 내적으로 완결된 글과 아예 내적으로도 완결되지 않은 글은 분명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현재 이 글의 상태는 후자에 가깝다. 즉, 아직 손볼 곳이 많다는 얘기이고, 아마 제대로 손을 볼 수 있다면 상당 부분이 사라질 것이다. 고된 작업이다.

그런 맥락에서 다음 학기에는 창작 수업을 듣지 않게 될지도 모르겠다. 졸업학점을 따져보면 굳이 다 들을 필요는 없지만, 어쨌든 내가 쓴 무엇인가를 마무리 짓는다(더는 고칠 수 없을 때까지 고친 글이 강제적으로라도-그러나 제법 즐겁게-완성된다)는 측면에서는 계속 듣고 싶은 마음이 더 크지만, 지금 상황에서라면 학기가 시작하기 전에 그에 적합한 글을 완성할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 잘해야 딱 한 편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수강신청 기간에 더 고민해봐야 할 문제겠지만, 굳이 학기 중에 억지로 무엇인가를 기록하고 싶지는 않다. 일단 그럴 마음이 있더라도 그럴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음악은 제법 다양하게 많이 듣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나에게는 미지의 음악이 더욱 많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음악을 일종의 정복대상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 탓이 아닐까 싶다. 아니다, 잘은 모르겠다. 아무것도 모른 채, 음악가의 이름이나 레코드사의 명칭이나 가수의 나이 등등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그저 여러 음악을 쉴 새 없이 듣는 연습 같은 것을 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나는 더욱 완전한 무의미의 세계에서 더욱 감각적인 경험을 해보고 싶다.

실패의 구축에 실패한다고 쓴 이준규 시인을 최근 탐독했다. 나는 그를 지지한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