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2011.6.30-7.29)

[유럽] 6월 30일 - 인천에서 런던까지

아는사람 2011. 7. 30. 21:31


대학생 신분으로 유럽에 가더라도 여유가 있을 시기는 3학년이 마지막으로 여겨졌다. 꼭 그렇지는 않겠지만, 심정적으로는 그랬다. 그리고 스물여섯이 되고 나니, 유럽에 가더라도 그 문화와 역사를 겉으로 훑고만 오지는 않을 자신이 어느 정도 생기기도 했다. 

결심은 1년 전에 했고, 본격적인 준비는 한 5-6개월간 했다. 항공권을 끊고, 유레일 패스를 결제하고, 숙소를 예약하고... 하는 굵직한 준비를 다 끝내고 나니 어느덧 여행 시기가 가까이 왔고, 학기 중에 해야 할 여러 일에 신경을 쓰다 보니 금세 출발 일자가 되어 있었다.



가족과 함께 공항에 간 덕분에 인천공항 현대카드 라운지에 가서 시간을 보내며 간단히 아침을 먹었다. 회원에게 제공하는 여행가방도 하나 받았다. 이런 게 자본주의의 수혜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공항 라운지의 디자인이나 서비스 같은 부분은 나무랄 데가 없었지만, 정작 음식 같은 것은 야채나 과일 같은 것을 거의 찾아볼 수 없어서 그냥 그랬고, 또 그 특유의 '특혜'가 주어진 분위기가 거북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인천에서 중간 경유지까지 갈 비행기를 탈 곳이었던 123번 창구. 내가 탈 비행기의 바로 전 비행기가 이륙하기 직전이어서 'Final Call'이란 표시가 나와 있었다.



캐세이패시픽. 홍콩까지 타고 갈 비행기.



비행기는 언제 보아도 설렌다.




제일 앞좌석에 앉았다. 남중국해를 거쳐 홍콩으로 날아가는 중. 



홍콩 공항에서 환승할 게이트로 이동 중. 외국에 여러 차례 다녀온 한국인 중에는 인천공항이 최고라고 하는 이들이 꽤 되는 것 같은데, 나는 전혀 동의하지 못하겠다. 인천공항은 뭐랄까... 처음부터 끝까지 좀 숨이 막히는 분위기이다. 디자인도 밋밋한 편이고, 그리 넓다는 생각도 들지 않고, 너무 '길다'는 생각만 매번 갈 때마다 든다. 그렇게 길게 만들어 놓고 양 끝을 잇는 이동 수단이 딱히 없기에 죽어라 걷기만 하게 되는 것 같다. 반면에 홍콩 공항은 와이파이도 매우 잘 터지고, 식수대도 곳곳에 설치되어 있고, 넓기도 넓고, 환승 절차나 다른 이동 경로도 잘 되어 있고... 하여간 내가 다녀본 공항 중에서는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이다. 



홍콩에서 런던까지 타고 갈 비행기. 인천에서 홍콩까지 타고 온 비행기 상태가 안 좋아서 약간 걱정을 했는데, 런던까지 가는 비행기는 보잉 747기였다. 매우 쾌적했고, 서비스도 흡족했다. 



드디어 비행기에 탔다. 식사 메뉴. 하겐다즈 아이스크림과 기타 등등 메뉴가 꽤 화려한 편이다.



개인 스크린.



B747-400. 



기내 프로그램이 매우 좋은 편이었다. [패밀리 가이Family Guy]의 애청자이지만, 시즌 7 이후로는 구할 길이 없어서 막막해하던 차였는데, 가장 최신 시즌인 9 시즌의 모든 에피소드가 다 올라와 있어서 하나하나씩 보았다. 다 보지는 못했지만, 오랜만에 보니 무척 유쾌했다. 미국은 하도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에 집착하는 사회이다 보니, 이런 웃음 코드에서 유독 그 정치적으로 올바름을 비꼬고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사례가 많이 있는 것 같다. 하드코어 농담이랄까... 꽤나 공격적이지만, 그 수준이나 위트, 레퍼런스가 워낙 훌륭해서 그냥 넘어가게 된다. 혹자는 패밀리 가이를 가리켜 심슨 시리즈의 아류라고 말하기도 하고, 그럴 만한 이유도 있지만, 나는 아무리 심슨을 좋아하려고 해도 좀처럼 그럴 수가 없고, 패밀리 가이에 더욱 애정을 쏟게 되더라. 개인 취향의 차이겠지만, 적어도 간접적인 체험에서 나는 극단적인 표현 방식을 더 선호하는 편 같다.



하겐다즈 초콜릿 아이스크림과 화이트 와인. 속이 별로 안 좋아서 점심은 그냥 먹지 않으려 했지만, 승무원이 "하겐다즈 아이스크림도 안 먹을 거예요? Not even Haagen-Dazs Ice Cream? ^^" 하고 물어보아서 그냥 달라고 했다. ㅎㅎ 속이 안 좋은데 아이스크림과 술을 먹었다고 하면 조금 말이 안 되는 얘기 같긴 하지만, 그냥 밥과 함께 그 모든 것을 먹는 대신 딱 그 두 개만 먹는 것을 택한 것이었기에... 나름대로 말이 되는 얘기다. 먹길 잘했다. 두 개 모두 훌륭했다. 비싼 값어치를 하는 것들.



런던까지 가는 비행기에서 유일하게 본 영화 [블루 발렌타인Blue Valentine]. 그동안 정말 보고 싶었는데 마침 있어서 무척 반가웠다. 유럽 곳곳에서도 이 영화가 상영 중이었고, 영화 잡지에는 리뷰도 꽤 많이 실려 있는 것 같았다. 무척 훌륭한 영화였고, 매우 색이 뚜렷한 '예술'영화이기도 했다. 내 취향과는 잘 맞는 편이었다. 다만 기내 특유의 그 소음 탓에 영화를 제대로 본 것 같지는 않다. 나중에 다시 한번 조용한 환경에서 다시 보고 싶다.




비행시간이 얼마 안 남았을 때 찍은 사진. 헬싱키와 베를린을 지나 런던에 근접해가고 있는 모습이다.



확대된 지도에서는 전혀 다른 도시 이름이 보였다.



그리고 비행 끝. 런던 도착. 홍콩 공항에 도착했을 때도 그랬지만, 이때도 매우 설레서 가슴이 쿵쾅거릴 정도였다.

 


런던 히드로 공항에 도착해서 입국 심사를 마치고 짐을 다 찾는 과정은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물론 내가 가본 다른 어느 공항보다 입국 심사대에서 많은 질문을 하기는 했지만, 그 역시 그리 어려운 질문은 아니었고, 다만 런던에 온 목적이 무엇인지, 언제 떠날 것인지만 확실히 말해주면 다 해결되는 것이었기에 큰 불편함은 없었다. 히드로 공항은 그리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국제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뉴욕 공항 같은 아우라가 느껴지는 곳이었다. 사진을 이곳저곳 찍고 싶었지만 초행길이었고, 무거운 짐과 함께 한 상태였으며, 숙소로 빨리 이동을 해야 했기에 그냥 걸음을 옮겼다.



런던 지하철 '튜브'를 타러 이동하는 길. 이곳에서부터 유럽 지하철의 열악한 환경을 체험하기 시작했다. 에어컨도 없고, 조명 시설도 열악하고... 하여간 한국의 지하철은 유럽의 것에 비하면 엄청나게 좋다. 서울의 1호선 정도가 유럽 지하철의 평균 수준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히드로 터미널 튜브 역.



튜브 역 표시 디자인만큼은 멋졌다.



지하철을 기다리는 사람들. 



그리고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드디어 숙소가 있는 역에 도착했다. 밤중에 정신없이 찍은 사진이라 흔들렸음. 낯설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숙소는 런던 북부 쪽에 있는 공식 유스호스텔인 YHA Central London이었다. 공식 유스호스텔인 만큼 안전이나 청결 면은 신뢰할 만했지만, 나머지 부분은 그냥 그랬다. 로비에서 사용하는 와이파이도 그렇고 세탁이나 아침 식사 등등 뭐든지 추가로 돈을 내야 사용할 수 있었고, 런던답게 그 비용도 비싼 편이었다. 시설이 좋다는 생각도 거의 들지 않았다. 다만 깨끗했을 뿐이고 어디건 간에 너무 좁아서 불편한 측면이 더 컸다. 숙소를 고를 때에는 트립 어드바이저TripAdvisor 사이트의 리뷰를 많이 참고했는데, 유독 이 호스텔 평에만 나쁜 것이 하나도 없을뿐더러 만점에 가까운 평이 많아서 예약했더니만... 역시 개인차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가난한 한국 대학생이라면, 런던에서는 민박이 최고의 선택인 것 같다. 여행 중에 만난 한국인 중 대부분은 런던에서 머문 민박이 넓고 좋았다고 한결같이 말하더라. 무엇보다 런던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일은 문화 체험이라기보다는 고행에 가까우므로...



숙소 복도 사진.



문이 상당히 많은 편인데, 모두 카드로 된 방 키로 따로 열어야 한다. 그만큼 보안은 확실한 편. 하지만 위 복도 사진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어디건 간에 상당히 비좁다. 


어쨌든 방에 들어가서 짐을 풀고, 호스텔의 낯선 환경 속에서 이미 방에 자리를 잡고 있는 호주와 뉴질랜드 청년 두 명과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고,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지친 상태로 씻고 나머지 짐을 겨우 다 정리하고 나니 잘 시간이 되었다. 며칠만 지나면 곧 적응해서 즐겁게 다닐 수 있으리란 기대가 생겼고, 그 기대와 피곤함이 섞여 그날 밤은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