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2011.6.30-7.29)

[유럽] 7월 9일 - 파리 (시청사, 퐁피두 센터)

아는사람 2011. 8. 3. 18:07


7월 9일(토)
-파리 시청, 퐁피두 센터

이날은 민박집에서 알게 된 사람 몇 명과 함께 다녔던 날이다. 함께 다녔다고는 하지만 오전에만 그랬을 뿐이고 오후에는 각자 가고 싶은 곳이 달라서 결국 흩어졌다. 나름대로 새로운 경험이었고 좋은 점도 있었지만, 사진 찍히는 일을 그리 즐기지 않는 나로서는 동행인이 있으나 마나 큰 차이가 없었고, 오히려 신경 쓰느라 더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목적지는 퐁피두 센터였다. 혼자 갔다면 지하철을 타고 근처 역에 내려서 갔겠지만, 일행 중 한 명이 한번 걸어가 보자고 해서 조금 멀리 떨어진 역에서 내려서 그렇게 했는데... 정말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가는 길에 파리 시청을 보았다.




파리 시청 앞에는 밑으로 움푹 파인 자그마한 인공 정원이 있었다. 알고 보니 '타원형'으로 딱 보이게끔 사진을 찍는 지점이 표시되어 있었다.



그냥 보면서도 신기했는데, 이렇게 사진을 찍어놓고 보니 더 신기했다. 



파리 시청사는 확실히 이곳이 유럽임을 각인시켜주는 건축물이기는 했으나, 런던에서 보면서 압도당했던 여러 건물에 비하면 어딘지 밋밋해 보이는 곳이기도 했다.



이런 동상도 있었고..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비석도. 



그리고 쭉 걸어가다가 드디어 발견한 퐁피두 센터!




빌 브라이슨은 여행기에서 이 건물을 혹평한 바 있지만, 실제로 퐁피두 센터를 보고 나니 그의 생각에 동의할 수가 없었다. 렌조 피아노와 리처드 로저스가 그저 '나 쿨하죠?'하는 식으로 과시하려 건물의 배관을 밖으로 빼는 발상을 한 것 같지는 않다. 이 건물은 그 어느 미술관과도 차별될 이유가 있는 현대 미술관으로 지어진 것 아닌가. 더 나아가 현대미술뿐만 아니라 영화관까지 겸한 복합문화시설 아닌가. 빌 브라이슨은 책 속에서 계속 논증을 이어가며 부유하고 우매한 소수는 도시가 인간이 살아가는 공간임을 망각한 채 음습한 터널과 높은 육교를 짓는다고 말하며 퐁피두 센터 역시 그러한 산물에 불과하다고 결론짓는데, 그러한 지적은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도 들었다. 단지 이 건물이 파리 한가운데 있기에 그렇게 보일 여지가 있는 것 아닐까? 내 생각에 이 건물 앞의 경사진 광장은 그가 말한 것처럼 중심이 없다거나 아무 목적도 없는 것처럼 여겨지지도 않았고, 실제로 많은 이들이 그곳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이 건물 자체가 도시 경관을 해친다거나,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다거나 하는 생각도 전혀 들지 않았으며, 내가 겪은 불편도 거의 없었다. 오히려 돌아다니기가 불편했던 공간이 있었다면 루브르 박물관이 그러했는데, 빌 브라이슨 식으로 따지자면 루브르 박물관으로 오가는 입구 부분과 그 내부 구조야말로 미술작품만 생각한 매우 오만한 결과물이 아닐까 하는 식의 감상이 든다.


하여간 퐁피두 센터 옆에는 그 유명한 스트라빈스키 광장이 있었다. 






실제로 보면 조금 무서울 정도로 기이한 조각상이 분수대에 가득 있었다. 



드디어 정면에서 마주한 퐁피두 센터.




멋졌다.




이 건물은 그저 실제로 보고 판단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누구나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그런 건물은 절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는 무척 좋았다.

일행과 함께 퐁피두 센터 안으로 들어가서, 점심시간까지 따로 관람하고 다시 만나기로 했다.


나는 상설 전시관으로 우선 향했다. 그리고 약 1시간 반가량 작품을 감상했고, 압도당했다. 현대미술에 대한 어렴풋한 관념, 개념만이 있었을 뿐 실제 작품을 본 경험은 없던 나에게 테이트 모던과 퐁피두 센터는 은총과도 같은 공간이었다. 작품의 질도 그렇거니와, 전시된 작품의 수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기 때문이다. 

퐁피두 센터가 좋았던 점 중 또 하나는 기념품이 매우 훌륭했다는 데에 있다. 종류도 다양하고, 품질도 좋고, 무엇보다도 개성적이더라. 런던에서 방문한 내셔널 갤러리나 테이트 모던은 미술관 자체는 수준이 높았으나 기념품은 다소 빈약한 편이었지만, 파리에 있던 미술관은 대체로 기념품이 훌륭했다. 미술관에서 기념품을 사실 분들은 참고하시길.




그리고 이번 여행에서 웬만해서는 미술관에 들어가서 사진을 찍지 않았지만(원래 찍으면 안 되는데, 성당 안에서 그러하듯 다들 그냥 찍는다), 이 변기를 마주하고 나니 안 찍을 수가 없더라. 


 


마르셀 뒤샹, 퐁텐.


뒤샹의 레디메이드 작품은 이 밖에도 여럿 있었고, 실제로 보니 감회가 남달랐다. 다른 이들은 잘 기억나지는 않고, 내가 잘 알지 못했으나 상당히 많은 수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어 유심히 보게 되었던 만 레이의 작품이 몇 개 생각난다. 어둡고 기이하면서도 아름다운 인상을 받았다.

2시간 가까이 보았던 셈이지만, 전시관만 해도 총 4층에 달하는 이 거대한 미술관에서 내가 본 것은 단 한 층밖에 되지 않았고, 그것도 그 층에서 딱 절반만 본 것에 불과했다. 다행인 점은 그날 끊은 티켓을 버리지 않는 한 그날은 몇 번이고 재입장이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일행과 다시 만나, 우리는 점심을 먹으러 밖으로 나섰다. 주변에 괜찮아 보이는 식당이 있으면 아무 곳에나 들어가기로 정하고 돌아다니다가 사람도 적당히 있고, 가격도 적당해 보이는 한곳을 발견했다.

나는 몇 번 음식을 시켜본 경험이 있지만, 다른 일행은 대부분 초행이었기에 불어 하나 모르는 내가 도움을 주기도 했다. 하여간 우여곡절 끝에 각자의 메뉴를 시키고 기다렸다.



나는 그 유명한 푸아그라를 시켜보았다. 거위 간 요리는 메인 요리로도 유명하지만, 이곳에서는 달팽이 요리와 마찬가지로 전식으로도 취급을 하고 있었기에 큰 부담 없이 시켜본 것이다. 


맛은 꽤 난해한 편이었다. :) 잘 다진 생선살에다가 계란 반숙을 섞어서 반죽해놓은 것 같은 맛이랄까. 저 위 사진에 나온 그대로 빵과 야채와 곁들여 먹었다. 소스는 아무것도 뿌리지 않은 채 먹는 것이라고 종업원이 설명해주었다. 

하여간 다 먹고 나서 맛있다는 생각이 드는 음식은 아니었고, 이때 사용했던 포크와 나이프를 메인 요리를 먹을 때에도 썼던 탓에 그 향과 맛이 그대로 느껴져서 곤혹스럽기도 했다. 어쨌든 새로운 음식을 체험했다는 것에 큰 의의를 두었다. 실제로 그러한 생각 덕분인지 그 음식을 먹을 당시에는 맛있다고 느끼기도 했다만... 역시 프랑스 요리를 많이 접해보지 않은 여행자의 입맛에 그리 잘 맞는 음식 같지는 않았다.



푸아그라보다는 훨씬 덜 난해했고, 맛도 꽤 괜찮았던 연어 스테이크. 연어 샐러드인 줄 알고 시켰는데, 시키고 나니 샐러드가 곁들여 나오는 연어 스테이크였다. 동그랗게 썰어 튀긴 감자와 샐러드, 그리고 연어의 조합이 제법 좋았다. 맥주도 한 잔 곁들여 마시니 절묘했다.


다른 사람들은 일반 스테이크, 거위 구이 등을 시켜서 먹었다. 대체로 만족해하는 분위기였다. :)



점심을 다 먹고, 다시 퐁피두 센터에 들어갔다. 




일행 한 명은 일정이 그리 길지 않아 다른 곳을 둘러보겠다고 나섰고, 다른 일행하고는 관람 시간이 일치가 안 되어서 그냥 이후로는 따로 보기로 했다.


퐁피두 센터는 외부만큼이나 내부도 꽤 혁신적인 분위기의 공간이었다.



이것은 엘리베이터. 




온통 빨갛다.



어디건 간에 현대미술관이라는 인상이 들더라.


보다가 말았던 층을 마저 다 보고 나니, 또 1-2시간가량이 훌쩍 지나가 있었고, 나머지 층도 마찬가지로 거대해서, 보고 있자니 기운이 다 빠질 정도였다. 퐁피두 센터는 루브르 박물관처럼 하루를 가지고도 관람하기가 어려운 공간이었다. 오르세 미술관 역시 내가 갔을 때 맨 위층은 보수 중이어서 볼 수 없었기에 망정이니 만약 다 볼 수 있었다면 마찬가지로 다 못 보고 나왔을 것이다. 대체로 유럽의 미술관, 박물관은 세계사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던 그들의 과거를 확인시켜주는 공간 같더라.




이날은 온종일 퐁피두 센터에서 보냈다. 그 이유로는 퐁피두 센터 자체가 워낙 방대한 공간이라는 데에도 있었지만, 또 하나, 그곳에서 일종의 영화제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시부플레와 메르시만 겨우겨우 말하고 다니던 내가 굳이 불어로 하는 영화를 자막 없이 보기로 마음먹은 데에는 장 뤽 고다르의 [필름 소셜리즘]이 상영작 목록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자막이 있건 없건 별 상관이 없다는 평이 지배적일 정도로 난해한 영화였던 터라 굳이 자막 없이 봐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던 것인데... 




이 영화는 또한 장 뤽 고다르 자신의 다큐멘터리 영화 같은 이 영화와 함께 상영될 예정이었다. 




그것도 단돈 4유로에...


[필름 소셜리즘]은 칸영화제에 처음 공개되었을 때부터, 올해 전주영화제에서 상영되었을 때까지 줄곧 보고 싶었으나 기회를 얻지 못했던 영화였기에 나는 주저 없이 영화를 예매했다. 하지만 그것은 크나큰 실수였음을 영화 상영이 시작되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왜냐하면 상영작으로 생각했던 [필름 소셜리즘]은 사실 상영하는 것이 아니었고 다만 그 영화에 관한 다큐멘터리 [노 코멘트]라는 영화가 상영작이었기 때문이며, 그전에 상영되었던 고다르의 다큐멘터리와 마찬가지로 불어를 알지 못하면 그야말로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는 영화였기 때문이다.

온종일 미술관 관람을 하느라 피곤한 몸으로 고다르의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그 흑백 영상의 질감과 아름다운 촬영기법, 그리고 무표정하게 관객을 웃기는 고다르의 발언에 주목하며 얻는 나름의 즐거움은 분명히 있었지만, 그 즐거움은 영화 중간에 40분가량 졸음에 빠지고, 또 애써 졸음을 참으며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하는 사람들을 스크린 위에서 마주하고 있어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한 결과였다. 

그리고 기대했던 [필름 소셜리즘]의 상영이 시작되었을 때 [필름 소셜리즘]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그날의 상영작이었음을 깨닫자, 내 고된 기다림은 매우 심한 낙담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나는 결국 중간에 극장에서 나와 쓸쓸히 숙소까지 발걸음을 옮겼다.

뭐 그래도 프랑스의 극장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고, 나름대로 희귀한 영화 두 편을 영상과 소리만으로라도 접했다는 데에 의의를 둘 수 있을 것 같기는 하다. 

한 가지 조금 낯설었던 점은, 이곳이 프랑스 굴지의 문화시설이었음에도, 티켓의 좌석 번호 개념이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그냥 사람들은 상영 시작 15분 전쯤에 길게 줄을 늘어섰고, 줄을 선 순서대로 입장해서 원하는 자리에 앉았다. 바로 다음날 나는 다른 일반 극장에서 또 한편의 (영어로 된) 영화를 보았는데, 이때도 그와 마찬가지로 지정석 없는 티켓을 끊어준 것을 보면 파리 영화관 전체가 이런 식으로 운영되는 것 같았다. 

온종일 말 그대로 예술작품을 마주한 채 시간을 보내고 나니 머리가 조금 어지럽기도 했고, 또 시네마테크에 가서 자막 없이 일본영화를 보곤 했다는 누벨바그의 몇몇 거장들이나(아마 고다르가 그랬다지...) 마찬가지로 자막 없이 외국영화를 즐겨본다는 짐 자무시의 취미라는 것은 정말 나로서는 따라 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점을 몸소 깨달을 수 있던 시간이기도 했다.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