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2011.6.30-7.29)

[유럽] 7월 10일 - 파리 (개선문, 샹젤리제 거리, 라 데팡스)

아는사람 2011. 8. 4. 09:35


7월 10일(일)
-파리 북역, 개선문, 샹젤리제 거리, 라데팡스, 마레 지구, 생 제르망 거리


이날 역시 민박집에서 만난 일행과 함께 다닐 수도 있었으나, 역시 나는 그냥 혼자 다니는 게 체질에 맞는다는 생각도 들고, 또 기차예약도 해야 해서 그냥 따로 나왔다.



기차예약을 위해 첫날 이후로 다시 온 파리 북역은, 짐 없이 와서 살펴보니 그리 살벌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여전히 1인당 국민소득이 그토록 높은 국가의 수도를 대표하는 기차역으로 보기에는 너무 형편없는 곳이었다.

암스테르담에서 베를린까지 기차를 타고 이동하려면 6-7시간 정도가 걸린다. 그래서 야간기차나 비행기 등을 이용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지만, 나는 그냥 주간에 기차를 타고 갈 생각이었다. 비행기 수속은 번거롭고, 야간기차는 위험하고 또 더 피곤한 일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주간 기차는 미리 예매할 필요 없이 유레일 패스가 있으면 그냥 탈 수 있었지만, 좌석 확보를 위해 예매를 해두었다. 근데 기차를 계속 타면서 느낀 것인데, 예약 필수 구간이 아닌 곳은 굳이 예약할 필요가 없더라. 좌석이 대부분 그냥 많이 남았고, 특히 암스테르담에서 베를린까지 향하는 구간처럼 별 인기 없는 구간 같은 경우는 더 그랬다.

유레일 타임 테이블이나 독일 철도청 홈페이지에서 미리 찾아본 바로는 암스테르담에서 베를린까지 가려면 중간에 최소한 한번은 기차를 갈아타야만 했는데, 파리 북역에서 알아보니 그냥 곧장 가는 기차가 있다고 알려주어서 그것으로 예매했다. 그 직원 지금 생각해보면 참 친절했던 것 같다. 파리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불친절한 것만은 아니다. 다만 내가 보기에는 이 사람들도 그냥 삶에 찌들고 지친 것 같더라. 내가 방문한 그 어느 도시보다도 파리에서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이들을 자주 보았는데,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여자들이 꾸미고 다니는 정도도 파리가 가장 덜 했던 것 같고. 하여간 패션의 도시라는 화려한 이미지에 전혀 걸맞지 않은 면모를 꽤 많이 접했던 터라 지금 생각해봐도 조금 놀랍다. 파리의 화려함을 보려면 최고급 호텔에 숙박하며 부유한 지역만 돌아다녀야 할까.



기차예약을 다 마치고, 북역에 있던 PAUL 매장에서 크루아상과 에스프레소를 샀다.



PAUL의 크루아상에 관해 마치 한국에서는 전혀 먹어보지 못할 맛인 것처럼 찬양한 파리 여행기를 한국에서 읽었던 적이 있어서 꽤 기대했건만, 별맛 없더라. 맛있기는 했지만, 와 여기가 아니면 정말 못 먹어볼 신세계의 맛이로군! 하는 감탄사가 흘러나올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이 빵집을 파리에 있는 내내 애용하기는 했다. 조금 난해한 빵도 더러 있었지만, 대부분 맛이 괜찮았다. 초콜릿이 들어간 빵 종류가 대체로 맛있었음.



다음으로 향한 곳은 개선문.



날이 살짝 흐린 상태였으나, 그래도 일단 올라가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개선문까지 가려면 지하통로를 이용해야 한다. 사진으로는 표현이 잘 안 되었지만, 지하통로치고는 상당히 화려했다.



가까이 가서 보니 크기가 장난이 아니더라.



저 멀리 티켓 창구가 보여서 입장료를 내고 위로 올라갔다.




순식간에 꼭대기로 이동...하진 않았고, 계단을 걸어 꽤 오래 올라갔다. 운동부족인 사람은 숨을 제법 헐떡일법한 높이를 자랑하는 곳이었다.




이것이 바로 개선문 앞 샹젤리제 거리. 밤에 보면 정말 아름다울 것 같더라.



개선문 중간 부분에는 이것저것 뭐가 많이 있었다.




어디에나 있던 기념품 가게.




음...




나름대로 가파른 계단인 것 같아 찍었는데, 나중에 간 브뤼헤의 종루나 베를린의 전승기념탑에 비하면 매우 드넓고 쾌적한 공간이었음을 이때에는 알지 못했다.



비가 살짝 내렸던 터라 꼭대기에 오래 있지는 못하고 내려와서 다시금 개선문 주변을 둘러보았다. 







파리를 대표하는 상징일만 한 곳이라는 감상이 들었다. 웅장하고 멋지면서도, 어딘지 예쁘기까지 했다.
 



개선문 뒤편의 거리.

예쁘고 좋았다.



개선문 탐방을 마치고 드디어 샹젤리제 거리로 나섰다.



사진이 좀 흔들렸는데... 샹젤리제 거리에 있던 한 극장에서는 나홍진 감독의 [황해]를 ('The Murderer'라는 제목으로) 상영하고 있었다. 칸영화제에서 소개된 덕분인듯. 나중에 돌아다니면서 보니 이 영화가 걸린 극장이 파리에 몇 곳 더 있었다. 



뭐 역시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서는 일단 루이 뷔통 본점에 가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뭐 역시 내가 살 수 있는 물건은 별로 없는 곳이었다. 관광객이 많아 보였고, 실제로 구매할 의사가 있는 이들이 그 중 절반 정도는 되어 보였다.



나는 루이 뷔통을 뒤로 하고 마카롱을 먹으러 갔다.



파리에서도 최고로 꼽히는 마카롱과 달콤한 케이크 등 디저트 류의 제빵을 취급하는 곳, 라 뒤레. 샹젤리제 거리에도 있었지만, 나중에 보니 다른 곳에도 있는 것 같더라.

줄은 이미 꽤 늘어서 있었고, 여행객부터 현지인으로 보이는 이들까지, 하나같이 들뜬 모습이었다.

나 역시 파리에 와서 이 마카롱을 먹고자, 그전까지 접해본 적 없던 것을 몇 달 전에 따로 사서 두어 번 먹어보았다. 작년 겨울에 파리에 다녀간 후배가 먹어본 뒤 그렇게 극찬을 해서 과연 마카롱이 어떠한 것인지, 그 맛은 어떠한지 궁금했던 영향이 컸다. 한국에서 마카롱은 대체로 비쌌고, 크기는 다양했고, 다 맛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맛있는 곳의 마카롱은 정말 그 값을 했다. 재료가 비싸서 비싸다기보다는 만드는 과정이 복잡하고 어려워서 비싼 것이라고 하는데... 그러니 당연히 아무 마카롱이나 다 맛있는 것은 아니다.



한 20여 분간을 기다린 끝에 내 순서가 되어서 작은 마카롱을 세 개 샀다. 초콜릿과 감초, 그리고 파스타치오맛을 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하여간 셋 다 먹는 내내 눈을 지그시 감고 크게 숨을 내쉬며 전혀 힘들이지 않고 감탄사를 내뱉을 수 있었을 정도로 맛이 좋았다. 달콤하면서도 느끼하지 않고, 산뜻하면서도 씹히는 질감이나 입안에서 퍼지는 향이 묵직한... 하여간 라 뒤레의 마카롱을 향한 온갖 찬사가 헛된 것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가격도 한국에서 파는 것과 비교했을 때 비싸지 않고 거의 비슷했으니, 여러모로 대단하게 느껴졌다. 

http://www.laduree.fr/en/fabricant/produits/macarons 

위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눈으로나마 즐길 수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는 매장이 없는 듯하나, 마카롱 자체를 파는 곳은 상당히 많다. 개인적으로는 신세계 백화점 강남점 지하에 있는 아프레 미디의 마카롱 맛이 꽤 괜찮았고, 가격도 적당했던 것 같다. 

샹젤리제 거리는 식당이나 카페, 영화관 등도 더러 있기는 하지만, 역시 무엇보다도 쇼핑이 위주인 거리였고, 아직 여행 일정이 많이 남은 나로서는 쇼핑에 별 관심이 없었던 터라 마카롱을 먹고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도착한 곳은 라 데팡스 지구. 예전에 빈민가였던 곳을 말끔히 정비해 공상과학소설에 나올법한 건축물과 지하 쇼핑몰, 고층빌딩 등을 세워놓은 곳이다.
 


개선문을 보고 크다고 생각했건만, 이 신개선문을 보니 개선문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웬만한 거리에서는 사진 한 장에 다 담아내기도 어려운 크기였다.



그냥 쩐다는 말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이런 건물이 즐비하고...



옆쪽에는 고급호텔도 있고, 저 앞에 있던 거대한 엄지손가락 동상도 인상적이었다.



또한, 이런 쇼핑몰도 있는 공간이었다.



위 사진의 쇼핑몰은 지하 3-4층에 걸쳐 있는 대형 쇼핑몰이었다. 그 안으로 들어가 중국음식으로 모처럼 간단히 끼니를 해결하고, 역시 쇼핑을 할 생각은 없었으므로 대충 둘러보기만 했다. 규모는 상당히 큰 편이었다.  




지상으로 다시 올라와서 마주한 신개선문.



상당히 먼 거리로 물러서니 그제야 한 프레임 안에 들어왔다. 저 신개선문 밑 계단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도 않는다는 점에 주목한다면, 얼마나 큰 건축물인지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신개선문에서 내려다본 전망.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이 거대한 건축물이 있는 라 데팡스 지구는 멀리서 보기에는 무척 깔끔하고 세련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가까이에서 보면 그 더러움 역시 상당했다. 신개선문 계단만 놓고 보아도, 위 사진에서도 얼핏 볼 수 있듯 온갖 비둘기 똥 같은 것으로 얼룩진 상태였고, 지하철역 입구는 파리 시내 다른 여느 곳과 마찬가지로 지저분하고 음산했다.

파리라는 도시가 대단하다고 느낀 것은 하여간 그 한결같이 관리에 서투른 면모에도 불구하고, 오래된 건축이 즐비한 도시 속에 이토록 말도 안 될 정도로 첨단적인 건축물을 잔뜩 지어놓는 등 여러모로 예측을 뛰어넘는 생동성을 보여주는 도시였기 때문이다. 어느 한 방향으로 이 도시를 정의하려 드는 순간 곧장 다른 무엇인가가 나타나고, 그 무엇인가를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또 놀랄만한 무엇인가가 어디에선가 보이곤 했다.

여러 감상을 뒤로하고 이동한 곳은 마레 지구..


...였던 것 같은데 이곳이 정확히 어디였는지는 모르겠다.



여행 중 본 길거리 공연은 정말 많았지만, 그중에서 이게 가장 좋았다. 기부 문화가 유럽에는 활성화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동전 하나 아쉬운 배낭여행자로서 선뜻 길거리 공연에 돈을 자발적으로 내기가 어려웠지만, 이 공연 같은 경우는 10분 넘게 푹 빠져서 들었고, 돈도 선뜻 냈다. 큰 액수는 아니었지만, 이런 공연은 계속 유지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어서 그렇게 했다.
 


저 콘트라베이스 연주자가 공연의 진행을 도맡아했다. 표정도 가장 리얼하고 좀 웃겼다. ㅎㅎ



이렇게 집단으로 연주하고 노래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 정도 규모가 되면 항상 매니저처럼 따로 돈을 받고 CD를 파는 사람이 한 명씩 있는 것 같았다.



방황하다 보니 이름 모를 동상이 있는 정원에 다다랐다.




파리는 하여간 예쁜 곳은 정말 예뻤다. 프랑스 여기저기에 아마 이렇듯 예쁘장한 곳이 많지 않을까 싶다.



이 주변을 헤맸던 것은 바로 빅토르 위고의 집이 근처에 있다는 정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입장료는 무료였고, 내부는 딱히 인상적인 부분이 없었다. 안에 들어가서 내가 뭘 제대로 보려 노력하지 않아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워낙 굉장한 미술관을 여럿 보고 나니 빅토르 위고의 집 같은 곳은 물론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곳이었음에도 제대로 둘러볼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이곳부터는 확실히 마레 지구이다. :) 



파리의 동성애자들과 옷 잘 입고 젊고 예쁜 파리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유명하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갔던 것인데, 과연 그동안 내가 보았던 칙칙하고 일상에 찌든 파리지앵들과는 확연히 겉모습부터 다른 이들이 쉽게 보이는, 눈이 즐거운 곳이었다.





물론 한국의 청담동이나 신사동 가로수길이 낯설듯, 이곳 역시 나에게는 쉽사리 섞여들기가 어려운 곳이기도 했다. 뭐 그리고 특이한 상점이나 옷가게를 돌아봐야 제맛인 거리 같았는데 일요일이어서 그런지 늦게 가서 그런지 문을 닫은 상점이 제법 많기도 했다. 



마레 지구 다음으로 간 곳은 생 제르망 데 프레.



카뮈와 사르트르를 비롯한 파리 지성계의 굵직한 인물들이 즐겨찾은 것으로 유명한 카페 두 곳이 있다고 해서 찾아가 본 것인데, 두 곳이 나란히, 그것도 지하철역 바로 앞에 붙어 있어서 찾느라 발품을 팔 필요도 없었다.



둘 다 가격대가 상상했던 것처럼 비싸지는 않았지만, 일단 만원이었고, 또 시간대가 카페보다는 식당이 더 절실했던 때였으므로 그냥 지나쳤다.



퐁피두 센터 바로 뒤편에 있는 극장에서는 우디 앨런 감독의 최근작 [미드나잇 인 파리Midnight In Paris]를 상영하고 있었다. 극장에 있던 젊은 직원에게 물어보니 원래 영화 그대로 영어로 상영하는 것이었고 또 학생 할인도 된다고 해서, 어제 자막 없이 보았던 영화로 고통받은 마음을 달랠 겸 예매했다. 

올해 칸영화제 개막작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파리의 극장에서 보는 파리에 관한 영화였으므로 더욱 구미가 당기는 일이었다. 게다가 [미드나잇 인 파리]라는 이 영화의 상영시각이 오후 9시 50분이라는 점도 매혹적인 요소였는데, 다 보고 나면 영화의 제목처럼 '미드나잇 인 파리'에 가까운 시각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그러했다. 

티켓을 끊고 숙소에 들어가서 저녁을 먹은 뒤 조금 느긋하게 다시 밖으로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숙소에 들어가기 전에는 다시금 센 강변을 거닐었고, 며칠째 계속 지나치며 보던 헌책 가판대를 드디어 사진으로 담았다. 



사진에 담긴 했으나 겨우 두 장뿐이다. 책을 사지 않고 그냥 사진만 찍기가 조금 그랬기 때문이다. 물론 헌책 가판대 주인들은 누가 오건 말건 거의 쳐다보지도 않는 것 같았지만.. 

어쨌든 이곳 사진을 찍은 것은 이곳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파리의 헌책을 한 권 샀기 때문이다. 그 유명한 자크 프레베르의 시집을 샀다. 물론 불어로만 된 책이다. 거듭 말했듯 나는 불어를 전혀 못하지만, 그래도 프레베르의 그것처럼 짧은 시라면 따로 옮겨서 구글 번역기로 돌려가며 읽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에서 샀던 것이다. 그리고 또 매우 좋은 기념품이 될 것 같아서 산 것이기도 하다. 헌책 가판대를 거의 매일 지나치며 꼭 한 권은 사고 싶었는데,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나온 카뮈의 『이방인』 초판본이나 포지티브 혹은 까이에 뒤 시네마의 초창기 판형처럼 매우 귀한 책도 보였지만 다들 조금 비싸서 선뜻 살 수는 없더라. 불어를 했더라면 아마 별 고민 없이 샀겠지만 말이다.


하여간 그날 저녁에는 미리 예매해둔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를 보았다. 역시나 이 극장에도 좌석 번호가 없었고, 상영 시각도 정확히 지켜지지 않았으며, 결정적으로 매우 비좁은 상영관에서 그야말로 집에서 빔프로젝터로 볼 때 일반적으로 쓰는 것보다도 작은 스크린이 위쪽에 달랑 있어서 적지 않게 실망했다. 하지만 영화가 시작되자 그런 부분은 서서히 잊혀져 갔고, 끝날 때 즈음에는 우디 앨런이 창조한 파리의 세계 속에서 꽤 즐거운 기분으로 걸어나왔다.
 
하지만 다 보고 나서 다른 누군가에게 파리에서 영화 보는 일을 추천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 어쨌든 영화 자체는 꽤 좋았다. 덕분에 그때까지 스스로 본 파리를 되돌아보고, 또 그 다음 날 파리 마지막 일정을 더욱 생동감 있게 보낼 수 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