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백/기타 등등

여러 가지 - 2009년 6월 1일

아는사람 2009. 6. 1. 20:24


1

인간관계를 꾸려나가는 능력을 측정하는 시험이 있다면, 나는 아마 가장 낮은 점수를 받는 것으로도 모자라 채점자의 경멸 어린 눈초리를 받으며 시험 주최 측의 응시자 모집 담당자로부터 "다시는 귀하가 이 시험에 응시하지 않기를 기원합니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받을 리는 없겠지만, 가장 낮은 점수를 받을 수는 있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저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문제점을 안고 살아가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란 데까지 생각이 미칠 때면, 이러한 나의 문제가 인류의 한계로 여겨져서 위안이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역시, 상대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나처럼 아주 사소한 문제만 생겨도(혹은 생길까 두려워하며) 폐쇄적이고 소심하게 관계를 끊는(혹은 애당초 관계의 성립 자체를 포기하는) 인간은 별로 없는 것 같다는 생각, 즉, 그렇게 대처하는 것은 모자란 나라는 인간의 한계일 뿐 인류가 이러한 한계에 얽매이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면 자괴감만 뒤따른다. 


2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있던 날까지만 해도 이 이슈에 귀를 쫑긋 세운 채 꽤 격앙된 상태로 있었는데, 지금은 '노'자조차 듣기가 싫다.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 일에 간섭할 자격이 없다는 자각 탓도 있을 것이다.


3

최근 사적인 이유로 여러 번 종로 낙원상가에 찾아갔다. 서울아트시네마가 있는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는 젊은 남녀를 바라보곤 했다. 자크 타티의 회고전은 예상했던 것보다 좋았다. 윌로 씨는 그리 마음에 드는 캐릭터는 아니었지만, 자크 타티의 마임 연기는 압권이었다. 영화를 보고 난 다음에는 근처 국밥집에 찾아갔다. 낙원동에는 홀로 영화를 보고 홀로 식사를 해결하는 이들이 다른 곳보다 많아 보였다. 실로 낙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4
이 공간은 이제 마지막 보루처럼 되어버린 것 같다. 이곳을 폐쇄한다면, 정녕 고독 속에 칩거해야 할 것이다. 인간관계에 서투르면서 고독에 능숙하지도 못하다니. 이런 개차반 같은 상황은 어디에나 널려 있다. 중간자의 감성이란 그만큼 보편적이다. 그만큼 슬프기도 한 것 같다.


헌책방에서 구한 베를렌의 시집을 읽고 구원에 대해 잠시간 생각했다. 파리바게뜨에서 아침에 먹을 식빵을 사오는 게 거의 유일한 일상이 되어버린 요즘, 나에게 구원이란 아주 사소한 단어가 되어버렸다. 홀로 침대에 누운 채 아주 감상적인 생각을 하곤 한다. 최근에는 일주일이 멀다 하고 밤마다 술을 마시기도 했다. 이제 술은 마시지 않을 생각이지만, 또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