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백/영화

[Twin Peaks]

아는사람 2009. 6. 25. 09:31

 


(나 부끄럼 타는 여자 아니에요.)


데이빗 린치의 영화는 소위 말하는 B급 영화에 근접한 무엇이라 생각한다.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과 감독상을 받은 감독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그의 영화를 이루는 여러 요소는 덜 다듬어져 있다. 가령 배우들의 연기가 그렇다. 그의 영화 속 인물은 거의 항상 너무 극적으로 비명을 지르거나 울음을 터뜨리곤 하는데 그럴 때면 나의 얼굴 역시 다소 일그러지곤 한다. 그들의 고통에 공감해서라기보다는, 그들의 표현방식이 너무 표면적이어서 그렇다. 진정 슬프거나 놀랐을 때 인간은 오히려 완전한 침묵과 무표정의 세계에 접어드는 것 아니던가.

린치가 그럼에도 거장으로 평가받는 이유가 있다면, 그가 영화 속에서 자신만의 영화적인 어법을 찾아낸 독창적인 영화인이라는 데 있을 것이다. 린치의 영화 속 내러티브는 불친절하기로 유명하다. 그의 전례 없는 장편 데뷔작 [이레이저 헤드]가 영화 역사상 해석하기 가장 어려운 작품으로 평론가들 사이에서 꼽히는 것만 보아도 그렇고, 그가 그 이후 선보인 영화 역시 대부분 현실 그 자체보다는 꿈의 세계를 다루는 데 더 치중한 것을 살펴보아도 그렇다. 그러나 [멀홀랜드 드라이브] 같은 작품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그의 장기는 일견 불투명하고 산발적으로 보이는 내러티브를 몽환적이고 음침하며 독창적인 영상으로 들려준다는 데 있다. 린치는 코멘터리를 남기지 않는 영화감독 중 한 명이다. 그는 아마 어떠한 해석에도 반대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창작에 있어서만큼은 그것이 어떠한 것이건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트윈 픽스]는 바로 그 데이빗 린치가 제작에 참여하고 직접 몇 편을 감독한 '미드'다. 90년도에 한 시즌을 선보였고, 그 후 10년 가까이 지나서야 두 번째 시즌이 제작되었다고 한다. 두 번째 시즌은 미처 보지 못한 터라 알 수 없지만, 첫 시즌 에피소드에서는 아무래도 다소 시대에 뒤떨어진 듯한 부분을 많이 찾아볼 수 있었다. 인물들의 옷차림이나 헤어스타일, 안젤로 바달라멘티의 테마음악의 일부 선율, 드라마의 오프닝에 나오는  트윈 픽스의 경관 등등. 그러한 부분을 일일이 다 의식하더라도 이 드라마가 흥미롭고 또 새롭게 보인다면, 그 이유는 아마 린치만이 해낼 수 있는 음침하고 기괴한 이야기에(그리고 린치답지 않은 싱거운 유머에) 있을 것이다.

트윈 픽스라는 자그마한 산골 마을, 이곳에 있는 고등학교의 사랑스러운 여학생인 로라 파머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그 사건이 예전에 발생했던 살인사건과 연계되어 있음을 확인한 FBI 측에서 요원을 한 명 파견하면서 드라마가 진행된다. 그저 착실하고 인기가 많은 여학생으로 비쳤던 로라 파머는 수사가 진행되면서, 박찬욱의 [박쥐] 식으로 표현해보자면 '부끄럼 타는 여자'가 아니었음이 드러난다. 그러한 로라의 실체는 미국이란 나라에 깃든 여러 사회적 문제점을 두루 반영한 것이기에 의미심장한 울림을 주고, 바로 그러한 실체가 드러나는 과정에서 당시까지만 해도 TV에서는 보기 힘들었을 폭력적이고 성적인 장면이 더러 나온다. 그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미국 드라마의 역사에서 [트윈 픽스]는 선구적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고 한다.

드라마 [트윈 픽스]에서도 물론 린치의 존재감을 느낄 수는 있지만, 92년도에 극장판 영화로 탄생한 [트윈 픽스]와 비하자면 그 존재감은 확실히 미약하다. [트윈 픽스]에서 FBI 요원 데일 쿠퍼로 나와 큰 인기를 누렸던 카일 맥라클란은 DVD에 수록된 짧막한 다큐멘터리를 통해 영화가 TV만큼 어느 정도 절제된 수위를 지켜주기를 희망했다고 밝힌 바 있지만, 린치는 TV라는 매체의 제약으로 하지 못했던 바를 영화로 모조리 다 이루려 한 듯 꽤 강렬히 이야기를 밀어붙였다. 드라마가 로라 파머의 살인 사건 이후를 다룬다면 영화는 로라 파머의 살인 사건 이전을 다루고 있고, 드라마 속에서 파편으로 남아 있던 폭력의 실체는 영화 속에서 온전한 전체로 드러난다.

개인적으로는 드라마와 영화 모두 흥미롭게 볼 수 있었다. 그 흥미는 대부분 데이빗 린치를 향한 애정과 신뢰에서 기인한 것이었기에, 정말 흥미롭다기보다는 어떻게 이러한 이야기와 영상이 흥미롭게 다가올 수 있는 것인지 의아해하며 본 편이었다. 극장판은 특히 데이빗 린치의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처럼 다소 불편한 상태로 도대체 이게 어디까지 가는지 보자는 심정으로 보았는데, 다 보고 나니 미처 보지 못했던 [트윈 픽스]의 두 번째 시즌도 찾아보고 싶어졌다. 싫어할 수 있는 이유를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음에도 좋아하게 되는, 나쁜 이성과도 같은 작품이랄까. 생각할수록 린치의 영화는 기이하다.

다른 미드에서도 그렇지만 이 [트윈 픽스]에도 어여쁜 여성이 꽤 많이 등장하는 편이어서 눈이 즐겁기도 했다. 그리 어여쁘지 않은 남성으로서 마음은 그리 즐거울 수만은 없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