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백

거의 아무도 오지 않는 공간이지만

아는사람 2013. 5. 3. 21:15

 

혹은 그렇기에 짧게나마 기록을 남겨본다.

 

1.

우선 첫 직장을 얻고 다닌 지 어느덧 반년이 다 되어 간다. 여태껏 살면서 이렇게 오랜 기간 일한 적도 없고, 이만큼 소속감을 느껴본 적도 거의 없기에 스스로 조금 놀랍다. 그만큼 여러모로 신분이 불안정했던 학생 때와는 달리 확고한 직업이 있는 성인으로서 살아가는 느낌이기에 더욱 집중하며 지낼 수 있는 것 같다.

 

서울에서 독립해서 지낸 첫 두어 달은 무척 만족스러웠다. 주말마다 방에 필요한 물건을 사고, 옷을 사고... 그러다 보면 시간이 훌쩍 갔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주말마다 꽤 외로웠고, 직장에서도 서서히 힘든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독립에 대해 100% 만족하던 시기는 그렇게 지나갔고, 여전히 만족스럽기는 하지만 힘겨운 시기를 겪으며 역시 다시 애정 문제로 내 생각이 옮겨갔다. 짝을 찾는다면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하지만 여전히 조심스러웠고, 오래된 몇몇 인연들 앞에서는 역시 이제 와서 다가서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새로운 인연을 시작하고 싶었지만 그럴 곳을 찾지 못해 다소 방황했다.

 

그러다 그 친구를 만났다. 자연스럽게 만났고, 처음엔 서로 별 호감이나 관심이 없었지만, 우연한 계기로 짧은 시간이나마 함께 붙어 지내며 여러 얘기를 나누었고.. 자연스레 인연이 이어졌다. 평소와 내가 다르게 행동한 것은 없지만, 상대방 쪽에서도 나에게 호감이 있었던 덕분인지 어렵지 않게 인연이 이어졌고, 정말 내가 태어나서 거의 처음으로 제대로 된 연인 관계를 이어가게 되었다.

 

고등학교 이후로, 물론 수줍음 많은 내 성격 탓이 컸지만, 고독이나 예술에 대한 약간은 자폐적인 생각에 빠지는 바람에 잘 이어갈 수 있는 인연조차 스스로 걷어차는 결과를 낳았던 것 같다. 혹은 그만큼 연애가 어려운 일이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요즘 그 친구와 만나는 이 시기는 내게는 없던 시기이기에 새롭고 좋지만, 한편으로는 나와는 다른 누군가에게, 나보다 더 바쁘고, 그리 감정적이지만은 않은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온전히 보이고 서로 교감한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는 것도 꽤 자주 느끼고 있다.

 

 

2.

일을 하다가 만난 사람이어서, 비록 같은 회사에 다니는 친구는 아닐지라도 회사 사람들에게는 비밀로 하고 만나고 있다. 때로는 그래서 더 재밌기도 하고, 때로는 약간 답답하기도 하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좋다. 여행도 벌써 함께 다녀오고, 데이트도 꽤 여러 차례 했고... 멀리 살고 서로 바쁜 것치고는 꽤 자주 만나는 편이다.

 

이번에는 내가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먼저 주지 않는 이상, 오래 이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최근에야 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늘 그랬듯 관계 앞에서 엉망진창이 되던 나를 돌이켜보며 힘들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제는 아니다. 물론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닥친다면 또 모르겠지만, 큰일이 없는 한 괜찮을 것 같다.

 

다만 인생은 여전히 힘겹게 느껴진다. 그만큼 아름답지만, 너무 잔인하고 아프고... 전체적으로는 도저히 자발적으로 택해서 살아갈 만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3.

신입직원 교육 같은 것에서 '비전'에 대한 얘기를 듣거나, 그와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될 때마다 조금은 걱정이 된다. 나는 정말 내가 직장인이 되어서 내 삶을 책임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좋지만, 이 직장에서 무엇인가를 이루고자 하는 거창한 생각은 없다. 다만, 안정된 일자리 하나를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뿐이다.

 

원래 일하고 싶던 곳에서 일할 기회를 놓친 탓도 있겠지만, 그곳은 워낙 합격하기 어려운 곳이었으니 자책감이 그리 심하게 들거나 그러지는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아쉬움은 남고, 욕심도 조금 생긴다. 그래도 그곳에서도 일적인 측면에서는 그리 만족스럽지만은 않으리란 생각이 든다.

 

 

4.

문학에 대한 생각이 요즘 들어 자주 들고, 또 실제로도 조금씩 글을 쓰게 된다. 하지만 제대로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내 가장 큰 욕구는 삶을 제대로 살아보는 것이었기에, 문학과 예술에 함몰되어 너무 일찍 등을 돌린 삶을 아무 생각 없이 살아보는 것이었기에.. 여전히 약간은 정체 상태인 것 같다.

 

현재 연인 관계를 잘 이어나가는 것, 그리고 여기에서 어떠한 결과를 얻느냐가 앞으로 내 문학적 글쓰기에 대한 방향을 정해줄 것 같다. 어떠한 방향이건 만족스러울 것 같고, 빨리 그 방향을 찾아 나아가고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