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41

용서받지 못한 자

용서받지 못한 자 감독 윤종빈 (2005 / 한국) 출연 하정우, 서장원, 윤종빈, 김성미 상세보기 며칠 전 OCN에서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를 보았다. 군대에 적응한 남자(유태정)와 군대에 적응하지 않으려 했던 남자(이승영)의 대비를 통해 비극적인 이야기를 들려주는 영화였다. 이 영화 속 군대에 적응하지 않으려 했던 남자, 즉, 남자 같지 않고 얌전하고 타인의 상처를 신경 쓰는 이승영이란 인물의 여러 면모는 나의 모습과 상당 부분 겹쳤고, 또 그가 겪은 일이 군대에서 내가 겪은 일과 여러 면에서 유사하게 여겨져서, 영화가 좋고 싫고를 떠나 개인적으로 각별하게 다가왔다. 군 복무를 마치기는 했지만 군대란 조직의 폐해를 나는 직접적으로 낱낱이 경험해보지는 못했다. 자그마한 예비군 중대에서 상근예비역으로..

독백/영화 2009.08.24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영화제에 별 관심이 없던 시절부터 한 번쯤 가고 싶어했던 행사다. 규모가 그리 크지 않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고, 음악이 중심이 되어 영화와 공연을 함께 관람할 수 있다는 점이 매혹적으로 다가와서 그랬다. 청풍호에서 열리는 야외공연을 보고, 그 근처에 있는 호텔에서 묵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으로 상영작 목록만 몇 번이고 쳐다보았던 때가 있었는데, 그 해 출품된 작품이 [원스]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결과적으로는 그때도 그렇고, 그 이후로도 가지 못했다. 여러 가지 부분이 걸렸지만 결정적으로 나의 발목을 잡은 것은 불편한 교통편이었다. 자가용으로는 내가 사는 지역에서 1시간 20분 정도 걸려 비교적 수월하게 도착할 수 있는 곳이지만, 대중교통으로는 시간도 그 배로 걸리는 데다..

독백/영화 2009.08.16

박찬욱 감독전

-서울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매달 한국영화 한 편을 선정해 '다시보기' 행사를 한 지 어느덧 2년이 흘렀다고 한다. 2주년 기념으로 기획된 것이 바로 박찬욱 감독전. [달은...해가 꾸는 꿈]부터 시작해서 [박쥐]까지, [심판]을 제외한 박찬욱 감독의 전 작품을 8월 6일부터 13일까지 두 차례씩 상영해주는 행사. 게다가 관람료는 무료. -8월 6일과 8일에 한국영상자료원을 찾아갔다. 지은 지 오래되지 않은 고층빌딩 여러 개가 밀집한 디지털미디어시티 주변은 황량해서 무섭기까지 했지만, 어쨌든 한국영상자료원의 건물은 오래되지 않은 건물다웠다. 극장 상영관도 마찬가지여서, 서울아트시네마 수준을 예상하고 갔던 나로서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달은...해가 꾸는 꿈]은 박찬욱 감독의 데뷔작이다. 흥행에서뿐..

독백/영화 2009.08.11

[Cold Souls]

[영혼을 빌려드립니다Cold Souls]라는 제목을 보고 영혼이란 단어가 지칭하는 모호한 대상에 대해서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말자. 그 단어는 단지 현대과학의 혜택을 받지 못한 우리 조상이 뇌의 기능을 오해한 데에서 비롯한 것이라며 매정하게 내치지는 말자는 얘기다. 그리고 한 번 생각해보자. 근대에 접어든 지도 어느덧 몇 세기가 흐른 요즘, 우리는 과연 과학적으로 이 인생을 감당할 수 있게 되었는가? 아니면 아직도 여전히 영혼과 비슷한 낡은 개념에 매달려야 할 정도로 혼란스럽게 살아가고 있는가? 지치고 우울한 영혼을 잠시 내려놓고 가벼운 마음으로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늘날에도 그리 드문 일이 아닐 것이다. 억눌린 욕망, 뒤틀린 관계, 좌절된 꿈 등으로 괴로워하는 현대인, 그들은 안식처를 찾는다..

독백/영화 2009.07.26

[OSS 117: Rio Ne Repond Plus]

여기 정치적으로 공정하지 않은 또 한 명의 영웅이 등장했다. 이름하여 OSS 117. 007 시리즈의 패러디물임이 명백한 [OSS 117 : 리오 대작전]의 주인공 OSS 117은 프랑스 최고의 비밀요원이다. 그는 당연히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고, 잘생기긴 했으나 그만큼 느끼하며, 유머감각보다는 웃음소리가 더 매력적인 남자다. 잘생겼다는 사실만 빼놓고 보면 오스틴 파워와 유사하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배경은 60년대고, 미모의 이스라엘 요원과 함께 신나치 추종세력의 지도자를 타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OSS 117은 소수인종과 여성 등을 향한 차별(보다는 차별 발언)을 무차별적으로 하는 백인 남성이기에 정치적으로 무척 불공정하게 보이지만, 이러한 부분은 웃음을 위한 것이므로 너그러이 받아들일 수 있다..

독백/영화 2009.07.25

[Bellamy]

불에 탄 시체와 사고가 난 차량. [벨라미]는 아름다운 풍경을 응시하다가 문득 그러한 피사체를 보여줌으로써 영화의 도입부를 마무리한다. 그리고는 폴 벨라미 형사가 등장한다. 제라르 드빠르디유가 연기한 이 사내는 처음에는 전혀 형사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범인의 지문이나 단서를 찾아 헤매는 대신 외딴 별장에서 아내와 함께 낱말퍼즐에 열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서전까지 펴낸 유명한 형사인 그에게는 그러나 사건이 찾아오고, 그는 그 사건을 굳이 거부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죽고 난 다음 그 죽음의 배후를 파헤치는 형사가 등장한다면, 흥미진진한 스릴러물을 기대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벨라미]는 그러나 그러한 기대를 아주 침착하게 저버리는 영화다. 오늘날 관객을 지나칠 정도로 극적인 몰입과 전율..

독백/영화 2009.07.24

[Le Silence de Lorna]

("로나! 로나!") 클로디가 부르는 로나의 이름에는 수없이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제발 도와줘, 나를 사랑해줘, 그리 냉정하게 나를 대하지 말아줘, 나를 인간적으로 ……. 로나는 그에 대해 우선은 침묵하고, 마지못해 대답하고, 뒤늦게 절절히 대답한다. [로나의 침묵]은 극사실주의로 일컬어도 될 정도로 전혀 가공하지 않은 듯한 현실을 다루는 영화다. 마약중독, 위장결혼, 살인 등 꽤 자극적인 소재를 아우름에도 흥미진진하다기보다는 고통스럽게 이 영화가 다가오는 이유는, 영화가 기승전결의 이야기를 택하되 기승전결의 연출을 택하지는 않았다는 데 있을 것이다. 특히 폭력과 성애는 오늘날 대다수 영화가 지향하는 바와는 달리 여기에서 날 것 그대로, 고요하면서도 끔찍하게 표현된다. 잔잔한 물결 아래 갑자기 나타나..

독백/영화 2009.07.01

[Twin Peaks]

(나 부끄럼 타는 여자 아니에요.) 데이빗 린치의 영화는 소위 말하는 B급 영화에 근접한 무엇이라 생각한다.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과 감독상을 받은 감독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그의 영화를 이루는 여러 요소는 덜 다듬어져 있다. 가령 배우들의 연기가 그렇다. 그의 영화 속 인물은 거의 항상 너무 극적으로 비명을 지르거나 울음을 터뜨리곤 하는데 그럴 때면 나의 얼굴 역시 다소 일그러지곤 한다. 그들의 고통에 공감해서라기보다는, 그들의 표현방식이 너무 표면적이어서 그렇다. 진정 슬프거나 놀랐을 때 인간은 오히려 완전한 침묵과 무표정의 세계에 접어드는 것 아니던가. 린치가 그럼에도 거장으로 평가받는 이유가 있다면, 그가 영화 속에서 자신만의 영화적인 어법을 찾아낸 독창적인 영화인이라는 데 있을 것이다. 린..

독백/영화 2009.06.25

016. 광주고 앞 헌책방 거리 : 2009년 5월, 광주

상호 : 문학서점 외 10여 곳 주소 : 광주광역시 동구 계림동 규모 : 다양함. 책방은 비교적 넒은 지역에 분포되어 있음. 광주는 무엇보다도 1980년 5월 민주항쟁으로 기억될만한 곳이겠지만, 제가 광주에 찾아간 것은 꼭 민주화운동의 성지에 방문하려는 의도에서만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저 제가 사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 어디에라도 가고 싶었을 따름이었고, 광주는 그러한 조건을 충족시키는 곳이었을 뿐입니다. 그 외에도 저의 관심을 끄는 여러 요소가 있는 지역이기도 했고요. 그중에는 헌책방 거리라는 요소도 있었습니다. 헌책방 거리로 부르기에는 사실 무리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광주고 근처에 있는 헌책방의 수는 아무리 못해도 10여 곳 정도는 될 정도로 꽤 많은 편이지만,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이 아니..

헌책방/방문기 2009.05.21

모든 책은 헌책이다(최종규) - 헌책이란 무엇인가?

모든 책은 헌책이다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최종규 (그물코, 2004년) 상세보기 헌책방 관련 키워드로 검색엔진을 이용할 때면 자주 마주치는 이름이 있습니다. 그 이름의 주인공은 바로 한겨레, 오마이뉴스 등 여러 언론매체에 헌책방 기사를 쓰고, 헌책방 관련 서적까지 펴낸 분인, 최종규 씨입니다. 제가 여기에서 소개하고자 하는 책 『모든 책은 헌책이다』 역시 바로 최종규 씨의 책이고요. 처음 최종규 씨의 글을 인터넷으로 접했을 때 저는 막연히 나이가 많은 분이리라 생각했습니다. 경어체로 쓴 글, 헌책방에 관해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는 사실 등으로 미루어 짐작한 결과였죠. 실제로는 비교적 젊은 분입니다만(30대 후반 정도입니다), 그러한 추측을 하게 된 이유를 굳이 더 찾아보자면 무엇보다도 헌책이라는 단..

헌책방/독서 2009.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