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백 140

[Twin Peaks]

(나 부끄럼 타는 여자 아니에요.) 데이빗 린치의 영화는 소위 말하는 B급 영화에 근접한 무엇이라 생각한다.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과 감독상을 받은 감독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그의 영화를 이루는 여러 요소는 덜 다듬어져 있다. 가령 배우들의 연기가 그렇다. 그의 영화 속 인물은 거의 항상 너무 극적으로 비명을 지르거나 울음을 터뜨리곤 하는데 그럴 때면 나의 얼굴 역시 다소 일그러지곤 한다. 그들의 고통에 공감해서라기보다는, 그들의 표현방식이 너무 표면적이어서 그렇다. 진정 슬프거나 놀랐을 때 인간은 오히려 완전한 침묵과 무표정의 세계에 접어드는 것 아니던가. 린치가 그럼에도 거장으로 평가받는 이유가 있다면, 그가 영화 속에서 자신만의 영화적인 어법을 찾아낸 독창적인 영화인이라는 데 있을 것이다. 린..

독백/영화 2009.06.25

끔찍한 생각들

입이 거칠어지고 있다. 남들 앞에서는 물론 단속을 철저히 하겠지만, 혼자 있을 때는 주체할 수가 없다. 잠꼬대로 악의에 가득 차 여러 말을 내뱉는 자신을 잠결에 의식하기도 하고, 깨어 있을 때도 마치 잠에 든 것처럼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인생이 공평해야 한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으면, 정말 울화통이 치미는 세상이다. 공평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마시는 물, 주말 시간을 보내는 방식, 인간관계, 건강, 지성…… 무엇 하나도. 낙관을 잃으면 전향하기 쉽다는 글귀를 한 게시판에서 보았다. 맞는 말이다. 끝까지 전향하지 않으려면 정말 강하거나 정말 바보 같아야만 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어설프게 멍청한 것만큼 불행한 일도 없는 것 같다.

춘천行

이틀 전, 도저히 집에 붙어 있을 수가 없어서 서울로 향했다. 지하철을 타고 청량리역까지 갔다. 그리고 남춘천행 무궁화호 열차표를 한 장 끊었다. 방 안에서, 오가는 기차 안에서, 한적한 식당에서 간단한 여행기를 남겼다. 기형도의 여행기를 염두에 두었으나 내가 쓸 수 있던 것은 다소 천박한 외로움의 기록뿐이었다. 돌아오는 날, 장마가 시작되었다. 집으로 가는 도중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나서 전복되거나 멈춰 있는 차량을 서너 대 가량 볼 수 있었다.

시국선언

많은 이들이 시국선언을 하고 있다. 이 뼈아픈 시기를, 나는 나만의 방에 갇힌 채 보내고 있다. 여행을 꿈꾸거나 자립을 생각하거나. 집안에 있을 때면 무슨 일을 하건 그 둘 중 하나에 몰입하게 된다. 오늘은 그 정도가 유독 지나쳐서, 어떻게든 복학한 다음에는 자립할 방법을(아니면 평생 여행할 방법을) 찾아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음에도, 밖으로 나가 만날 사람이 거의 없다는 데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인간이 홀로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은 도저히 못 하겠다. 타인을 기피하는 것은 보통 타인과 교감하는 것을 힘겨워하기 때문이지, 교감을 원치 않아서가 아니지 않은가. 요즘 며칠간 나에게 위안을 주었던 것은 [30 Rock]이란 시트콤뿐이었다. 그나마도 이제 다 봤으니, 희망은 거의 없는 ..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감독 홍상수 (2008 / 한국) 출연 김태우, 고현정, 엄지원, 공형진 상세보기 씨네21에서 찍은 촬영현장 사진 몇 장. 영화 스틸컷보다 더 좋은듯.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제천과 제주도를 배경으로 한 여름영화다. 아주 즐겁게 보았다. 여성이란 늘 아름답고, 남성이란 늘 치졸하고... 올해 8월에는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 한번 가보고 싶다. 별점 : ★★★★☆ (9/10)

독백/영화 2009.06.17

후회할 일만

후회할 일만 늘어가고 있다. 자신감이 문제라고들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자신감을 지니는 게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다. 자신감은 자기객관화의 노력이 전제되지 않을 때 후안무치함으로 돌변하기 마련 아니던가. 경계를 찾고, 그 경계를 세심히 검토하다 보면 역시 어렵다는 생각만 들고, 그 생각은 또 다른 자신감의 감퇴로 이어진다. 간혹 이러저러한 세부를 잊고(혹은 유념하며) 자신 있게 무엇인가를 추진해보기도 하지만, 결과는 엉망진창이기 일쑤다. 그러니, 어찌하랴. 빛은 물론 있다. 그러나 누군가가 지적했듯이, 그 빛은 이 지상의 존재를 위한 것이 아닌 것 같다. 아니면 적어도 나를 위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둠 속에서 그러므로 기록한다, 극장에서 생을 마감한 한 시인을 생각하며 : "평생 미친 듯..

여러 가지 - 2009년 6월 1일

1 인간관계를 꾸려나가는 능력을 측정하는 시험이 있다면, 나는 아마 가장 낮은 점수를 받는 것으로도 모자라 채점자의 경멸 어린 눈초리를 받으며 시험 주최 측의 응시자 모집 담당자로부터 "다시는 귀하가 이 시험에 응시하지 않기를 기원합니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받을 리는 없겠지만, 가장 낮은 점수를 받을 수는 있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저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문제점을 안고 살아가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란 데까지 생각이 미칠 때면, 이러한 나의 문제가 인류의 한계로 여겨져서 위안이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역시, 상대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나처럼 아주 사소한 문제만 생겨도(혹은 생길까 두려워하며) 폐쇄적이고 소심하게 관계를 끊는(혹은 애당초 관계의 성립 자체를 포기하는) 인간은 별로 없는 것 같다는 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