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백 140

크리스마스 기록

크리스마스에는 역시 조용하고 따스한 노래를 들어야 한다. 제임스 조이스와 말라르메의 책을 빌려 왔다. 차갑고, 날카롭고, 미세한 글을 읽고 싶어서 그랬을 것이다. 오전에 조이스의 단편 몇 개와 말라르메의 『시집』에 황현산 평론가가 붙인 편지글 형식의 해설을 읽었다. 조이스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서정적이고 외로운 주체를 다루어낸 작가라는 감상이 들었다. 하지만 『더블린 사람들』은 그의 초기작이다. 문학사적으로는 이것을 바탕으로 그가 내디딘 발걸음이 더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바탕이었다는 사실은 꽤 각별하게 여겨진다. 조이스는 그 자신이 말하고자 했던 것이 문학이되, 그 자신이 사는 시대의 문학은 그것을 말하는 방식 그 자체라고 생각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피네간의 경야』의 원문을 읽..

2010년 최고의 영화

작년에는 안 뽑았으니, 올해에는 뽑겠다.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영화를 보기 시작했으나 그때에는 연말에 공개적인 결산을 하지 않았으니, 올 연말에는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냥 내 양심상 그렇다는 것이고, 누구에게라도 그런 자격 같은 것은... 있으면 있고 없으면 없는 것이겠지. 순위는 무작위나 가나다순이 아닌, 정말 순위에 따른 순위다. 올 한 해 국내 개봉작을 기준으로 선정했다. 1. 옥희의 영화 옥희의 영화 감독 홍상수 (2010 / 한국) 출연 이선균,정유미,문성근 상세보기 무슨 말이 필요할까. 나는 홍상수 감독이 천착하는 소재, 이를테면 남성의 성적 욕망이나 그 때문에 뒤틀리는 심리의 치졸함 같은 것에 동감은 해도 동의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그의 모든 영화를 다 찾아보았음에도, 선뜻 그의 영..

독백/영화 2010.12.18

Radiohead - Creep

샬롯 갱스부르와 조니 뎁이 나오고, 라디오헤드의 노래가 온전히 다 나오는 매우 희귀한 장면. [Ils Se Marierent Et Eurent Beaucoup D'Enfants]라는 영화 속 한 장면이라는데, 영화 자체는 매우 낯 간지러운 감성으로 가득할 것 같지만, 이 클립은 어딘지 기적적인 구석이 있다. 뮤직비디오. 이 노래를 이들이 얼마나 싫어했던가. 어쿠스틱 버전. 합창 버전. [소셜 네트워크]의 예고편에 나온 그 버전은 아니다. 그것보다 이게 전반적으로 낫다고 생각한다. 감정 격한(필 충만한/fuck이 리얼한) 크립. 데미언 라이스의 커버. 이제는 라디오헤드를 전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듣지 않고 있지만, 한때 이들은 나의 우상이었고, 거의 완전한 친구였다. 이제 겨우 20대 중반에 들어선 내가..

독백/음악 2010.12.13

20101207

오늘 학교에서 돌아오며, 이번 학기에도 내가 품은 거의 모든 희망이 무너졌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것이 사실이 아니기에 그것이 사실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모든 것은 이렇게 무너질 것이다. 왜냐하면 그럴 리가 없다고 여전히 내가 희망하기 때문이다. 내가 아니더라도 거의 모든 인간이 그 자신의 삶에 대한 희망을 저버리지 못할 것이다. 인간적이라는 것은 정말이지 비굴하다.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자신을 속이게 된다. 눈이 내린다고 했던 것 같은데 오늘은 그저 춥기만 했다. 내일 내린다는 것이었나. 아니면 내일 모래였나. 내일 모래에는 이번 선거에서 부당한 방법을 쓴 총학생회장 당선자를 탄핵하고자 하는 총회가 있을 예정이다. 그 총회에 갈 마음이 있지만 가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두려운 것은 ..

영화음악 via 유튜브

[소셜 네트워크]의 사운드트랙. 음악만큼은 정말 좋았다. 일반화하기는 어려운 문제겠지만 굳이 내 취향을 섞여 얘기해보자면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영화음악 역시 간결할수록 아름다워진다고 생각한다. 일반화에서 벗어나 또 다른 일반화를 시도해보자면, 이런 옛날 노래를 사용한 영화음악 역시 그만한 시대적 배경이 영화 속에 마련되어 있다면 좋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첨밀밀]에 대해서는 기회가 닿는다면 이곳에 간단한 감상문이라도 하나 남기고 싶다. 아녜스 바르다의 [방랑자Sans toit ni loi]도 음악이 훌륭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위 노래는 실제 영화에 사용된 것은 아닌 것 같고, 다만 영화 속 장면을 배경으로 한 독립적인 음악 같은데... 무척 잘 어울린다. 실제로 이 영화 속에 이 정도로 감..

독백/음악 2010.11.28

트위터와 과제의 나날

블로그 글 전체를 비공개로 돌려놓았다가 다시 모조리 발행 상태로 바꾸었다. 안 좋은 일이 있었고, 좋은 일도 있었다. 인생은 오로지 단 한 번만 여닫을 수 있을 뿐이어서, 여러 번 여닫아도 상관이 없는 이런 식의 공간만 자꾸 애꿎게 괴롭히는 것 같다. 전에도 썼던 말이지만 다시 말해보자면 요즘에는 트위터로 거의 모든 얘기를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점점 트위터라는 도구 자체에 대한 생각이 늘어간다. 정립되지 못한 채 흐트러지고 마는 것들이기는 하지만, 분명히 그런 것에 대해 생각할 가치는 있다고 여겨진다. 페이스북이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지는 모르겠지만, 이 나라에서 부는 미니홈피나 트위터의 열풍 같은 것에 비하면 그 양상은 초라하고 우습게만 여겨진다. [소셜 네트워크]가 정말 좀 유치하게 여겨졌던 것도 ..

수저로 사람 죽이기

[살인의 막장The Horribly Slow Murderer with the Extremely Inefficient Weapon] [Spoon vs. Spoon] [살인의 막장]은 작년 부천영화제에서 보고 기절할 정도로 웃었던 단편 영화다. [스푼 vs. 스푼]은 일종의 에필로그 같은 후속편. [살인의 막장]에 비하면 [스푼 vs. 스푼]은 그 재미가 한참 떨어지지만, 그래도 수집하는 의미로 함께 올려두겠다. 근데 로딩 시간이 좀 오래 걸린다. 낮에 보면 그래도 좀 빨리 볼 수 있을 듯. http://www.youtube.com/user/RichardGaleFilms 위 링크로 들어가면 더 많은 작품을 볼 수 있다. 위 두 영화의 감독인 리처드 게일의 유튜브 페이지.

독백/영화 2010.11.06

20101105

조금 오랫동안 방치해둔 것 같아 가볍고 의미 없는 잡담이라도 오랜만에 남겨본다. 1. 트위터로 웬만한 대화/독백을 다 풀어내고 있다. 트위터는 정말 스마트폰으로 활용하기 가장 적절한 소통 창구라는 느낌이다. 하지만 그것만 있으면 만사형통이란 뜻은 절대 아니다. 이 역시 수많은 사람과 얽히는 것이며, 매우 절망스럽고 답답한 도구에 그치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폐쇄적으로 활용하면 답답하지만 자유롭고, 여러 사람과 연결되어 있으면 즐거운 만큼 절망적인 순간을 견뎌내야 한다. 2. 영화는 꾸준히 극장에 가서 한 편씩 챙겨보고 있다. 이번 주 일요일에도 [하비의 마지막 로맨스]와 [방랑자]를 볼 예정이다. 영화에 관한 칼럼을 꾸준히 쓰겠다는 다짐은 현실적인 한계 탓에 진작 접어두었지만, 그래도 가끔 특정한 영화를..

[옥희의 영화]

옥희의 영화 감독 홍상수 (2010 / 한국) 출연 이선균,정유미,문성근 상세보기 홍상수의 열한 번째 영화. 영화를 보기 전 씨네21에서 정한석 평론가의 글을 읽었고, 영화를 보고 난 후 같은 지면에 실린 남다은 평론가의 글을 읽었다. 그리고 내가 이 영화에 덧붙일 말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 1번) 그래도 조금 덧붙여보자면, 아... 역시 덧붙이지 않는 편이 낫겠다. 별점 : ★★★★★ (10/10)

독백/영화 2010.10.11

[엉클 분미]

엉클 분미 감독 아피차퐁 위라세타쿤 (2010 / 독일,스페인,프랑스,영국,네덜란드,태국) 출연 삭다 카에부아디,젠지라 퐁파스 상세보기 말 그대로 환상적인, 압도적인 체험이었다. [엉클 분미]는 그 어느 35mm 필름보다 기이하고 절대적인 영상으로, 극도로 긴장된 음향으로 말을 잃게 하는, 진정한 영화적 차원이 무엇인지 가늠하게 하는 영화, 진정 영화적이면서 영화를 뛰어넘는 영화로 다가왔다. 태국의 문화와 풍습에 익숙하지 않다면 이 영화에 대해 정교한 비평을 하는 것은 무리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그러한 부분에 대해 익숙하지 않을뿐더러 무지하기 때문에 감히 어떠한 말을 꺼내기가 망설여진다. 그럼에도 무엇인가 말을 남기고 싶은 욕망을 부정하기 어렵게끔 하는 영화, 그것이 바로 아피찻퐁 위라세타..

독백/영화 2010.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