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백/기타 등등

여러 가지

아는사람 2009. 12. 30.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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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을 하고 나니 자연스레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났고 부모와 함께하는 시간 역시 늘어났으며 학기 중에 의식하지 못했던 이 공존의 어려움을 다시금 의식하고 느끼고 있다. 어떻게든 독립할 나이가 되었다는 생각이 매일 같이 든다. 다음 학기까지는 그냥 집에 있더라도, 그다음 학기부터는 복수전공을 신청해서건 어째서건 무조건 서울에 방을 하나 구해서 떠나는 방법을 강구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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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과 낮]을 이번 기회에 꼭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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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치
감독 최동훈 (2009 / 한국)
출연 강동원, 김윤석, 임수정, 유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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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확실히 [타짜]나 [범죄의 재구성]에 비하면 퇴보했다는 인상이 드는 작품이었다. 서로 치고받고 싸우는 장면은 [화산고]를 연상케 했다. 김윤석은 이제 물이 오를 대로 올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수정과 강동원의 로맨스를 조금 더 실감 나게 끌어갔다면 오락물로서의 재미는 더욱 배가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올모스트 페이머스
감독 카메론 크로우 (2000 / 미국)
출연 패트릭 후지트, 프란시스 맥도맨드, 빌리 크루덥, 지미 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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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나를 중심으로 한 몇몇 영화애호가가 침이 마르도록 이 영화를 칭찬해서 어떠한 영화인지 확인해보려고 봤다. 과연 나쁘지 않았다. 특히 래스터 뱅스란 평론가 역을 맡은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의 대사가 그러했는데, 한 락밴드와 함께 투어를 하며 그들에 관한 기사를 쓰게 될 기회를 얻은 윌리엄 밀러(패트릭 후지트)란 소년에게 그가 건네는 말은 하나하나 다 가슴에 와 닿았다. 진정한 예술은 uncool함으로부터 나온다는 극 중 인물의 대사가 완전한 진실이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이 세상 어디에 '완전한 진실' 같은 것이 있겠나! 그 정도 근사치로 진술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하고 대단한 것이리라. 

케이트 허드슨은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다. 화사하기는 했지만...

친구사이?
감독 김조광수 (2009 / 한국)
출연 서지후, 이제훈, 이선주, 이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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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영화제에서 다른 작품과 함께 '단편모음'으로 상영했던 것과는 달리 개봉한 이후에는 단독으로 상영하더라. 영화 분량이 그래서 적어도 40분 정도는 될 것으로 생각했는데, 막상 보니까 20분도 채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영화가 끝난 다음 곧장 이어서 나온 making film 영상의 분량이 본편의 그것보다 더 길게 여겨졌다. 네이버 영화 정보에 보면 이 영화 상영시간이 54분으로 되어 있는데, 아마 making film까지 다 합친 시간을 표시해놓은 것 같다. 

상영시간이 더욱 짧게 느껴졌던 것은, 김조광수 감독이 여러 인터뷰에서 누누이 밝혔던 '밝은' 게이 로맨스의 컨셉이 짧은 분량과 열린 결말 탓에 억지스러워진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들의 어머니에게 커밍아웃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밝게 뛰어간다. 하지만 커밍아웃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어려워도 그냥 웃겠다는 다짐 정도가 '밝은' 것일까? 기왕 그럴 것이었다면 끝까지 그들이 겪는 고난을 보여주고 나서, 그다음에 웃음을 보여주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도 이 영화의 장난기 어린 분위기는 마음에 들었다. 특히 뮤지컬 요소를 도입한 대목은 더 그러했는데,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을 장식하는 노래는 압권이라 생각한다. '친구'로 자기 정체를 미화하며 겪게 되는 에피소드나, 게이 남자친구를 둔 여자와 남자가 서로 대화하는 장면 같은 것은 정말 유쾌하면서도 슬펐다. 10대를 다룬 [소년, 소년을 만나다]와 20대를 다룬 이 작품 [친구 사이?]의 뒤를 이어 차기작으로는 30대 '게이 영화'를 준비 중이라 하던데, 그 작품은 부디 길게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

슬럼독 밀리어네어
감독 대니 보일 (2008 / 영국)
출연 데브 파텔, 프리다 핀토, 아닐 카푸르, 아유시 마헤시 케데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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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 보일 감독의 영화를 처음으로 접한 것은 내가 고등학생 때였다. 당시 할인 판매 중이던 DVD 중에서 [트레인스포팅Trainspotting]을 집어든 것이 계기가 되어 본 것이다. 그것 말고는 딱히 달리 볼 영화 DVD가 집에 없어서였기도 했지만 아무튼 그 이후로 여러 번 그 영화를 감상했고, 그만큼 좋아했다. 마크 렌턴이 영화 초입에 던진 말은 아예 따로 노트에 옮겨적었을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중산층의 삶을 거부하는 이유로 '헤로인'을 제시하는 파격이 내 주변머리로는 쉽게 실천에 옮기기 힘든 것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러나 그 영화의 결말 부분에서 마크 렌턴이 웃게 되는 이유는, 결국 자본주의의 혜택을 얻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서 조금 씁쓸한 기분이 든다. 그러한 인상은 [슬럼독 밀리어네어Slumdog Millionaire]를 보고 더욱 굳어졌다. 밀리어네어가 되어서 행복해진 슬럼독이라니... 그것은 물론 인도의 비참한 현대를 관통하는 슬럼독 자말의 삶을 지켜보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수긍할 수 있는, '현 사회 체제'가 제공할 수 있는 최대치의 보상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과연 자말의 인간적 존엄을 보상해주는 무엇으로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물론 또 달리 생각해보면, 체제 내에서 전복을 일으켰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이 영화가 보여주는 아웃사이더의 면면은 주목할만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도, 그래도 아쉽기는 했다. 무엇보다도 퀴즈 문제 하나하나마다 플래시백이 뒤따르는 영화의 구조가 조금 후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가 [트레인스포팅]에서 조소당하는 아카데미 상("그건 동정표에 불과해")을 휩쓸었다는 점 역시 우습고도 슬프게 다가왔다.


3-1.
그 밖에도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의 [카드 플레이어The Card Player]란 영화를 보기도 했으나, 티스토리 영화 플러그인에는 이 영화가 없어서. :) 부산영화제에서 보았던 같은 감독의 영화 [슬립리스Sleepless]의 엉성하면서도 박진감 넘치는 공포를 기대하고 이 영화의 DVD를 샀던 것인데, 결과적으로 기대한 만큼 얻었다. 이 영화를 걸작으로 일컫기에는 무리가 따르겠지만, 영상 편집이나 미장센 같은 대목에서는 누구라도 배울 점이 꽤 많으리라는 생각이 들었고, 무엇보다도 낯이 조금 간지러운 이야기 구조에도 불구하고 [슬립리스]처럼 재밌게 볼 수 있는, 묘한 흡입력을 지닌 작품이어서 마음에 들었다. 혹평이 주를 이루는 이 영화도 이 정도로 즐겁게 감상했으니, 아르젠토 감독의 다른 대표작은 정말 황홀하게 감상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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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아의 신작 장편 『북쪽 거실』과 마야꼬프스끼 선집, 그리고 요이다 슈이치의 『일요일들』을 읽기도 했다. 셋 다 내가 기대했던 바를 충족시켜준 책이라는 점에서 좋았다. 하지만 방학 때 내가 꼭 읽어야 할 책은 학기 중에 읽을 엄두를 쉽게 내지 못하는 몇몇 두꺼운 고전일 것이다. 단테의 『신곡』이라든지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의 대표작 등등. 이 중 한두 권만 제대로 읽어도 성공한 방학으로 일컬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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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도 막상 사면 별것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정말이지 아이팟이 나오고 나서 다른 MP3 플레이어가 MP3 플레이어로 보이지 않았던 것처럼, 아이폰이 아닌 다른 휴대폰은 휴대폰으로 보여도 그렇게 보기가 싫은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내 휴대폰 약정은 아직 1년하고도 반 이상이 남아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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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기 성적도 나왔다. 정말 잘 나왔다. 기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