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방문기

006. 아벨서점 : 인천 배다리 헌책방 거리의 대명사

아는사람 2009. 2. 2. 15:57




상호 : 아벨서점

주소 : 인천광역시 동구 금곡동 13

규모 : 지상 1층. 책장 사이는 비좁으나 책방 규모는 제법 큰 규모.


며칠 전, 그동안 가고 싶었던 인천 배다리 헌책방 거리에 다녀왔습니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작고 초라한 규모의 헌책방 거리를 보며 아쉬움이 생기더군요. 헌책방은 얼추 예닐곱 군데 있었지만, 초중고등학교 문제집이나 공무원 시험 교재 같은 실용서적 위주로 장사하는 곳이 그 중 절반 정도 되어서 더더욱 그 모습이 작게 여겨졌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배다리라는 명칭은, 1900년대에 철로가 들어서기 전까지 이 근방에 밀물 때면 물이 들어와서 배가 닿는 다리가 있었기에 붙여진 것이라고 합니다. 여전히 인천 앞바다 월미도와 가까운 거리에 있기는 하지만 오늘날 배다리 근처에서 배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대신 헌책방 거리뿐만 아니라 전통공예거리나 중앙시장 등을 찾아볼 수 있어서 허전한 느낌은 들지 않더군요.  

[아벨서점]은 인천 배다리 헌책방 거리 초입에 있는 유명한 헌책방입니다. 배다리 헌책방 거리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기획에서뿐만 아니라 각종 헌책방 관련 글이나 영상물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곳이죠. 저는 그래서 될 수 있으면 배다리 헌책방 거리에 있는 다른 헌책방을 다루어보려고 이곳저곳 열심히 둘러보았지만, 둘러볼수록 이 거리에서 보낸 시간을 순례기의 형태로 남기려면, [아벨서점]을 다룰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배다리 헌책방 거리의 대명사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이 [아벨서점]은 입구부터 다른 헌책방과 사뭇 다릅니다. 헌책이 꽂혀 있는 책장이 문 앞에 있는 헌책방은 많아도 대자보가 붙어 있는 곳은 찾기 힘들기 때문이죠. [아벨서점] 앞에 붙여진 대자보에는, 인천 배다리와 관련된 기사나 글이 스크랩되어 있습니다. 그 옆 건물로는 시 낭송 공간으로도 활용되는 전시관이 있었는데요, 제가 방문했을 당시에는 문이 닫혀 있었지만 그 앞에 붙어 있는 안내문에 '아벨서점에 문의해달라'는 문구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 [아벨서점] 측에서 운영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아벨서점]과 관련된 것만 살펴보아도 그렇지만, 이 배다리 헌책방 거리를 거닐다 보면 전반적으로 이곳이 그저 안락하게 보존되는 곳이라기보다는 힘겨운 투쟁으로 보존되는 곳이라는 인상이 듭니다. 배다리 거리를 지키자는 구호를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이곳에는, 오늘날 헌책방 대부분이 자연스레 이 땅에서 사라지는 풍토를 반영했다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비장한 분위기가 감도는 편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 인천 배다리 거리가 한때 그곳을 통과하는 산업도로 건설계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고, 지금도 처해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배다리를 관통하는 도로를 건설하면 얻을 수 있는 바가 많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국가의 예산으로 집행하는 일인만큼 손익계산을 철저히 따져본 다음 내린 결정일 테니 확실히 그렇겠죠. 문제로 삼을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 그 '손익'이 과연 어떠한 것인지 따져보는 일일 겁니다. 그저 단순히 낡고 가치없는 거리 하나가 없어진다는 '손', 높은 빌딩과 더 쾌적한 도로가 들어선 첨단도시가 삶의 질을 향상시켜줄 것이라는 '익.' 낡아서 없어질 수밖에 없는 것과 오래되었기에 더더욱 보존해야 할 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기존의 토대를 재정비하는 것으로도 새로움을 창조해낼 수 있음을 간과한 손익계산이 바로 배다리 철거를 결정했던 원동력은 아니었을까요.

최근 재개발을 이유로 옛모습을 잃어버린 서울 종로의 피맛골 역시 비슷한 이유에서 그렇게 되어버린 것일지도 모릅니다. 피맛골과 달리 배다리가 아직 그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배다리를 지키는 인천 시민모임](http://www.vaedari.net/)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삶의 터전을 지키려는 모임일 뿐 아니라, 낡고 오래된 것을 무조건 다 가난한 과거와 연결하려는 사고방식에 저항한 모임. 훌륭한 시민운동의 예라고 볼 수 있을법한 그들의 노력 덕택에 시 계획대로라면 이미 진작에 철거되었을 배다리 거리는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문화콘텐츠가 21세기를 주도한다고 말하며 '새로운' 것의 탄생을 재촉하는 문화체육관광부 관료들과는 달리 그들은 '옛' 것을 보존해서 우리의 문화를 더 깊고 풍성하게 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아무리 인천 배다리 헌책방 거리를 대표하는 유명한 곳이라고 할지라도 [아벨서점]은, 비좁은 책장 사이에 낡은 책이 가득 차 있는 하나의 헌책방일 뿐입니다. 매월 둘째 주, 넷째 주 목요일에는 문을 열지 않는 이 책방에는 책이 분류별로 잘 정리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 양이 그렇게까지 많은 편은 아닙니다. 이곳에는 그러나 지난 세월을 느끼게 해줄 법한 낡은 향취가 묻어 있고, 낡은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느껴지는 헌책방 특유의 온기가 있습니다.

남아있는 헌책방 몇 곳은 아예 문제집이나 참고서만 전문으로 파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서, [아벨서점]은 어떠한 식으로건 재테크서적이나 참고서의 물결에 압도당하지 않은 채 지금 모습 그대로 적절한 균형을 맞춰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사는 곳과 그리 가까운 거리에 있지 않기에 앞으로 그리 자주 방문하지는 못할 것 같지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찾아가서 천천히 둘러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