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7일(목)
-퐁네프 다리, 오르세 미술관, 소르본 대학 근처, 팡테옹
파리에 있는 동안 찍은 아침 식사 사진은 없다. 왜냐하면 다 민박에서 한식을 아침으로 먹었기 때문. 저녁 식사 또한 민박에서 제공해주었기에 여러 차례 먹었지만, 이렇게 유럽에 와서(그것도 파리에서) 한식을 먹는다는 게 생각했던 것보다 크게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우선 민박집에서 해준 밥이 맛있었고, 또 아침이건 저녁이건 내가 밖에서 먹고 싶으면 밖에서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즉, 민박에서의 식사는 내가 취할 수도 있고 버릴 수도 있는 일종의 무료 서비스였는데, 그 서비스의 수준이 꽤 높아서 만족스러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다만 처음 며칠간 낯선 이들 틈에서 밥을 먹는다는 게 조금 어색하고 쑥스럽기는 했다.
민박에서 아침 식사를 맛있게 하고 처음으로 간 곳은 센 강변. 파리는 아름답게 보일 때에는 그야말로 한없이 아름답게 보였는데, 센 강변은 거의 항상 아름답게 보였다.
센 강변에는 이렇게 얼핏 보면 쓰레기통과 같이 생긴 초록색 철제 구조물이 쭉 늘어서 있다. 이것의 정체는 바로 가판대이다. 주로 헌책을 파는 곳이 많지만, 각종 기념품이나 포스터 등을 파는 곳도 더러 있다. 이른 시각이어서 펼쳐놓은 곳은 없었지만, 이곳이 열려 있을 때 이 길을 쭉 걷다 보면 파리라는 곳이 어떠한 곳인지 실감이 난다.
센 강변을 거닐며 도착한 곳은 바로 퐁네프 다리였다.
레오 카락스 감독의 [퐁네프의 연인들]은 실제 퐁네프 다리에서 촬영 허가를 받지 못해 세트를 지어서 찍은 것으로 유명하다. 퐁네프 다리가 유명한 이유는 순전히 그 영화 때문인 것 같은데, 정작 그 영화를 본 사람이 많은 것 같지는 않다. 나도 사실 레오 카락스 감독의 다른 영화는 몇 편 봤어도 그 영화는 못 본 터였다. 조만간 기회가 되면 봐야겠다.
퐁네프 다리는 그리 매혹적이거나 운치가 있는 공간은 아니었다. 하지만 일단 그 다리를 직접 건너고, 발을 디딘 것만으로도 뭔가 마음이 꽉 차올랐다.
퐁네프 다리를 건너 향한 곳은 오르세 미술관이었다. 한국 예술의전당에서 오르세 미술관전을 열면서 오르세 미술관의 작품 여럿이 한국으로 건너왔다는 소식을 듣고 약간 가슴이 아팠는데, 막상 가보니 전혀 그럴 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오르세 미술관은 단순히 작품 '몇십 개' 정도를 빼 간다고 해서 티가 날 정도로 작은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르세 미술관에는 개관 시간에 딱 맞춰 갔으나, 줄이 제법 길게 늘어서 있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기다린 시간은 20분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 줄이 금방 줄더라.
나는 학생 할인을 받는 대신 오랑주리 미술관과 함께 입장권을 끊어 할인을 받을 수 있는 티켓을 샀다. EU 국가에 있는 학교에 다니는 학생은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고 나와 있었다. 이것은 파리 시내 어느 미술관이건 다 해당되는 사항 같았다.
다른 미술관과 마찬가지로 오르세 미술관 역시 내부 사진은 찍을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런데 들어가 보면, 사진을 찍고 싶은 강렬한 욕구를 느끼게 된다. 예전 기차역이었던 곳을 미술관으로 개장한 것이니만큼, 그곳에 걸린 거대한 시계며 천장이며 건물의 구조 같은 것이 어느 것 하나 빼놓을 수 없이 독특하고 아름다우며 또 고혹적이기 때문이다.
작품 수도 굉장했다. 평소 미술에 그리 조예가 깊지도 않고, 또 현대미술이 아니라면 좀처럼 관심이 생기질 않아 과연 오르세 미술관을 잘 볼 수 있을지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19세기부터 20세기 초반까지의 프랑스 인상주의가 무엇인지 거의 완전하게 전시해놓은 공간으로 볼 수 있을 텐데, 당시 열리고 있던 마네 특별전의 문구처럼 '모던의 시발점'으로서의 미술을 온전히 경험할 수 있달까... 하여간 굉장한 경험이었다.
관람하다 보니 점심시간이 가까워져 왔는데 샌드위치 같은 것을 미리 사서 들어가지 않았던 터라, 안에 있던 카페에서 간단히 머핀과 커피를 사서 허기를 달랬다. 이것이 파리에서 마신 사실상 첫 커피였던 셈인데, 맛은 무척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초코 머핀도 달고 맛있었다.
(Denys Puech - La Muse d'Andre Chenier)
오르세 미술관에서 본 작품 중에서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꽤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로 Denys Puech의 [La Muse d'Andre Chenier]라는 조각상이었다. 나는 그 앞에서 말을 잃고 한참을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앙드레 셰니에의 뮤즈'라는 뜻이려나. 하여간 조각가도, 작품에 대한 지식도 없었지만, 이 작품 앞에서는 그저 매혹되고 압도당했다. 오죽했으면 작품명을 따로 기록해두었을까.
오르세 미술관에는 회화뿐만 아니라 조각상도 무척 많이 전시되어 있다. 재밌게도 각 회화 전시실 안으로 들어가는 복도 부분에 조각상이 전시되어 있어서 굉장한 실내 장식 효과도 자아내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테이트 모던이 오르세 미술관보다 더 좋았다. 하지만, 오르세 미술관의 명성이 헛된 것이 아니라는 점만큼은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한 4-5시간을 오르세 미술관에서 보내고 밖으로 나오니, 파리가 왜 위대했는지, 왜 여전히 문화예술의 도시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오르세 미술관.
기차역이었던 과거가 그대로 전해지는 외관도 인상적이었다.
Musee d'Orsay.
오르세 미술관.
오르세 미술관은 바로 '오르세 미술관 역'에 있다. 이 고흐의 자화상은 그 역에 설치되어 있던 것. '이것이 파리다' 하는 식의 선언 같았다.
오르세 미술관을 다 보고 난 다음에는 생 미셸 광장으로 이동했다. 소르본 대학이 근처에 있기도 하고, 또 대학이 근처에 있으니 싸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점도 많다고 하는 얘기도 들었고, 또 나중에 저녁을 먹으러 숙소에 들어가기에도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곳이었기 때문. 과연 실제로도 그랬다. :)
주변을 둘러보다가 바게트에 소시지와 치즈를 넣은 간단한 간식 같은 것을 노점상에서 하나 사 먹었는데... 맛이 무척 좋았다. 이래서 파리구나... 하며 허기도 달래고 미감도 달랜 나는 다시금 걸음을 옮겼다.
이곳이 아마 소르본 대학 광장이었던 것 같다. 유럽 대학은 우리나라와 달리 대학 캠퍼스가 커다랗게 공간을 차지하는 게 아니라 그냥 대학 건물만 하나 덩그러니 길거리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았다.
과거와는 달리 소르본이 그냥 '파리 대학' 중 하나로 바뀌었다는 얘기는 유명하다만, 실제로 그렇게 적힌 것을 보니 조금 신기했다.
소르본.
Rue de Ecoles. '대학가' 정도로 번역될 수 있는 것 같다. 소르본 대학이 있는 거리의 이름.
팡테옹-소르본은 파리 1 대학이라고 한다.
소르본 대학은 위 사진에서도 볼 수 있듯 그 입구에 경찰이 한 명씩 서 있었다. 아마 일반인은 출입할 수 없는 것 같았고, 들어갈 수 있는지 굳이 물어보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그 대학의 학생이 아닌데 굳이 들어가서 뭘 할까 싶기도 했고, 또 영어도 잘 안 통한다니까 물어봤다가는 괜히 피곤한 일만 될 것 같았다.
마침 주변에 또 다른 유명한 건물인 '팡테옹'이 있어서 그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날이 살짝 흐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건물은 뭔가 다 멋졌다. 근데 만만하게 들어갈 수 있을 법한 건물은 별로 없었다.
팡테옹 앞으로 펼쳐진 거리.
이런 건물도 있었고..
팡테옹도 있었다. 이 건물의 역사는 꽤 흥미롭고 복잡해서, 예전에 흥미롭게 듣긴 했지만 지금은 잊어버렸다. 하여간 혁명 때 기여했던 '영웅'들의 묘지로 쓰이고 있는 공간이기도 하고, 그 유명한 푸코의 진자가 실제로 지금도 시연되고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팡테옹 입구.
학생 할인을 받아 들어가서 쭉 둘러보았는데, 꽤 굉장했다. 겉으로 보는 것만큼이나 속도 웅장하고 화려한 건물이었다. 지하에 있는 무덤도 살펴보았다. 유명한 이들의 무덤이 여럿 보였으나 지금은 누구였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팡테옹 광장.
이곳은 소르본 대학 출판사에서 출판한 책만 취급하는 서점으로 보였으나, 안으로 들어가 자세히 살펴보진 않아서 모르겠다. 하여간 겉면 유리창을 통해 대충 살펴본 바로는 뭔가 굉장했다. 불어를 할 수 있다면 삶은 굉장해지겠구나, 하는 감상도 얼핏 들었다.
그리고는 또 어딘지 모를 광장에 왔는데... 베를린에서는 저런 것이 하나 있으면 굉장한 관광지 취급을 받건만, 파리에서는 그냥 아주 흔한 기념비 정도밖에 되질 않는 것 같더라.
이렇게 하루 일정을 거의 다 마치고 숙소에 들어가 맛있는 밥을 먹고 조금 쉬다가 다시금 나왔다. 야경을 보려고 나왔던 것. 이번 여행에서 야경을 보는 일이 고되지 않았을뿐더러 그저 즐겁기만 했던 유일한 곳이 바로 파리였던 것 같다. 물론 치안에 대한 위험 탓에 불안한 측면은 분명히 있었지만, 그것을 빼고 보자면 파리는 밤이 무척 아름다운 도시였다. 나중에 파리에 간다면 시내 중심가에 있는 호텔에서 묵으며 그 야경을 방안에서 즐기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파리 숙박비가 너무 비싸서 가능할지 모르겠다.
생 미셸 거리가 숙소에서 가기에 가장 적당한 거리에 있어서 꽤 자주 간 편인데, 갈 때마다 좋았다. 특히 밤에 가면 팬티만 걸치고 바 안에서 즐겁게 춤을 추며 손님을 끌어모으는 남자 웨이터가 있는 바도 있고, 아이스크림 가게도 많고, 온갖 군것질거리를 파는 노점상도 많을 뿐만 아니라 레스토랑도 많고... 하여간 별천지더라. 그냥 눈으로만 구경해도 즐거운 곳이었다.
그리고는 다시금 센 강변을 거닐었음ㅋㅋ 아... 돈을 꽤 투자한다면 파리에 신혼여행을 오는 것이 가히 나쁘지 않은 일일 것 같았다. 센 강변과 가까이 있는 곳에 숙소를 잡아서 밤마다 이곳을 거닌다면 무척 좋을 듯.
무척 좋았지만, 살짝 무서운 감도 있었다. 사진으로는 잘 표현이 되지 않은 것 같다만.
파리는 과연 매혹적인 곳이었다. 하지만 그 매혹을 위해 감수해야 하는 부분도 적지 않은 곳이었다. 나는 그런 점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아서 파리를 덮어놓고 찬양하고 싶지는 않지만...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 이어져 온 파리의 영광만 놓고 보더라도, 살면서 꼭 한 번은 가보아야 하는 곳이라는 생각은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