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5일(금)
-브뤼셀에서 암스테르담까지, 폰델 공원
브뤼셀에서 암스테르담으로 이동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곧장 가는 기차가 1시간 간격으로 있기 때문이고, 3시간 정도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날은 조금 어려웠다. 무슨 사정인지 곧장 가는 기차는 곧장 가지 않았다. 암스테르담으로 가려는 승객은 중간에 네덜란드의 자그마한 역에서 내려서 버스를 타고 로테르담 역까지 가서 그곳에서 다시 암스테르담까지 가는... 기차를 타라는 안내방송이 수차례 나왔고, 나를 포함한 수많은 이들이 네덜란드의 자그마한 역에서 내려 그렇게 했다.
날도 무척 더웠기에 더욱 힘들었지만, 이번 여행에 가지고 갔던 캐리어 가방의 크기가 또 만만치 않아서 더더욱 그 과정이 힘겨웠다. 유럽에서 기차를 주로 타고 이동할 계획이라면 무조건 캐리어 가방은 20인치 이하의 것으로 들고 갈 것을 추천하고 싶다. 정말 여행 내내 가방 때문에 고생이 많았다.
숙소에 도착했을 때에는 진이 다 빠진 상태였다. 그래서 저녁 식사도 숙소 안에서 간단히 먹으려 했는데... 내가 묵던 곳에는 게스트 키친이 없어서 결국 배를 채우기 위해서 나갈 수밖에 없었다.
이날은 날씨가 좋았다.
암스테르담 시립극장.
운하의 도시다웠다.
너무 배는 고프고 식당을 찾을 여력은 없어서 길거리에서 파는 핫도그를 하나 사 먹었다. 물 한 병도 샀다. 그리고는 다시 숙소로 돌아갔다.
숙소로 향하는 골목길.
너무 피곤한 상태로 나갔던 것이었기에 곧장 들어왔지만, 쉴 만큼 쉬고 나니 저녁 식사를 하러 나갈 여력도 어느 정도 생겼다. 그래서 다시 숙소 밖으로 나섰다.
운하와 자전거.
사진은 찍지 않았지만, 온갖 식당과 카페와 패스드푸드점이 즐비한 레이체 광장이 숙소 바로 앞에 있었기에, 그곳에서 간단히 중국음식으로 저녁 식사를 해결했다.
감자튀김을 파는 가게도 무척 많았다. 나는 그중에서 식물성 기름으로 튀기고 저지방 마요네즈를 제공한다고 써 붙인 곳에서 하나 사서 먹었다. 맛은 최강이었다.
감자튀김을 들고 암스테르담의 대표적인 공원이라 할 수 있는 폰델 공원 공원으로 갔다. 숙소가 이 공원 바로 옆에 있었다.
좋았다.
이 사람이 바로 폰델. 17세기 작가라고 한다.
공원은 꽤 넓었고, 무척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런던과 파리에서 보아온 공원은 대체로 조용하고 한산한 편이었지만, 이곳은 곳곳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옹기종기 모여앉아 크게 떠들고 하는 모습이 쉽게 눈에 들어왔다. 일종의 자연 속에 있는 거대한 파티장 같았다.
공원 안에 있던 Eye라는 영화관에서는 잭 니콜슨 특별전을 하고 있었다. 좋아보였는데... 영화는 파리에서 볼만큼 봤다는 생각에 그냥 구경만 했다.
워낙 피곤했던 터라 이렇게 얼추 둘러보고 다시 숙소에 들어갔다. 암스테르담 역시 해가 늦게 졌다. 이날은 날씨가 꽤 좋은 편이었는데... 이날 이후로는 줄곧 비만 내려서 무척 우울하고 힘들었다.
7월 16일(토)
-중앙역, 하이네켄 체험관, 섹스박물관
트램을 타고 중앙역으로 가서 여러 안내책자를 구했다.
다른 곳은 몰라도 암스테르담의 관광 안내소 하나만큼은 그 어느 도시보다 잘 되어 있었다. 중앙역 곳곳에 서서 안내해주는 'Iamsterdam' 직원들도 무척 인상적이었고.
암스테르담은 또한 프렌차이즈 형태의 음식점이 유난히 눈에 잘 띄던 곳이기도 했다. 이처럼 되너 케밥 체인도 있었고, 'Wok to Walk'이란 중국음식 테이크아웃점이나 유사한 형태의 인도네시아 테이크아웃 전문점도 여럿 볼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암스테르담의 트램. 암스테르담은 버스나 지하철보다 트램이 시내 중심 지역을 가장 촘촘히 연결하고 있다.
암스테르담은 또한 자전거의 도시이기도 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 대다수는 트램을 이용했지만, 나머지는 자전거를 이용했다. 걷는 사람보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더 많아 보였을 정도. 저 앞으로 보이는 것은 자전거 주차장이다. :) 중앙역 옆에 건물 몇 채를 아우를 정도로 거대한 공간이 자전거로 빼곡히 차 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그 주변에 세워 놓은 자전거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원래 중앙역 주변을 둘러보려고 했으나 날씨가 궂은 상태여서 비가 쏟아질 것 같았다. 그래서 대신 조금 이른 시각이기는 했지만 하이네켄 체험관에 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마주친 동상.
하이네켄 체험관은 'Heineken Experience'란 명칭에 걸맞은 공간이었다.
예전 양조장 건물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지만, 지금은 이곳에서 맥주를 생산하지 않고 전시 목적으로만 활용되고 있었다.
첫 맥주 시음. 이것을 포함하여 총 석 잔의 맥주를 준다.
'영화관+클럽'의 분위기가 났다.
전문 DJ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나와 같은 입장객이었다. 이렇게 직접 디제잉을 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다.
이런 것도 있었고.
휴대폰 바탕화면으로 하면 좋을 것 같아 가까이 다가가서 한 장 더 찍었다. ㅎㅎ
이런 공간도 있었다. 하이네켄 TV 광고가 연도순으로 쭉 나오는 스크린이 각 의자 윗부분에 설치되어 있었다.
체험관의 중간 부분에서 처음으로 시음할 때 주는 작은 잔과는 달리 체험관 마지막 부분에 다다르면 매우 큰 잔에 담은 하이네켄 생맥주를 준다. 무척 시원하고 맛이 좋았다.
체험관 밖에 나오니 줄이 늘어서 있었다.
하이네켄 양조장.
전날 보았던 되너 케밥 체인점에 가서 케밥을 하나 사 먹었는데... 브뤼셀에서 먹었던 것만큼은 아니어도 역시나 맛이 좋았다.
암스테르담의 날씨는 변화무쌍했다. 비가 내리치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화창하게 개고... 이날은 그렇지만 꽤 꾸준히 그것도 무척 많은 양의 비가 내렸다. 덕분에 사진도 제대로 찍지 못했을뿐더러 돌아다니기도 어려웠다. 브뤼헤에서 한번 비 오는 날을 겪고 난 다음에 또 이런 날을 겪고 있자니 여행이고 뭐고 사소한 일에도 짜증과 욕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ㅋㅋㅋㅋ
담 광장에 갔다가 다시금 비가 쏟아져서 마침 그 근처에 있던 섹스박물관에 들어갔다. 기대치를 낮추고 보았던 것인데도 정말 매우매우 허접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곳을 둘러볼 바에야 홍등가를 한 번 더 둘러보는 것을 절대적으로 추천하고 싶다.
비 오는 날씨에 워낙 시달려서 저녁 식사만큼은 괜찮은 것으로 먹고 싶었다. 양고기를 먹었는데... 냄새도 나지 않고 맛도 상당히 좋았지만, 양이 조금 부족했고, 주문 과정의 착오로 음료 값을 이중으로 내서 좋은 음식을 먹고도 우울했다.
암스테르담은 여러모로 정신이 없는 곳이었다. 거기에다 비까지 쏟아지니 더더욱 어려웠다.
7월 17일(일)
-운하 유람선, 콘서트헤보우 공연
호스텔 아침 식사. 다른 것은 몰라도 아침 식사만큼은 무척 잘 나왔다. 뷔페 식인데 과일도 여러 종류로 비치되어 있고, 삶은 계란도 많고, 빵도 갓 구운 듯 뜨끈했고..
이날도 날씨가 엉망이었다. 오전 중에는 밖에 나갈 생각만 해도 피곤해서 가만히 있었는데, 오히려 가만히 있는 게 더 피곤해서, 빨래를 대충 하고는 점심도 먹을 겸 밖으로 나갔다.
Wok to Walk라는 중국음식 테이크아웃점에서 먹은 커리 치킨 볶음밥. 이것은 그래도 무난한 맛이었는데 첫날 먹었던 스윗 앤 사워 돼지고기 볶음밥은 정말로 느끼하고 별로였다.
이런 치즈가게도 있었다. 시식도 해볼 수 있어서 여러 가지 치즈를 먹어보았는데... 집만 가까우면 몇 덩어리 사서 나오고 싶었다.
꽃시장도 있었다. 근데 역시 딱히 사 가지고 갈 수 있는 게 아니다 보니 별 흥미는 생기지 않았다. 기념품도 함께 파는 곳이 많았다.
인사동처럼 그림을 파는 곳도 있었다. 일요일이어서 이런 특별한 시장을 비교적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날이 갠 틈을 타서 이렇게 돌아다녔지만 다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고민하다가 운하 유람선을 타기로 했다. 어차피 비가 와도 천장은 막혀있었기에 별 상관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운하 유람선에 탔다.
하지만 무척 실망스러웠다. 운하는 역시 유람선이 아니라 자그마한 보트를 타고 돌아다녀야 제격일 것 같다는 감상이 들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날이 개어서 중앙역 사진을 하나 찍었다.
이날 날씨가 줄곧 그랬듯 곧 다시 비가 내리기는 했지만, 그때까지 홍등가를 구경해보지 못했기에 그쪽으로 향했다. 당연한 일이기는 하지만, 홍등가는 사진을 찍으려 하면 포주 비슷한 이들이 나타나 사진기를 운하에 던져버린다는 얘기가 있어서 사진은 한 장도 없다. 한국의 홍등가와는 달리 무척 다양한 체구와 외모의 여성이 있었고... 정말 매혹적이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들도 있었지만, 보고 있자니 우울해졌다.
다음날 베를린으로 향하는 기차는 암스테르담 남역에서 탈 예정이었고, 중앙역과 남역은 제법 멀리 떨어져 있었으므로, 나는 미리 그곳에 한번 가보기로 했다. 가보니 주변이 휑했고, 역 같지 않은 곳에 들어가니 기차 플랫폼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이곳에서 기차를 탄 덕분에 중간에 갈아타지 않고 한번에 베를린까지 갈 수 있었다.
남역까지 가는 트램에서 '콘서트헤보우'를 지나치며 보았기에, 돌아오는 길에는 그곳에 내려보기로 했다.
그 앞에 내렸다.
콘서트헤보우 오케스트라는 바캉스 기간이어서 없었지만, 다른 곳의 오케스트라 여럿이 이곳에 초청되어 여름 내내 공연이 이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다행히도 이날에도 공연이 있었다. 학생 할인 티켓은 공연 한 시간 전부터 발권해주었다.
공연 시간이 애매했고, 저녁을 먹지 않았던 터라 바로 앞에 있던 마트에서 간단히 요깃거리를 사려 했는데 마트 규모가 생각보다 너무 크고 또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것 중에 끌리는 음식이 딱히 없어서 그냥 음료수 하나만 사서 먹었다.
공연은 무척 좋았다. 특히 콘서트헤보우 안내직원들은 무슨 명품매장 직원들처럼 딱 떨어지는 정장 차림이었고, 친절하기도 무척 친절했고, 외모도 젊고 건강한 서구인의 전형을 보여주듯 하나같이 훤칠하고 예뻤기에 그 공간에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압도당하는 기분이었다.
공연 도중에는 무료로 음료와 간식을 제공하기도 했는데... 와인을 비롯하여 제공하는 음료 수준이 상당히 높았다. 덕분에 허기를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었다.
공연이 끝나고 난 다음에는 다시금 비가 쏟아졌다.
암스테르담은 서구사회의 자본주의와 개인주의, 그리고 합리주의가 가장 완벽히 조화를 이룬 도시처럼 보였다. 그만큼 개방적이고 자유롭고 활기차지만, 돈이 없거나 외모가 부족하거나 성격이 개방적이지 않은 이들에게는 그만큼 닫힌 공간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암스테르담에 다시금 가게 된다면, 정말 정신을 놓고 한번 원 없이 놀아보자는 생각이 나를 온통 감싸서 어찌할 수 없을 때 가게 될 것 같다. 그때에는 암스테르담의 날씨가 안 좋더라도 무척 재밌을 것으로 확신한다. 하지만 그날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