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방문기

008. 금호동 고구마 : 역사와 문화를 지키는 헌책 창고

아는사람 2009. 2. 21. 19:40



 

상호 : 고구마

주소 : 서울특별시 성동구 금호2가 10-2

규모 : 지상 1층, 지하 1층. 약 30만 권 보유.

여는 시간 : (평일) 오전 9시~오후 7시

                (일요일 및 공휴일) 오전 10시~오후 7시

홈페이지 : http://www.goguma.co.kr/



이름부터 조금 특이한 헌책방, [고구마]에 다녀왔습니다. [고구마]는 사실 오프라인 헌책방보다 국내 최대 규모의 인터넷 헌책방으로 잘 알려진 곳이기에 선뜻 방문할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만, 최근에 관련 글을 찾아보다가, 그러한 온라인의 명성에 못지않게 오프라인의 명성도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서울 최대 규모의 헌책방이라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사실이 그렇다면 한 번 직접 방문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한 번 직접 방문해보았습니다. 


5호선 신금호역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곳이기는 하지만, 사는 곳이 신금호역보다 3호선 금호역에 더 가깝다면, 금호역 2번 출구 앞에 있는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05번 버스를 타고 신금호역까지 가는 편이 더 빠릅니다. 실제로 저도 그렇게 갔는데, 마을버스라 그리 넓지는 않았지만 여러 번 갈아타지 않고 바로 신금호역까지 갈 수 있어서 좋았고, 또 같은 동네에 사는 것으로 보이는 아주머니 분들이 버스에서 만나 서로 담소를 나누는 정겨운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더 좋았습니다.


금호동에 있는 이 [고구마] 헌책방은, 간단히 설명해보자면 지상 1층, 지하 1층으로 이루어진 헌책방이지만, 더 자세히 설명해보자면 지하 1층을 중심으로, 지상 여러 곳에 매장이 나누어진 헌책방입니다. 지상에 있는 여러 공간은 정확히 확인해보지는 않았지만 얼추 세 곳 정도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선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가 있는데요,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의 양옆에 있는 서재에는 각종 교과서가 꽂혀 있습니다. 그다음에는 아동서적 및 참고서를 전문으로 파는 공간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직원 한 분이 따로 있기도 하지요. 마지막으로 [고구마] 간판이 달린 건물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만화책만 전문으로 파는 곳이 있습니다. 이곳은 다른 건물에 있는 곳이어서 그런지, 항시 열어두는 것 같지는 않더군요.


지하 공간은 앞서 언급했듯 단 한 곳뿐인데요, 그곳에는 당연하게도 지상에서 취급하지 않은 다른 모든 분야의 책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에는 LP판 두 장이 붙어 있는 유리문이 있어서, 느긋하게 앉아 차를 마시고 기타를 치는 사람들이 있는 지하 카페가 얼핏 연상되기도 했습니다만, 실제로 [고구마]의 지하에서 그러한 면모를 찾아보기란 어려웠습니다. 그러한 장면을 묘사한 대목이 있는 책은 많을 것 같았지만요.


내려가는 입구 부근에는 LP판이 달린 유리문뿐만 아니라 지하 1층이 "창고"임을 안내하는 문구가 붙어 있기도 합니다. [고구마]의 지하는 정말 말 그대로 '창고' 같은 곳입니다. 겨울이라 옷을 조금 껴입은 탓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그렇게 몸집이 큰 편이 아님에도 이 [고구마]의 지하를 둘러보는 동안만큼은 소인국에 갔던 걸리버의 심정을 어느 정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헌책방은 보통 비좁기 마련이지만, 이곳은 그 정도가 지나칠 정도여서 책장 사이를 한 사람이 비집고 들어가는 것으로도 공간이 남아나질 않더군요. 게걸음을 하며 살펴보아도 비좁을 정도였습니다. 그렇듯 비좁은 탓에, 책장 사이에 꽂혀 있는 책을 살펴보려면 바로 눈앞에 있는 책을 살펴보는 수고를 감내해야 했고, 또 허리를 굽히는 일도 힘겨웠기에 눈높이에 있는 책 위주로 살펴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홈페이지에도 나와있듯, 하루에도 1천여 권의 책이 나왔다 들어가곤 하는 규모, 총 30만 권의 책을 관리하는 규모의 헌책방이 어떻게 보면 웬만한 가정집 하나 크기 정도밖에 되질 않으니 그러한 창고다운 면모는 피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한 비좁음에도, [고구마]의 가장 노릇노릇하게 익은 부분은 바로 이 지하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가장 많은 책이 보관되어 있다는 단순한 측면에서도 그렇고, 다른 면에서도 그렇습니다. 직원 대다수가 이곳 지하에 있다는 측면, 창고라는 표현과 걸맞지 않게 지하에 있는 책이 종류 및 제목별로 잘 정리되어 있다는 측면 등등에서 그러하지요. 책이 저자별로 정리되어 있다면 구경하는 사람이 보기에는 더 편리할 것도 같았지만, 비좁은 책장을 고려해보자면 그러한 편리함은 있으나 마나 한 점이기에, 제목별로 정리해놓은 것은 정말 [고구마]에 걸맞은 분류방법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책을 살펴보기에는 다소 불편했지만, 온라인으로 방문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일 것도 같았습니다. 저처럼 [고구마]를 오프라인으로 다녀간 분들의 방문기를 검색해보니, '직원들도 특정한 책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모르거나 알아도 다른 일로 바쁜 탓인지 찾아주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긴 글도 있더군요. 실제로 제가 방문했을 때도 새로 들어온 헌책을 진열하려는 것인지 주문이 들어온 책을 옮기려는 것인지, 시종일관 책을 들고 이곳저곳으로 분주히 움직이는 직원분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계산대에 있던 직원분도 전화로 주문확인을 하고 무엇인가를 적느라 그리 한가하게 보이지는 않았고요.


[고구마]의 장점은 그러한 맥락에서라도, 온라인을 통해 더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책을 찾고 주문하는 과정이 불편하지 않다는 데 우선적인 장점이 있을 테니까요. 인터넷 서점의 그러한 보편적인 장점과 함께, [고구마]만의 장점도 있는데요, 그것은 바로 책 상태가 홈페이지에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헌책을 사는 일이란 아무래도 실제로 헌책방에 찾아가지 않는 이상 그 상태를 정확히 유추할 수가 없어, 상태에 관계없이 꼭 필요한 책이 아닌 이상, 사들이기가 꺼려질 수밖에 없죠. 그러한 점을 인터넷 헌책방의 '가장 어려운 부분'으로 일컬은 [고구마]답게, 이곳의 홈페이지에는 다른 인터넷 헌책방과는 달리 각 책의 상태가 무척 자세하게 표시되어 있습니다. '상·중·하' 혹은 '양호·불량' 같은 식의 설명 대신, "본문 밑줄필기, 하드커버 책등하단부 찢어짐" 같은 식의 묘사가 있는 것이지요.


공식적인 자료를 찾아보지 않아서, 정말 [고구마]가 서울에서 가장 큰 헌책방인지, 가장 큰 인터넷 헌책방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규모가) 크다기보다는 (책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동안 다녀본 헌책방 중에서 가장 큰 축에 속한다는 감상도 들었지만, 저의 견문이 좁은 탓에 별 의미가 있는 지표가 될 것 같지는 않네요. 아무쪼록 금호동 근처에 사신다면 한 번쯤 방문해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면 온라인으로 방문하시는 것만으로도 좋은 경험이 될 듯싶습니다. 간판에 있는 "헌책은 역사이며 문화입니다"라는 문구가 그저 단순한 미사여구라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앞으로도 이곳이 나름의 역사와 문화를 잘 지켜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