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방문기

010. 개포동 서적백화점 : 강남의 욕망, 욕망의 역설

아는사람 2009. 3. 2. 16:32



 

상호 : 서적백화점(북마트)

주소 : 서울특별시 강남구 개포동 168-8

전화번호 :  02-576-2179

규모 : 지하 1층(내부 복층 형식), 새책까지 포함하면 웬만한 대형서점과 엇비슷함.

홈페이지 : http://www.bookmart.co.kr/


 

강남구 개포동에 있는 [서적백화점]에 다녀왔습니다. 서점 이름에서도 얼추 유추해볼 수 있듯, 이곳은 자그마한 헌책방도 아니고, 헌책만 파는 공간도 아닙니다. 서점이 있는 지하로 내려가 보면 백화점이라기보다는 공판장에 가까운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 곳에 있는 계산대, 가족 단위의 손님, LCD창을 통해 구석진 부분을 비춰주는 CCTV ……. 매장 대부분은 할인해서 파는 전집 도서나 문제집 등과 일반서적이 차지하고 있고, 헌책만 전문으로 파는 공간이 한쪽에 자그마하게 있지요.


직접 매장을 방문하기 전에 들러본 홈페이지에서, "박리다매의 원칙을 기본으로 장사하겠습니다"라는 문구를 보고 어렴풋이 짐작했던 이 헌책방의 성격을 그대로 확인할 수 있었던 셈이랄까요. 소비자로서는 물론 값싼 책이 좋지만 대놓고 그러한 방식으로만 운영되는 책방에는 쉽사리 정이 가지 않더군요. 어쩌면 이처럼 냉혹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순수하게 책을 파는 것만으로 살아남으려면 그러한 방식이 필요할 수밖에 없으리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실제로 영국 웨일스에 있는 헌책방 마을 헤이온와이를 탄생케 하고 부흥케 했던 원동력인 [리처드 부스 서점] 역시, 대량으로 책을 사들여서 최대한 많이 파는 데에서 이익을 냈던 곳임을, 리처드 부스의 『헌책방 마을 헤이온 와이』를 읽으며 알게 되었던 기억도 났고요.


일체 사업적인 부분을 따지지 않고 양질의 책만을 취급하며, 책을 향한 사랑만으로 헌책방을 운영하는 그러한 헌책방 주인의 모습은 냉정하게 따져보자면 이상향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처음 시작이 그랬다고 할지라도, 생활은 그러한 그를 가만히 놔두지 않을 것이며, 그가 아무리 굳건하게 버티려고 할지라도, 현실이 그를 매몰차게 떠밀 테니까요. 실제로 그러한 모습에 최대한 가깝게 운영되는 헌책방이 한국에 몇 군데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다 가보지는 못했지만, 박리다매의 원칙을 변칙적으로나마 적용하지 않는 이상 헌책을 사고파는 것 외에 다른 부수적인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 같더군요. 


그렇게 나름대로 최대한 현실적인 관점에서 [서적백화점]을 보려고 했지만, 그 안에 있는 동안이나 밖으로 나온 다음이나, 여전히 유쾌하다기보다는 씁쓸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사실 안에 있던 손님 중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님이 거의 90%를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습니다. 계산대는 항시 붐비는 모습이었는데, 몇만 원 어치부터 몇십만 원 어치까지, 각종 문제집과 논술대비 서적을 결제하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아동용 서적이 진열된 부분에는 특히 사람이 많았고요. 어쩌면 신학기여서 더 많았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서점 측에서는 싼값으로 많은 이익을 노리고 손님 측에서는 저렴한 비용으로 자녀의 값비싼 미래를 대비하는 모습으로 보여서, 씁쓸했던 것만큼 허탈한 웃음도 나오더군요.


이러한 현상은 비단 강남에만 있는 것은 아니겠죠. 강남에서 유독 두드러지는 것일 테고, 재정적 여력만 된다면 얼마든지 강남의 부모와 똑같이 자녀를 다룰 의사가 있는 수많은 이들, 각 지역에서 나름대로 온 힘을 다해 자녀를 '교육'시키려는 이들을 생각해보면 전국적인 현상으로 일컬을 수 있을 겁니다. 이것은 분명히 탐욕스러운 부모 개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그러한 부모의 탐욕을 강요하는 이 사회의 문제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가뜩이나 1등이 아니면 만족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그러한 현실을 공고히 하는 이데올로기를 더더욱 확산시키는 사회가, 어떻게 이 과열된 교육열과 무관할 수 있겠습니까. 부모는 단지 그러한 현실이 허구가 아님을 스스로 경험한 세대로서, 자식에게 최고가 되기를 강요할 뿐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늘 패배의식에 젖어서 살아야 할뿐더러, 요즘처럼 비정규직만 끓어 넘치는 사회 속에서는 끊임없는 생활의 불안함 속에서 지내야 할 테니까요. 역설적인 부분은 최고가 되더라도, 이 가혹한 경쟁사회에서는 불안하고 초조한 심리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지요. 김연아가 '최고'임을 역설하는 수많은 광고도 그러한 맥락에서 그리 멋지게 보이지는 않더군요. 


현재 제가 가장 관심을 두는 분야는 문학이지만, 학창시절에는 국어 시간이 그리 즐겁지 않았습니다. 강요받아서 접하는 것과 스스로 흥미가 일어서 접하는 것에는 많은 차이가 있음을 깨닫게 된 것도 그 덕분이었죠. 결국 논술 공부를 위해 부모가 자녀에게 독서를 강요한다고 해서, 그것이 꼭 수많은 독서가를 탄생케 하는 바탕이 된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겁니다. 현실은 그러나 다면적이지요. 처음에는 독서가 삶에 유용한 것이라는 믿음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어도 어느 순간부터인가 책 자체의 마력에 빠져 독서를 하게 되는 학생도 분명히 생겨날 것입니다. 논술공부가 어쨌든 많은 학생을 독서행위로 초대하기는 하니까요.


독서는 무조건 긍정적인 일일까요? 개인적으로는 독서가 주위에서 흔히 말하듯 이 세상 모든 행위를 앞지르는 절대적인 선으로 여겨지지는 않더군요. 삶과 직접 소통하는 길을 터주는 역할, 그러한 길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 정도가 책이 할 수 있는 전부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어떠한 책은 삶 그 자체를 능가할 정도로 대단하지요. 하지만 그러한 일이 책을 통해서만 경험할 수 있는 것도 아닐뿐더러, 책 속에만 틀어박힌 삶이 삶 속에만 틀어박힌 것을 밀쳐내는 일도 있지요. 한 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어놓는 영화, 수많은 젊은이에게 현실에 안주하는 대신 꿈을 좇아갈 용기를 주는 음악, 다른 사람과의 만남과 헤어짐처럼 이루 헤아릴 수 없는 폭의 경험을 안겨주는 실질적인 삶의 여러 요소. 이러한 것을 배척하는 독서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적절한 독서방법에 관한 논의가 필요한 이유, 독서가 지고의 선이라는 명제를 회의해보아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러한 맥락에서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요. 

한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서 독서량이 낮은 편이라는 말이 일리가 있는 것이라면, 이 땅에서만큼은 당분간 독서가 지고의 선으로 여겨져도 큰 무리는 없겠지요. 주입식 교육이 끼친 악영향은 어쩌면 그렇듯 획일적으로 낮은 독서량, 획일적으로 높은 독서 열풍 등의 현상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앞에서 논술교육의 긍정적인 측면을 언급했습니다만, 그러한 강제적인 독서교육법만으로는 문제가 쉽사리 해결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독서와 글쓰기마저 일률적으로 경쟁시키다니요! 경쟁이 없으면 학생이 도태된다는 말이 아주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경쟁밖에 있는 게 없다고 해도 도태하는 학생은 여전히 있지 않을까요? 그 경쟁이 공평한 바탕에서 각자의 재능을 발굴하고 격려해주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대신, 획일적인 시스템 속에서 획일적인 기준으로 이루어진다면 더더욱 그럴 것이고요.


[서적백화점]의 씁쓸한 풍경 속에는 다른 책도 많았지만 헌책 역시 많았습니다. 그것도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헌책이 진열되어 있었지요. 그 모든 책은 저렴한 편이었고요. 박리다매가 원칙이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마음에 드는 책이 꽤 많아서 저 역시 그 원칙에 따랐습니다. 회원카드를 발급하는 공간이 따로 있을 정도로, 장사가 잘되는 것 같더군요. 그곳에서 어렴풋이나마 읽을 수 있었던 강남의 욕망과 그 욕망이 역설하는 바가 지상으로 올라온 다음에도 한동안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서적백화점] 앞에 다른 개성적인 명칭이 붙을 수 있는 날이 온다면, 그곳이 문제집이나 아동서적전집이 아닌 일반서적을 위주로 '박리다매' 전략을 펼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세상은 그래도 조금이나마 덜 각박한 공간으로 변해있겠죠. 그러한 날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