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백/영화

애니 홀(Annie Hall, 1977) : 우디 앨런의 픽션

아는사람 2009. 1. 13. 16:25

애니 홀
감독 우디 앨런 (1977 / 미국)
출연 우디 앨런, 토니 로버츠, 다이앤 키튼, 크리스토퍼 월켄
상세보기

우디 앨런 : 뉴요커의 페이소스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로버트 E. 카프시스 (마음산책, 2008년)
상세보기

 

저는 [마음산책]에서 발간된 영화관련서적을 좋아합니다. 『박찬욱의 몽타주 오마주 세트』, 김영하의 『굴비낚시』, 김지운 감독의 『숏컷』, 짐 자무시 감독의 인터뷰집 『짐 자무시』등 제가 읽어본 책만으로 유추해보자면, 유쾌하고 쿨하고 또 모방심리를 조장한다는 공통분모가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마음산책]은 사실 영화분야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예술, 문학, 인문학)에서도 양질의 책을 여럿 선보인 출판사입니다. 예전에 무척 인상 깊게 읽었던 박영택의 『예술가로 산다는 것』도 이 출판사에서 나온 책임을 뒤늦게 확인하고 '역시나' 했던 기억이 나네요.


우디 앨런의 인터뷰집, 『우디 앨런 : 뉴요커의 페이소스』(이하 『우디 앨런』) 역시 [마음산책]에서 나온 책입니다. 저는 사실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습니다. 우디 앨런이 영화 속에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그의 취향이라든지 염세주의적인 세계관 같은 것이 거슬렸기 때문은 아닙니다. 오히려 상당부분 공감했지요. 저에게 거슬렸던 부분은 오히려 제가 공감했다는 데 있었습니다. 그의 주제는 인류보편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중산층만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우디 앨런이 주로 연기하는, 대머리에다가 키도 작고 매사에 부정적인 남성 캐릭터가 쉽게 여성의 사랑을 얻곤 하는 모습도 쉽사리 받아들여지지 않았고요. 그와 마찬가지로 키도 작고 매사에 부정적인 사람으로서 도저히 공감할 수가 없더군요…….


다행히도 저는 작년에 우디 앨런이 등장하지 않는 우디 앨런의 영화 <카이로의 붉은 장미Purple Rose of Cairo>를 보고 나서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호감을 느꼈고, 올해 마음산책에서 나온 그의 인터뷰집을 읽음으로써 예전에 지녔던 편견을 상당부분 없앨 수 있었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새삼스레 실감했다고나 할까요. 저는 제가 우디 앨런의 영화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영화 속 그의 모습이 실제 그의 모습과 정확히 일치한다고 지레짐작했던 데 있음을 발견했고, 그러한 짐작이 오해였음을 그의 인터뷰집을 통해 확인했습니다. 그 후 다시 감상한 <애니 홀Annie Hall>은 오해를 극복하기 전에 감상했던 <애니 홀>보다 훨씬 더 아름답게 느껴졌고요.

 '
애니 홀'은 다이안 키튼이 영화 속에서 열연한 여주인공의 이름입니다. 그녀는 염세적인 세계관을 지닌 코미디언 앨비 싱어와 사랑에 빠지게 되죠. 앞서 언급했던 부분, 즉 어느 모로 보나 외면적으로 '멋진' 남성이 아닌 우디 앨런이 연기하는 남성캐릭터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애니 홀은 외면적으로 아름다운 편이기에, 그리 자연스러운 구도가 나오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애니 홀이 단지 아름답기만 한 여성이 아니라 사진과 노래에 재능이 있는 여성이기도 하듯, 앨비 싱어 역시 단지 키가 작고 탈모 증세가 있는 남성이 아니라 실제 우디 앨런만큼이나 지적이고 위트가 넘치는 남성이기도 하기에 그러한 조화는 또 그럴듯하게 받아들여지기도 합니다. 그들은 결국, 앨비 싱어가 극중에서 말하듯, 비이성적이고 우발적으로 만나 이해하고 오해하며 서로 사랑하는, 평범한 커플일 뿐이지요.


뉴욕을 다소 낭만적으로 그려내는 데 일가견이 있는 우디 앨런의 영화답게, 이 영화 속 맨하탄의 모습은 수다스럽고 복잡하기는 해도 무척 사랑스러운 편입니다. 화면 톤은 담백하고 차분하지만 결코 밋밋하지는 않지요. 우디 앨런 특유의 유머도 쉴 새 없이 등장하는데요, '형이상학 시험에서 옆자리에 앉은 학생의 영혼을 커닝하는 바람에 낙제했다'는 농담처럼 근사한 유머감각으로 무장한 우디 앨런의 매력을 마음껏 느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데이트 상대에게 잘 보이고자 마셜 맥루언을 인용하며 펠리니나 베케트의 작품을 제멋대로 평하는 남자에게 앨비 싱어가 진짜 마셜 맥루언을 소개시켜주는 장면도 그런 맥락에서 재밌게 보았습니다. 컬럼비아 대학에서 매스미디어에 관한 강의를 한다는 그 남자는 카메오로 출연한 맥루언으로부터 '자네는 나의 이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네'라는 얘기를 듣고야 말지요.   


우디 앨런이 연기하는 앨비 싱어는 앞서 언급했듯 비관적인 생각으로 가득 찬 인물입니다. 그가 하는 행동보다는 대사로 그러한 면면을 더욱 잘 유추해볼 수 있는데요, 애니 홀과 함께 서점에 가서 죽음과 관한 책을 골라주는 장면에서 앨비 싱어가 한 대사, 즉 '세상에는 두 가지 유형의 사람이 있다'는 그의 생각을 말해주는 대사가 개인적으로는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그 두 유형은 바로 "끔찍한horrible 사람"과 "괴로운miserable 사람"입니다. 끔찍한 사람은 말 그대로 끔찍한 상황에 놓여 있는 이들, 다시 말하자면 노숙자나 불치병 환자나 중증 장애인처럼 일반적인 것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운 여건에서 살아가는 사람인 반면, 괴로운 사람은 그 끔찍한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을 가리킨다고 그는 말하지요. 그런 맥락에서 '괴로운 사람인 것에 감사해야한다,'고도 말하고요.


경제적인 수준이 평균 이상인 국가에 사는 중산층의 정신적인 고통. 저는 그러한 고통 역시 간과할 수 없는 것임은 줄곧 인정했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그것을, 이 세상에 "끔찍한 사람"의 고통이 있는 한 함부로 발설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굳이 꼭 표현해야한다면 그러한 현실을 염두에 둔 채 조심스레 해야 할 것으로 생각했고요. 우디 앨런의 영화 속에 나오는 비관적인 인물의 고통에 공감할 수는 있었어도, 그가 자신의 고통을 너무나도 당당하게 내세우는 태도에 공감할 수 없었던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습니다. 그것도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나니 저의 오해였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우디 앨런은 『우디 앨런』에서도 그렇듯 영화 속에서도 분명히 끔찍한 사람의 고통, 즉 굶주리는 이들의 고통이 최악임을 인정합니다. 그는 다만 그러한 고통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으로서, 돈이 있어도 불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얘기할 뿐이지요.


그는 실제로 굉장히 비관적인 시선으로 삶을 바라보지만, 그가 살아가는 모습은 그리 비관적이지만은 않습니다. 매년 한 편씩 영화를 만들어내고, 월요일마다 재즈 클럽에서 클라리넷을 연주하고, 그러면서 <뉴요커The New Yorker>에 에세이나 단편소설 등을 연재하기도 합니다. 적어도 『우디 앨런』에 실린 다수의 인터뷰가 집필되었을 당시에는 그랬다고 하지만, 지금은 나이가 나이인 만큼 예전 같지는 않을지도 모르겠네요. 바쁘고 활기차게 살아가는 것도 사실은 괴로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행위distraction라고 고백하는 우디 앨런은 정말 여러모로 괴로운 사람임에 분명하지만, 다시 <애니 홀>을 감상하는 동안 그가 예외적이라는 생각, 그의 작품이 편협한 세계에 갇혀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우디 앨런의 픽션 <애니 홀>은 애니 홀과 이별한 이후 우정을 나누며 또 다른 사랑을 기약하는 앨비 싱어의 독백으로 끝을 맺습니다. 저 역시 우디 앨런과 비슷한 세계관을 지닌 사람으로서, 그러한 결말이 주는 위안에 적잖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 세상은 누구에게나 괴로운 것일지도 모르지만, 이 세상에는 그만큼 즐거운 일도 얼마든지 있지요. 그것이 단지 괴로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행위라고 할지라도, 그 일을 하는 순간만큼은, 그리고 그 순간을 떠올릴 때만큼은 분명히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그 중에서도 가장 괴롭고 가장 즐거운 일인 것 같고요. 비관주의자 역시 긍정적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비결이 있다면 바로 그러한 괴로움을 전제로 즐거움을 찾아나서는 데 있지 않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사랑합시다, 여러분!  

 

별점 : ★★ (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