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어 달 전쯤, 제가 사는 곳 근처에 시립도서관이 새로 생겼습니다. 예전에는 도서관에 가려면 차를 타고 20분 정도 가야 해서 불편했는데, 새로 생긴 곳까지는 걸어서 10분 정도면 갈 수 있어서 좋더라고요. 더군다나 새로 생긴 도서관은 기존에 제가 다니던 곳보다 그 규모가 못해도 서너 배는 더 커서, 한동안 헌책방을 잊은 채 정신없이 도서관에 들락날락거렸습니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느냐, 책방에서 사서 읽느냐! 몇몇 애서가에게는 햄릿의 질문보다 더 무겁게 다가온 적이 있을법한 질문 아닐까요? 둘 다 장점이 있겠지만, 어느 쪽이건 한쪽만 택하면 불편하겠지요. 도서관에서만 빌려 읽는다면 갑자기 어떠한 구절을 확인해보고 싶다거나 도서관 휴일에 읽고 싶은 책이 생겼을 때 그냥 꾹 참는 수밖에 없고, 책방에서 사서 읽기만 한다면 헌책방을 자주 이용한다고 해도 경제적 부담이 심해서 읽고 싶은 책보다 읽을 수 있는 책을 따지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약간 시답지 않은 결론이겠지만, 역시 '중용'이 적절한 해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니라면, 시기별로 몰아서 도서관에서 빌려보기만 하는 시기, 혹은 책방에서 사서 읽기만 하는 시기를 번갈아 맞이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고요.
헌책방과 도서관은 그리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의외로 공통점이 많은 공간입니다. 일단 두 곳 모두 책을 취급하는 공간이고, 또 누군가가 이미 읽은 책이 서재에 꽂혀 있는 공간이며, 일반 서점에서 구하기 힘든 책을 찾아보는 데 좋은 공간이기도 하지요. 한쪽은 사고파는 식으로 책을 거래하고, 다른 쪽은 빌려주고 돌려받는 식으로 책을 공유하는 곳이지만, 때로는 사고파는 곳에서 다른 이들과 공유하고픈 책을 발견하고, 공유하는 곳에서 꼭 사고 싶은 책을 발견하는 일이 종종 생기기도 한다는 점에서, 서로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을 겁니다.
나중에 제가 만약 책을 많이 사 모으게 된다면, 그 모든 '헌책'으로 [헌책 도서관]을 하나 운영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헌책방이 아니라 헌책도서관이라는 점만 제외하면, 서울 은평구에 있는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과 흡사한 공간이 될 것 같습니다. 일반 도서관 같이 대출 및 반납으로 책을 공유하되, 대출해서 읽어보고도 정말 꼭 사고 싶은 책이 있는데 시중에서 구할 수 없으면, '자신이 소장하고픈 이유'에 관한 글 한 편(혹은 독후감)을 제출하고, 도서관 이용고객 중 몇 명을 선발해 그 글을 검토하고 나서 판매 여부를 결정하는, 그런 변칙적인 제도 몇 가지를 도입하는 겁니다. 열람실 외에 아트홀을 하나 만들어서 음악공연이나 기타 강좌를 여는 데 활용하고, 근처 텃밭에서 직접 채소를 키워서 음식재료로 활용하는 카페테리아도 하나 마련하고…… 뭐 이러면 좋지 않을까요?
그리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는 '이상'에 불과하지만, 이러한 이상을 현실로 바꾸어놓는 분들의 모습을 보면 그냥 터무니없는 이상으로 취급할 일은 아닌 것도 같습니다. 제가 저렇게 하지 못한다면,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라도 한 번 헌책방과 도서관 사이의 적절한 균형을 맞추는 공간을 마련하는 데 도전해보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국가에서 공공도서관을 종합문화공간으로 운영하는 편이 가장 바람직할지도 모르겠네요. 아무튼 도서관이건 헌책방이건 둘 다 좋습니다! 헌책방이 점점 없어지는 요즘, 도서관이라도 좀 더 튼실하게 버텨주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