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6일(수)
-노트르담 대성당, 오페라 역 주변, 페르라세즈 공동묘지, 팔레 드 도쿄
파리 일정은 런던보다 조금 더 긴 7일이었다. 세부적인 일정은 아무것도 정한 게 없었다. 근교 도시로 나갈 계획이 없었고, 오로지 파리만 둘러보겠다는 생각으로 갔던 것이므로 정해놓을 이유도 없던 셈이다.
첫날에는 예전에 처음으로 유럽에 갔을 때 알게 된 지인을 만나기로 했다. 재밌게도 각자 따로 파리에 오기로 해놓고 보니 일정이 겹쳤던 것. 게다가 다들 파리에 오래 머무는 것도 아니었던 터라 그렇게 일정이 겹친다는 게 신기했다. 어쨌든 일행과 함께 돌아다닌 덕분에 파리가 어떠한 곳인지 더 빨리 감을 잡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민박집은 아낄 까샹이라고 발음되는 마을에 있었다. 이 담장은 민박집의 담장은 아니지만, 바로 가는 길목에 있었는데 예뻐서 사진으로 담았다.ㅎ 민박집 주변에는 이렇게 가만히 들여다보면 예쁘장한 담장과 표지판이 더러 보였다. 물론 그래피티로 도배된 벽이 압도적으로 더 많기는 했다. 적어도 내가 본 유럽은 그래피티 아트의 천국이었다.
런던에서 심해지기 시작한 감기는 파리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상비약으로 챙겨온 감기약을 다 먹었던 터라 민박집 사장님께 여쭈어보니 주변에 약국이 하나 있는데 영어도 잘 통한다며 가서 감기약을 달라고 말하면 알아서 줄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일찍 나와 약국 문 여는 시간을 이렇게 확인하고 길을 나섰다. 과연 프랑스 사람들이 영어를 아예 못한다는 것은 편견이다. 그냥 전반적으로 잘 못할 뿐이다..
전철을 타려고 역에 가니 입구에서 이런 무가지를 나누어주고 있었다. 사람 사는 게 달라 보여도 결국은 비슷하구나.. 하고 느꼈다. ㅎㅎ 심지어 이름도 메트로. ㅋㅋ 근데 불어를 모르니 읽지는 못하고 그냥 기념품처럼 들고 다녔다.
샤뜰레알 역. RER선을 비롯하여 파리 시내 주요 지하철역이 다 이곳과 연결되어 있다. 환승하는 구간이 짧을 때도 있지만 보통은 무척 긴데... 별다른 대안이 없어서 나는 이곳에서 주로 갈아타며 다녔다. 덕분에 꽤 걸었다.
일단 노트르담 대성당을 빠르게 훑어보고, 약국 여는 시간에 맞추어 다시 숙소 근처로 돌아왔다. 정말 얼마 안 걸렸음. 근데 감기약을 달라고 하니 커다란 물약을 주었다. 그것도 딱딱한 유리병 안에 담긴 것을. 그래서 첫날은 그냥 들고 다니다가 나중에는 그냥 아침저녁으로 숙소에 있을 때에만 먹었는데, 파리에 있는 동안 계속 먹으니 그 큰 병을 다 먹게 되더라. 그리고 조금 신기하게도 그 병을 다 먹고 벨기에에 가니 그제야 감기 기운이 다 사라진 상태가 되었다.
약을 처방받고도 약속시각까지는 여유가 있어서 다시 노트르담으로 갔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예전에 파리에 왔을 때 들렀던 곳이지만, 숙소와 가깝기도 하고... 약속시각 전까지 짧게 둘러보기에 좋을 것 같아서 찾아갔다.
노트르담 대성당 전면.
내부 사진 촬영은 금지라고 표시되어 있었지만, 그것을 지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도 처음엔 안 찍으려다가 나중에는 그냥 몇 장 찍었는데 역시 많이 찍지는 않았다. 성당 '내부'를 사진으로 담아 가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일인지 잘 모르겠다. 아무리 시끄럽던 사람도 이런 곳에 오면 침묵을 지키며 가만히 둘러보고 싶어지기 마련 아닌가? 하긴 근데 노트르담 대성당은 정말 분위기가 성당이라기보다는 관광객 집합소 같아서 별로 그런 분위기는 들지 않았다. 안타까운 일... 역사가 깊은 곳이고, 예전에는 이보다 더 아늑했던 시절이 있었을 텐데.
유럽 건축이야 사실 한국에서 콘크리트로 범벅된 건물만 보며 지내던 사람에게는 무엇이건 다 멋져 보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노트르담 대성당의 옆면. 가고일 같은 생명체가 나올 것 같은 분위기였다. 저 긴 줄은 나중에 알고 보니 성당 꼭대기에 올라가는 것을 기다리는 줄이었다. 민박집 아주머니도 노트르담 대성당은 꼭대기에 올라가야 진짜라고 해서 나도 한번 올라가 보려 했는데 이곳저곳 둘러보다 보니 결국 못 봤다. 나중에 다시 가게 된다면 꼭 올라가 볼 생각.
계속 걸어가다 보니 뒤쪽에 자그마한 공원 같은 게 하나 있었다. 노트르담 대성당의 뒷면은 앞이나 옆에서 보던 것과는 또 다른 모습을 자랑했다.
이날도 날씨는 좋았다. 파리에 있을 때까지는 날씨가 좋은 편이었다.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다 다르게 보인다.
이렇게 다리를 건너가서도 보았는데... 또 달라 보이더라.
노트르담 대성당은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큰 감흥이 일지는 않았던 곳이다. 이런 고딕 양식의 건물이 내가 생각하는 '성당'의 이미지와 잘 안 맞기 때문인 듯.
그리고는 주변을 걷기 시작했는데, 참 좋았다. '파리'하면 떠오르던, 센강변을 따라 걷는 일을 드디어 하게 된 것. 무척 아름답고 좋았다.
다리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정작 유명한 퐁 네프 다리나 알렉상드르 3세 다리는 그냥 그랬고, 이렇듯 일반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아기자기한 다리가 더 좋았다. 이곳은 생 미셸 다리.
퐁 생 미셸.
다음으로 향한 곳은 약속장소였던 오페라 역이다. 파리의 '오페라' 역하면 뭔가 촌스러운 느낌이 들었는데(특정명사 없이 그냥 오페라라는 단어만 있는 게 낯설고 좀 그랬다) 막상 가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화려한 곳이었다. 하지만 역시 지하철역의 더러움 탓에 그 화려함이 제대로 체감되지는 않았다.
오페라 가르니에. 예전에는 오페라 공연을 비롯하여 다양한 공연을 이곳에서 했다고 하지만, 이제는 발레 공연밖에 하지 않는다고. 파리에서 클래식 공연을 볼 생각이었는데 너무 늦게 알아보는 바람에 보지는 못했으나... 여름에도 다양한 오페라, 클래식 공연이 있기는 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유니클로가 보였다. 유럽에서 유니클로라니 ㅎㅎ 조금 재밌어서 찍었다. 이날은 아니고 나중에 한번 들어가 보았는데 직원들이 큰 목소리로 인사하고, 쉴 새 없이 옷을 정리하고 하는 모습이 한국하고 똑같아서 신기했다.
오페라 가르니에 건물 탐방.
이런 조각상이 사방에 있었다.
바흐와 이름 모를 여인.
입구... 는 옆에 있다는 표시.
멋진 건물이었다.
둘러보다 보니 곧 약속시간이 되었고, 일행을 만났다. 오랜만에 보니 반갑고 좋았지만, 내 성격이나 주변머리 탓에 제대로 표현은 못 했다. 함께 다니는 내내 그런 점 때문에 조금 신경이 쓰이기도 했다. 혼자 이렇게 여행을 다녀온 것도 내가 다른 누군가와 함께하는 데 너무 미숙하고 나아질 기미가 없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혼자 있으면 가끔 외로울 때도 있지만, 누군가와 함께할 때보다는 거의 항상 더 편하고 좋은 편이다. 근데 또 정말 그런 것인지는 가만히 생각해볼 문제다.
오페라 역 주변에서 만난 우리는 잠시 걷다가 파리 곳곳에 체인처럼 있다는 프랑스 음식 레스토랑 한 곳에 들어갔다. 일행 중 한 명이 프랑스 리옹 부근에서 1년간 살았던 경험이 있기에 주문을 하는 데 큰 불편함은 없었는데... 종업원의 서비스가 너무 엉망이었다. 음식도 늦게 가져다주고, 웃지도 않고, 한번 음식을 가져다준 다음에는 쳐다볼 생각도 않고... 나중에 화장실 갈 때 보니 식당이 거대했는데, 그래서 더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나중에 돌아다녀 보니 파리 식당의 서비스가 다 그렇게 엉망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집이 더러 있기는 했다.
그렇게 점심을 먹고, 그다음 일정으로 간 곳은 페르라세즈 공동묘지. 내가 어쩌다 꺼낸 말 때문에 가게 된 것인데, 사실 나는 이 묘지가 그렇게 넓은 곳인 줄 몰랐다. 나중에 가이드북을 보니 '걷기 편한 신발을 신고 갈 것'이란 안내가 나와 있더라. 그만큼 넓기도 했고, 돌길로만 되어 있는 데다가 경사까지 심해서 말 그대로 고행길이었다ㅋ 그래서 보고자 했던 묘지를 제대로 다 둘러보지도 못했다. 나중에 다시 와야겠다고 생각했으나 이 역시 다른 곳을 둘러보다 보니 다시 오지는 못했다. 역시 파리에 다시 오면 날씨 좋을 때 한 번 더 들러보아야겠다.
고생하며 찾은 몇 안 되는 묘 중 하나. 오노레 드 발자크.
이것은 생택쥐베리의 묘라고 해서 사진을 찍었던 것 같은데... 동명이인이었던 것 같다.
묘지 자체가 너무 넓어서 도대체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 약도를 들고도 감을 잡기가 어려웠다. 마지막으로 키스마크가 잔뜩 있던 오스카 와일드의 묘가 있는 곳까지 걸어갔다.
오스카 와일드는 역시 무덤도 댄디다웠다.
그렇게 고생하며 묘지를 보고 난 뒤 향한 곳은 팔레 드 도쿄. 파리 현대미술관이 있는 곳이다.
팔레 드 도쿄에 있던 미술관은 수준도 높았던 데다가 무료여서 더 좋았다. 하지만 뭐랄까, 파리에 여러 번 와서 루브르 박물관이나 오르세 미술관 같은 곳에 싫증이 난 사람이 가기에 적당한 곳처럼 여겨졌다. 파리에 처음 와서 가기에는 약간 난해한 곳처럼 여겨졌다는 얘기인데... 그래도 작품 자체는 괜찮았다. 그리고 이곳 파리 현대미술관에서 예전에 전시되던 대다수 작품은 현재 퐁피두 센터 안에 있는 '현대 미술관' 안에 전시되고 있다. '유명한' 현대미술 작품을 파리에서 보고 싶다면 퐁피두 센터로 먼저 가보는 것이 좋을 것. (작품 수도 퐁피두 센터 쪽이 훨씬 많기는 하다)
그렇게 미술관을 다 둘러보고는, 저녁을 먹으러 식당을 찾아나섰는데... 많이 걸었다.
그리고는 이것을 먹었음. 양파 수프와 프랑스식 샐러드, 그리고 연어 스테이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카페 같은 식당에 가서 시킨 것인데 다 먹고 나니 양은 적당했지만, 메뉴 하나 정도를 더 시켜서 조금 더 넓게(?) 먹었으면 더 좋았을 뻔했다는 생각도 지금 와서 든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메뉴가 온통 불어뿐인 데다가 전에 파리에서 음식을 시켜본 적도 없던 터라 딱히 그런 생각이 들지도 않았다. 어쨌든 맛은 모두 좋았다. 그냥 단순히 좋았던 게 아니라 내 입맛에 딱 맞게 좋았다. '와 맛있다'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 이곳에서부터 런던과 파리의 차이점을 실감하기 시작했다. ㅎㅎ 조금 짜기는 했지만, 계속 먹어보니 파리 음식 자체가 대부분 짠 것 같더라. 우리나라 사람들 음식 짜게 먹는다고 너무 자학할 필요는 없을 듯.
그렇게 저녁을 먹고 일행과 헤어졌다. 나름대로 좋은 시간을 보냈다. 한국에서도 시간 맞춰 보기 어려운 게 요즘 세상 돌아가는 일인데, 이국 땅에서 그것도 여행을 오는 날짜가 겹쳐서 보게 되다니 신기한 일이었다.
이런 사진이 있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루브르 역에서 지하철을 탔던 것 같다. 하여간 지하철역 이름이 루브르 박물관 역이어서 신기해서 찍어봤다. 나중에 보니 이런 게 많았음. 역시 파리는 더러워도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이곳은 내가 수없이 타고 다녔던 RER선 내부. 좌석 대부분이 이렇게 마주 보는 형식으로 되어 있고, 좌석 사이 공간이 그리 넓지 않아서 그리 편치는 않다. 여담 하나 하자면, 서울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무표정하게 서로 시선 안 마주치며 있는 모습을 비판(?) 비슷하게 했던 여론이 한때 꽤 일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런던이건 파리건 그런 점은 딱히 다를 바 없더라. 당연한 일 아니겠나. 대도시에서 서로 모르는 사람끼리 비좁은 공간에 함께 있게 되었는데 눈 마주칠 때마다 웃으며 인사하고 활기차게 얘기를 주고받을 동네는... 미국 캘리포니아 같은 곳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하루가 또 지나갔다. 공동묘지도 그렇고, 저녁 먹으러 가는 동안에도 그렇고 무척 많이 걸었던 터라 피곤했지만, 그래도 새로운 도시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고 나니 설레는 측면도 컸다. 감기약 효과가 빨리 나타나기를 기원하며, 이날 밤도 곤히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