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2011.6.30-7.29)

[유럽] 7월 13일 - 브뤼셀 (만화박물관, 유럽연합 의회)

아는사람 2011. 8. 10. 23:28


7월 13일(수)
-만화박물관, 유럽연합 의회


벨기에에는 이틀간 머물며 브뤼셀과 브뤼헤를 하루씩 둘러볼 생각이었다. 첫날은 우선 브뤼셀을 둘러보기로 했다.



브뤼셀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들어간 한 파사주. 이곳에 간 이유는...



벨기에 현지인들에게도 그 명성이 드높다는 와플 가게에 찾아가기 위해서였다. 


위 사진이 바로 그 유명한 벨기에의 설탕 와플과 커피다. 언뜻 보기에는 설탕이 지나치게 많이 뿌려진 것 같지만, 이 설탕은 꼭 밀가루와 섞어놓은 것처럼 그리 달지 않고 담백했던 터라 그 양이 전혀 많은 것이 아니었다. 와플의 겉은 바삭하고, 그 속은 따스했다. 하지만 이런 게 벨기에 사람들이 먹는 와플이로구나... 하는 감상이 들었을 뿐이고, 이곳이 아니면 그 어디에서도 먹어보지 못할 맛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뭔가 아쉬움이 남아서 나는 관광객이 주로 먹는다는 또 다른 종류의 와플을 먹어보아야겠다고 생각했고, 이날 오후에 그 생각을 실행으로 옮겼다.  




이곳은 사실 와플가게라기보다는 와플이 메뉴에 있는 고급스러운 카페였다. 시간이 일렀던 터라 안에는 아침을 먹는 이들이 꽤 많았다. 근데 아침 메뉴가 정말 푸짐하고 맛있어 보이더라. 이 카페가 들어서 있던 파사주 자체도 고급스러웠고, 이 '모카페' 역시 깔끔하고 고상한 멋이 느껴졌던 곳이다.



파사주 밖으로 나와 방황하기 시작했다. 




마침 멀지 않은 거리에 큰 성당이 있어서 가보았다. 하지만 안에는 들어갈 수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이유는 잊어버렸다. 굳이 들어가 보고 싶지 않았던 터라 더 집요하게 묻고 그랬던 것 같지도 않다. 



성당 바로 옆쪽으로는 박물관으로 가는 안내 표시와 함께 이러한 인상적인 동상도 하나 있었는데... 역시 별 흥미가 생기지 않아 가보지 않았다. 



걸어가다가 발견한 한 광장. 제법 예뻤는데 사람이 너무 없었다. 뒤편으로 보이는 타워크레인은 당연히 미관상 좋지 않았지만, 브뤼셀이라는 도시를 놓고 보면 묘하게 잘 어울리는 구석도 있었다.



어쨌든 광장은 그림같이 예뻤다.



PATRIA. 찾아보니 조국Fatherland이란 뜻이라고. 



걷다 보니 또 길을 살짝 잃었다. 근데 정말 아무것도 없는 이러한 거리마저도 예쁘게 다가왔다. 콩깍지가 씌었던 것일까..



지도를 보고 여러 차례 지나쳤던 길을 오가다가 마침내 만화박물관을 발견했다.



입구에 별다른 표지판도 없고, 주변은 다 뭔가 방치되고 버려진 건물로 둘러싸여 있어서 처음에는 그냥 지나쳤더랬다.



땡땡에 관한 전시가 압도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하지만 벨기에 만화 전반(작가, 작품, 사조 등등)에 대해서도 전시가 잘 되어 있던 공간이다.



하지만 땡땡하고 스머프 말고는 딱히 아는 게 없어서 제대로 집중하기가 조금 어렵기도 했다. 브뤼셀에는 르네 마그리트 박물관도 있고 왕립 미술관도 있지만, 런던과 파리에서 유명한 미술관과 박물관을 섭렵한 이후 도착한 도시에서 굳이 다시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갈 것이라면 색다른 박물관에 가 보고 싶어서 갔던 곳이고, 그런 면에서는 만족했다. 




이 동상이 있는 곳 아래 계단으로 쭉 내려가면 만화 박물관이 나온다. 따로 표지판이 없으니 지도를 가지고 가서 잘 찾아보아야 한다.



브뤼셀이란 도시의 경관을 상징적으로 압축해서 보여주는 건물 같았다. 



특이한 상점도 여럿 보였다. 이곳은 서점 같았는데 들어가 보진 않아서 그 정체는 잘 모르겠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바로 유럽연합 의회.



브뤼셀은 유럽연합의 수도이기에, 그에 걸맞은 여러 시설물이 있었는데 유럽연합 의회는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공간으로 다가왔다.



유럽의회의 건물은 외관상 그리 대단할 것은 없어 보였지만, 유럽연합이라는 기구 자체가 주는 인상이 워낙 강렬했던 탓에 아마 그냥 컨테이너 박스로 지어진 곳이었더라도 위압적으로 보였을 것 같다.




나중에 알아보니 내부 견학도 할 수 있다던데... 나는 별다른 사전 정보 없이 무작정 찾아갔던 터라 그냥 앞에서 우물쭈물대다가 발걸음을 돌렸다. 안을 들여다보니 검색대도 있고,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곳 같아서 그랬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조금 아쉽다.



그리고는 브뤼셀에 있는 벨기에 왕궁을 본다고 갔던 것 같다.



근데 역시 날씨가 계속 별로였고, 딱히 돌아다니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아 그냥 주변만 얼추 둘러보았고, 사진도 제대로 찍지 않았다.



그리고는 버스를 탔다.



유럽의 지하철은 대체로 안 좋았지만, 버스나 트램은 상당히 깔끔하고 안내표시도 잘 되어 있는 편이었다.


버스를 타고 다시금 시내 중심부로 돌아온 나는 그 주변을 그저 하릴없이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브뤼셀이 인상적이었던 점은 그 자그마한 곳에 있던 헌책방 수가 꽤 많았고, 헌책방의 종류도 다양했다는 점이다. 만화만 취급하는 곳도 있었고, 한국에 있는 그 어느 헌책방도 규모를 겨룰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헌책방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더 놀라운 점은 그러한 헌책방 대부분이 마치 한창 세일 중인 유명 브랜드 옷 가게라도 되는 듯 하나같이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는 점이다. 


파리에서 종종 보았던 중고서적 가게에도 그와 비슷하게 손님들이 많았는데 브뤼셀에서도 그런 모습을 확인하고 나니, 확실히 유럽 사람들이 다른 것은 몰라도 독서량에서만큼은 그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아마 실제로도 그럴 것이다.




그렇게 거리를 거닐다가 마주친 또 다른 특이한 상점. '밤Nuit'이라는 단어 하나만 알았던 터라 그냥 막연히 예술 서적을 취급하는 서점이 아닐까 하고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다. 들어가 보니 온통 누드 사진집, 성인잡지, 포르노 DVD 등 성인물만 있었고, 가게를 지키고 있던 사람은 거친 인상의 중년 아저씨였으며, 손님들도 비슷한 연령대의 남성들뿐이었다. ㅋㅋㅋ 뭐 그래도 몇 개 들춰보긴 했는데, 과연 그 수위가 유럽답게 장난이 아니었다. 한두 개 사오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일정도 많이 남았는데 그걸 들고 계속 다닐 생각을 하니 조금 민망하기도 하고 해서 그냥 말았다. 


상점 겉모습은 꼭 무슨 다기 세트나 와인 같은 것을 전문으로 팔 것 같건만...




그러고 보니 벨기에에 머물던 내내 날씨도 안 좋았고 딱히 제대로 본 것도 없는데, 왜 그토록 벨기에가 좋게 다가왔던 것인지 모르겠다. 뭐 앞선 포스팅에서 열거한 여러 이유 덕분일 것이다. 그 특유의 조용한 분위기, 그리고 아기자기하고 아담한 거리는 날씨가 좋건 나쁘건 빛나는 요소였다.




그렇게 하릴없이 걷다가 그 유명한 오줌싸게 동상을 보러 갔다. 과연 듣던 대로 엄청나게 작았다. 그래서 좀 귀엽기도 하더라. ㅎㅎ



오줌싸게 동상 주변에는 관광객을 전문으로 상대하는 듯한 와플가게가 쭉 늘어서 있었다. 들고 먹느라 제대로 찍은 사진이 없지만... 이 흐릿한 사진을 봐도 대충 알 수 있듯 엄청나게 많은 양의 크림과 누텔라 초콜릿 시럽을 얹어 놓았고, 그 아래에는 딸기도 얹은 와플이다. 가격은 생각보다 그리 비싸지 않았고, 맛은 정말정말 좋았다. 다만 가게 안에 들어가서 먹는 공간이 거의 없으므로 그냥 길거리에서 서서 먹어야 하는 게 일반적인 일이었고, 그게 조금 불편하긴 했다. 아무튼 이 와플이 현지인들이 즐기는 것보다 더 좋았던 이유는 아마 내가 벨기에 와플에 기대했던 바가 이렇듯 무지막지하게 달콤하고 열랑도 높고 또 무엇보다도 딸기 같은 생과일이 있는(ㅎㅎ) 것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는 숙소에 잠시 쉬러 들어갔다가 룸메이트와 처음으로 만났다. 파키스탄에서 온 친구였다. '파키스탄'하면 떠올리던 이미지가 얼마나 피상적이었는지 잘 깨닫게 해준 친구이기도 했다. 나이는 나보다 어렸지만, 똑똑했고, 영어도 잘했다. 유럽에는 나처럼 여행차 온 것이기도 했지만, 중동 지역의 학생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는 UN의 한 평화 관련 프로그램에 참여한 뒤 파키스탄 학생 대표 자격으로 스위스에 있는 UN 유럽본부에서 그 결과를 발표하고자 온 것이라고 말했다. UN에서 연설을 한다니... 처음엔 얼떨결에 그러냐고만 대답하고 말았다가, 나중에 생각해보니 뭔가 굉장한 일인 것 같아 물어보니 내가 위에서 기술한 그 내용과 함께 자세히 알려주더라. 본인은 별것 아니라고 했지만, 20명 남짓한 학생들 앞에서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것조차 매번 힘겨워하는 나로서는 여러모로 대단하게 여겨졌다.

하여간 이 친구는 꽤 재밌었고, 나보다 훨씬 사교적인 성격이어서 함께 대화하는 일도 즐거웠다. 그 다음 날 브뤼헤에 간다고 말했더니 자신도 다녀왔는데 무척 좋았다면서 그곳에서 쓸 수 있는 할인카드를 주며 여러 여행 팁을 일러주기도 했고, 또 벨기에 다음으로 암스테르담에 갈 예정이라고 하니 마약에 관해 상세한 얘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ㅋㅋ 

좋은 친구였다. 실리에 밝은 것 같기도 했고, 또 그만큼 매력도 있어 보였다. 나보다 훨씬 더 즐겁게 사는 것 같아 약간 부럽기도 하더라.



그리고는 다시 브뤼셀 중심부로 나와서 방황하다 우연히 일식집에 들어가서 가츠돈을 주문했는데... 그 맛이 정말 일품이었다. 튀김은 갓 튀겨서 바로 건져 올린 듯 바삭했고, 고기도 상당히 두툼했으며, 간도 전혀 짜지 않으면서 감칠맛이 났고, 밥 양도 무척 많아서 다 먹기도 전에 숨이 찰 정도로 배불렀다. 식당이 밖에서 볼 때에는 크기도 작고 손님도 별로 없는 곳처럼 보였는데 안에 들어가 보니 2층으로 된 식당이었고 안도 가득 차 있었다. 결정적으로는 맛이 엄청나게 좋았다. 확실히 벨기에 사람들은 먹는 데에 일가견이 있음을 이때 실감할 수 있었다.

다음날은 브뤼헤로 갈 예정이었다. 브뤼헤까지는 유럽에 와서 처음으로 별도의 예약 없이 유레일 패스로 기차를 타고 갈 예정이었기에 일찍 자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았고, 그렇게 했다. 룸메이트 역시 나와 비슷한 시각에 숙소로 들어왔고, 우리는 잠시 더 얘기를 나누었다. 벨기에는 여러모로 사랑스러운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