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2일(금)
-라파예트 백화점, 하케셔 호프, 카데베 백화점
내가 샀던 베를린 웰컴 카드 3일권은 베를린 근교 도시인 포츠담까지 함께 혜택이 적용되는 카드였다. 사용한 지 삼일 째 되던 이날 그래서 포츠담에 가야 했지만, 비가 아침부터 심상치 않게 내렸다. 포츠담 역시 벨기에의 브뤼헤처럼 밖에서 주로 돌아보아야 하는, 적어도 베를린에 비하자면 건물 하나하나가 예쁘장한 곳이라는 얘기를 누누이 들었기에, 괜히 웰컴 카드 쓰려다가 비 오는 날에 고생하며 제대로 둘러보지도 못하고 돌아오는 일을 반복하고 싶지는 않았다. 전날까지 이미 꽤 많은 혜택을 누려서 굳이 가지 않아도 본전은 이미 뽑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하루 쉬어가는 의미에서 천천히 베를린에서 제대로 못 본 곳을 둘러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동안 밖에서만 보고 지나쳤던 라파예트 백화점에 처음으로 갔다. 베를린 이후 이동할 도시는 프랑크푸르트 한 곳밖에 없어서 베를린에서부터 슬슬 각종 기념품과 선물을 사도 무리가 없으리란 판단이 섰다. 사실 이 전날부터 여러 기념품을 이미 여러 개 사 놓기는 했다.
베를린 라파예트 백화점은 건축만으로도 꽤 인상적인 공간이었다.
사진으로 제대로 찍어내진 못했지만, 정 중앙이 이렇듯 온통 유리로 된 타원형 공간으로 뻥 뚫려 있었고, 전기에 의한 빛인지 유리에 색을 입힌 것인지 그 벽면에서 알록달록 빛이 나며 그저 보고만 있어도 다채로웠다.
지하 식품 코너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독일은 맥주만큼은 그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 곳임이 분명하지만, 음식만 놓고 보면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초라하게 느껴지는 곳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사방이 땅덩어리로 둘러싸인 내륙 국가이기에 해산물 요리는 좀처럼 찾아볼 수가 없고, 있다고 해도 맛이 별로라고 한다. 이곳 프랑스계 백화점에 있는 각종 프랑스산 음식과 식재료는 그래서 일종의 단비처럼 여겨졌다.
백화점 규모는 꽤 아담한 편이었다. 새로 지은 곳이어서 확실히 좋기는 했지만, 역시 서울에 있는 여러 한국 재벌기업의 백화점에 비하면 초라한 편이었다. 서울 백화점이 하여간 짱이다. 그게 좋은 것인지는 또 모르겠지만.
숙소에서 잠시 쉬다가, 하케셔 막트Hackescher Markt 역에 갔다. 이곳 역시 여러 번 지나가긴 했지만, 제대로 본 적은 없었다. 오가며 막트Markt라는 단어가 시장을 뜻하는 것임을 유추해내고는 베를린의 시장은 또 어떠한 모습일지 한번 간단하게나마 둘러보자는 마음으로 갔던 것이다. 하지만 비가 꽤 많이 내리고 있었으므로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역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시장이 어디인지는 알 수 없었다. 대신 하케셔 호프Hackescher Hofe라고 되어 있는, 일종의 파사주 같은 공간을 발견하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파사주와는 달리 천장은 없었지만, 파사주처럼 건물 사이의 통로를 활용한 구조로 된, 일종의 쇼핑몰 같은 공간이었다. 베를린의 건물 대부분이 성냥갑을 사각형으로 세워놓은 것처럼 서로 기댄 채 둘러서 있어서, 안으로 들어가면 텅 빈 내부 공간이 나온다는 말을 여행 전부터 책에서 접하기는 했지만, 그동안은 주로 관광지만 돌아보았던 관계로 그 점을 직접 확인할 기회는 없었는데, 이날 이 하케셔 호프에 들어서서야 그러한 모습을 마주한 것이다.
보통 일반 주택에서는 이 가운데에 있는 텅 빈 공간을 활용해서 바비큐 파티를 한다든가 여러 친목모임을 여는 용도로 활용한다고 하던데, 하케셔 호프에서 이 텅 빈 공간은 일종의 자그마한 정원 역할을 했고 그 주위로는 각종 갤러리, 디자이너 샵, 다양한 상점(초콜릿 가게, 장난감 가게 등등)이 있었다.
그야말로 보물 같은 공간이었다. 비가 많이 내려 돌아보는 일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지만, 평생 가볼 일이 없을 것 같았던 근사한 갤러리도 둘러보는 등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건물 사이의 통로를 지나면 이렇게 계속 새로운 공간이 나오는 구조였다.
이곳이 바로 하케셔 호프의 통로. 베를린 신호등 캐릭터인 암펠만 샵으로 향해 나 있던 통로여서 양옆에 그 캐릭터 모양으로 된 전등이 달려 있었다. 나는 전날 길거리를 지나다가 발견한 암펠만 샵에서 이미 구경도 다 하고 기념품도 두둑이 샀기에 이곳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하케셔 호프는 아무튼 무척 마음에 드는 공간이었다. 베를린에 다시 가게 된다면 이곳과 더불어 하케셔 시장 위치도 미리 알아가서 제대로 한번 쭉 둘러보고 싶다.
하케셔 막트 역 주변을 그렇게 둘러보고 또 숙소에 들어와서 쉬다가, 다시 나갔다.
어디였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 한 전철역의 풍경. 아마 샤를로텐부르크 역이었던 것 같다. 바보처럼 샤를로텐부르크 성이 베를린 안에 있는 줄 모르고 그렇게 시간이 많았음에도 가보지 않았다. 심지어 숙소 로비에서 그곳에서 하는 음악회 안내 팸플릿을 챙겨 보았음에도 그랬다. 꽤 멋지다던데. 아쉽다.
기왕 오전부터 라파예트 백화점에 들른 것, 오후에도 백화점에 들러보기로 했다. 위 사진 속 길 건너 건물이 바로 그 백화점인 카데베 백화점이다. 베를린 최고의, 그리고 아마 최대의 백화점일 것이다.
이곳은 파리의 프렝탕 백화점만큼이나 개성적이고 쾌적한 공간이었다. 서울의 주요 백화점에 비교해도 별 손색이 없었을뿐더러 어떠한 면은 더 낫게 여겨지기도 했다. 그만큼 역사가 깊은 곳이라고도 하던데... 그 부분까지 알아볼 여유는 없었지만, 아무튼 꽤 인상적인 곳이기는 했다. 하지만 역시 내가 살 물건은 딱히 없어서 그냥 구경만 하고 나왔다.
하나 짚고 넘어갈만한 면이 있다면, 한국에 있는 웬만한 백화점이 주로 '여성' 코너를 아래층에 배치에 주 고객층인 여성을 배려하는 반면, 유럽의 백화점 대부분은 그런 요소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냥 1층 다음에는 바로 남성 매장이 있는 층이었고, 그 위에 가야 여성 매장이 있는 층이 나왔으며, 그 규모도 큰 차이가 없었다. 적어도 이곳 카데베 백화점은 그랬던 것으로 기억한다.
런던에서부터 술을 마시기는 했지만, 독일에 와서는 최소한 하루에 맥주 한 병은 꼭 챙겨 마셨다. 위 사진 속 맥주는 이날 저녁 식사를 하러 가서 시킨 맥주다. 맛은 물론 좋았지만, 독일에 있는 식당에 가서 생맥주가 아닌 병맥주를 시키는 것은 정말 크나큰 실수처럼 여겨졌다. 그도 그럴 것이, 그냥 병맥주도 맛이 상당히 좋긴 하지만, 생맥주는 이루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달콤하고 맛있기 때문이다.
맥주와 곁들여 먹은 중국음식. 베를린에서도 그랬지만 프랑크푸르트에서도 Asia Gourmet이라는 일종의 아시아 패스드푸드점이 곳곳에 있어서 현지 음식보다 밥 종류의 음식을 먹고 싶을 때 편했다. 물론 전반적으로 꽤 느끼한 편이기는 했지만, 다른 일반 식당보다는 훨씬 저렴했고, 맛도 나쁘지 않았다.
어느덧 베를린에서 머물 날이 머물었던 날보다 짧아졌음을 확인하고는, 다음 날부터는 비가 오건 어쩌건 근교 도시에 꼭 가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애당초 베를린에 머물며 포츠담과 라이프치히, 드레스덴 총 세 곳을 둘러볼 생각이었지만, 포츠담을 가려던 날짜에 못 가고 나니, 일단 큰 도시부터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차로 드레스덴까지는 2시간, 라이프치히까지는 1시간이 걸린다는 정보를 유레일 타임테이블 책자에서 확인하고 나니, 아무래도 라이프치히에 우선 다녀오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함께 방을 쓰던 한국인 룸메이트의 독일 여행 책자에 나와 있던 라이프치히 지도를 사진으로 찍었다. 미리 뽑아 간 라이프치히 관광청 자료를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다음 날 날씨가 좋기를 바라며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