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방문기

011. 서울 책창고 : 헌책방은 따스한 곳일까?

아는사람 2009. 3. 23. 16:45




 

상호 : 책창고

주소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1067-6 지하 1층

전화번호 : 02-582-1617

규모 : 지하 1층. 종류별로 책이 잘 분류되어 있으며, 책 보유량도 많은 편.

홈페이지 : http://bookagain.co.kr/



사당역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책창고] 본점에 다녀왔습니다. 인터넷 홈페이지도 있고, 나름대로 꽤 유명한 헌책방으로 알고 있었기에 대충 예상은 하고 갔지만, 역시 기대했던 것만큼 좋은 헌책방이었습니다. 책방이 다소 구석진 골목에 있는 데다가 그 골목에서도 입구는 정면이 아닌 측면 쪽으로 나 있는 터라 짐짓 걱정이 되기도 했는데, 막상 내려가 보니 괜찮더군요. 금호동 [고구마]와 비슷한 규모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책이 많았지만, 공간은 그보다 더 넓어서 둘러보기에도 훨씬 편했고, 온라인 헌책방을 겸하는 곳답게 책 가격이 표시되어 있어서 좋았죠. 한적하고 조용해서 더 좋기도 했고요.


책방을 지키고 있던 분은 제법 나이가 지긋하신 남성 분(이하 그분)이었습니다. 첫눈에 친근하고 따스한 인상으로 다가오는 분이었지요. 평소와는 달리 제 쪽에서 먼저 말을 걸어보았는데요, 인상이 좋으셔서 주저하지 않은 측면도 있지만, 그보다도 우연히 엿듣게 된, 당시 헌책방에 있던 다른 손님과 그분의 대화내용이 흥미로웠기 때문입니다. 그 손님은 원하는 책을 찾지 못한 것인지 '인터넷으로 찾았을 때는 있었는데 와보니 없다'고 하소연했고, 그분은 '그냥 인터넷으로 주문하라, 어차피 이제 다 인터넷으로만 하게 될 것이다'라는 요지의 대답을 하셨는데요, 오프라인 헌책방 순례를 지향하는 저로서는 자연스레 '인터넷으로만'이라는 부분에 호기심이 일었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분이 주인 분인 줄 알았는데, 그분은 자신을 점원으로 소개하셨습니다. 무슨 사연으로 [책창고]에서 일하게 되신 것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아마 책방 주인분과 서로 아는 사이여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예전에는 사업도 하고 일반 서점도 운영해본 경험이 있다고 하시더군요. 저는 '인터넷으로만' 사업을 전환하는 게 사실인지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에 헌책방에 관해 이런저런 얘기를 꺼냈는데요, 그분은 예상보다 꽤 적극적으로 제 질문에 답해주셨습니다.

그 적극적인 답변이 꽤 비관적인 어조에 잠겨 있던 것은 더더욱 예상 밖이었습니다. [책창고]의 한계, 기존 헌책방의 문제점 등등……  그분이 들려주신 얘기를 정리해보자면 '헌책방은 좋은 곳이다'라는 결론보다는 '헌책방은 좋은 곳도 나쁜 곳도 아니다'라는 결론이, 그리고 더 상세히 정리해보자면 '헌책방은 좋은 곳이라는 생각만으로 헌책방을 운영해서는 이 시대에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결론을 얻어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앞으로 책방 운영을 '인터넷으로만' 할 것이라는 그분의 언질은 확정된 사실을 공표한 것이 아니라 그분의 개인적인 희망사항을 내비친 것이었습니다. 그 희망사항은 그러나 지극히 타당한 근거를 지닌 것으로 여겨지더군요. [책창고]가 인터넷만으로 운영되었으면 좋겠다는 그분의 희망은 바로, [책창고]의 주고객이 온라인 고객이며 오프라인 매장에서 거두어들이는 수익은 1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실리적인 근거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지만, 온라인 매장과는 달리 오프라인 매장에서 여러 말썽이 일어날 소지가 많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 말썽이란 주로 '책 분실'이고, 엄밀히 말하면 '책 도난'이지요. 도난당한 책은 보통 인기있는 책이기에 반드시 인터넷으로 주문이 들어오고, 그 주문에 응하지 못하는 사례가 늘어갈수록 신용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에, 이익을 떠나 감정이 상한다는 얘기였습니다.


그분이 직접 [책창고] 매장을 찾아오는 이들을 반가워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그러한 데 있다고 합니다. 아무리 사람 좋은 주인이라도 도난 사건이 자주 일어나면 그럴 수밖에 없겠죠. 저는 그러한 대화를 나누던 도중, 처음 책방에 들어섰을 때 제가 특별히 찾는 책 없이 구경하러 왔다고 하자 그럼, 들고 있던 가방을 내려놓고 둘러보라고 했던 그분의 말을 새삼스레 떠올렸고, 그 말이 어떠한 맥락에서 나온 것인지 명확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무심코 지나쳤던 입구 부근에, '가방은 계산대에 맡기고 구경하세요'라는 내용의 문구가 붙어 있는 것을 그제야 발견하기도 했고요.


가끔 헌책방을 돌아다니다 보면 정말 누구라도 쉽게 가벼운 책 한두 권쯤은 슬쩍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요즘에는 자그마한 서점에도 흔히 있는, 도난 방지용 센서나 카메라 등의 장비를 갖추지 않은 헌책방이 갖춘 곳보다 더 많은 편이기 때문이지요. 결국 그러한 여건에서는 사람이 사람을 감시할 수밖에 없는데, 그러한 장비가 없는 곳일수록 책방을 관리하는 인원 역시 소수이기 마련이어서 더더욱 그러한 문제를 막기가 힘에 부칠 수밖에 없고요.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책방 주인이 된다면 누구나 그러한 말을 쉽사리 넘기기 힘들겠지요.


그분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헌책방은, 헌책방 중에서는 꽤 규모가 큰 편인 [책창고]보다도 7-8배 정도 더 큰, 거대한 헌책방이었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읽을만한 책을 적어도 5권 정도는 집어들 수 있는 헌책방, 어중이떠중이로 여러 책을 모아놓는 대신 양서를 골라내는 시스템을 갖춘 헌책방, 서적을 더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사서나 인문학 전공자를 비롯한 전문인원을 여럿 고용해서 운영하는 헌책방.  규모가 커야지만, 위와 같은 이상을 충족시킬 수 있다고 그분은 말씀하시더군요.

단순히 옛 형태의 헌책방으로는 시민운동 차원에서 100% 기부로 운영되는 [아름다운 가게] 같은 새로운 형태의 헌책방과 경쟁할 수 없다는 그분의 견해 역시 인상적이었습니다.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정당성만을 내세우며 헌책방의 명맥을 이어가려는 흐름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모든 것이 변화하는 이 세상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이 세상이 어떠한 체제 아래 놓여 있건 간에 변화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로 들려서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더군요.


그러한 측면에서 보자면, 옛 모습을 간직한 헌책방을 그저 따스하게만 쳐다보려는 시도는 우스운 것일 테고, 새로운 모습의 헌책방이나 인터넷 헌책방을 차갑게 여기는 태도도 어리석은 것이겠지요. 하지만 아무리 변화하더라도 책방이라는 곳이 인간과 인간의 만남을 주재하는 곳이라는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아야 하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모든 요소가 디지털 코드로 환원될지라도, 우리가 인간인 이상, 우리가 따스함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은 인간의 흔적에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이름과는 달리 전혀 창고 같지 않았던 [책창고]는 국내 어느 헌책방에 견주어도 모자랄 것이 없는 헌책방이었습니다. 그렇듯 훌륭한 헌책방에서 헌책방의 흠결을 발견하게 되다니, 놀랍기도 하고 또 서글프기도 했습니다. 옛것을 경시하는 건설자본의 논리가 국가이성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도대체 오래된 것을 보존하는 행위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위선이나 가식으로 그칠 확률이 높은 일이겠지요. 그것을 찾아 헤매고 이러한 공간에 나름의 감상을 섞어 기록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현실은 꿈과 같지 않기에 늘 꿈을 꾸며 살고, 꿈꾸듯 살아가는 시간이 많기에 현실이 자주 괴롭게 여겨지는 것은 아닐까요. [책창고]에서 나누었던 대화의 내용은 현실적이었을지 몰라도, 대화 자체는 따스하게 다가왔습니다. 미약하게나마 확실히 느껴지던 그 온기에 감사해 하며, 그분에게 인사를 드렸습니다. 자신은 곧 그만두실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하던 그분에게 그럼 서둘러 오길 잘했다고 말씀드렸더니, 허허 웃으시더군요. 언제고 또 한 번 찾아가야겠습니다. 잠정적인 책 도둑으로 오해받더라도, 헌책방에서 따스함을 찾아 헤매는 일은 쉽사리 멈추기 힘들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