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기타 등등

[헌책방 순례기]에 관한 단상

아는사람 2009. 4. 6. 21:43



· 나름대로 헌책방 순례의 초기는 지나갔다는 생각이 든다. 짐짓 기대했던 것처럼 헌책방을 오가는 이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종종 그 비슷한 일이 생기기는 했다. 그 일은 소중한 것으로 다가왔지만, 내가 과연 그 소중한 일을 제대로 받아들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 초기를 지나왔다고 할 수 있다면, 그런 의미에서 무엇인가를 달리하고 싶다. 특히 어체를 바꾸고 싶다. 평어체 대신 경어체를 쓰는 것만으로 타인에게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으리라 막연히 판단한 과거의 자신을 회의하는 측면에서 그러하다. 생각해보면 경어체만큼 자기기만적인 어법도 없다. 만약 그것이 자기 자신을 들끓게 하는 욕망을, 자기 자신을 숨기고 공연한 수사를 배제한 채 다른 이들에게 여러 정보를 객관적으로 전달하고픈 욕구로 대체하고 승화할 수 있다는 판단으로 차용된 것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물론 지난날 남김없이 평어체로 분출한 욕망의 흔적은 그리 아름답게 여겨지지 않는다. 우스운 일이다.


· 헌책방 순례기를 작성해서 도대체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것일까? 낡고 오래되었으나 사라져가는 것을 잊지 않고자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꽤 애틋한 행위이기는 하다. 하지만 이 세상에 낡고 오래되지 않은 것이 어디에 있고, 사라져가지 않는 것이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헌책방은 분명히 여러모로 그 독특한 향취가 느껴지는 장소이기는 하지만, 굳이 헌책방에만 낭만성을 부여할 이유는 없다. 아니, 그럴 이유는 많을 수도 있지만 그 이유를 굳이 내가 세심히 고려해야 할 이유는 없다. 나 따위가 감히 뛰어들 작업이 아니기도 하거니와, 나의 관심 역시 그리 깊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이 순례를 시작한 이유는, 헌책방이 사라지는 게 안타까웠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어떠한 변화의 가능성을 헌책방 순례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의도가 그랬으니 결과가 좋기를 기대하는 것은 도둑 심보이리라.


· 헌책방이 어떠한 곳인지 예전보다는 더 잘 알게 된 것만 같은 지금에서야 나는 내가 갈망하던 것이 헌책방도, 헌책방 순례도 아님을 어렴풋이나마 깨달았다. 이 순례는 그러나 여기에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 머나먼 미래에 겨우 후기에 다다를 만큼 오랫동안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 맑고 개운한 일은 아니겠지만, 어쩔 수가 없다. 모자란 순례기를 남기는 게 때로는 지나치게 힘겹게 다가오지만, 이것 말고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일이 특별히 없다. 적어도, 그렇게 믿는 나 자신을 설득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