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앨런 감독이 더 일찍 미국을 벗어났더라면, 더 일찍 영어권 국가를 벗어나 다른 도시를 배경으로 영화를 찍었더라면 정말 대단했으리라는 감상이 들었을 정도로, 그가 담아낸 바르셀로나의 풍경은 매혹적이었습니다. 실제로도 바르셀로나는 무척 아름다운 도시겠지만, 우디 앨런 식으로, 즉 예술(호안 미로의 미술작품과 가우디의 건축물)과 낭만(정원의 기타리스트, 등대가 있는 해안로를 거니는 연인)으로 그려낸 도시의 모습은 특히나 더 아름답게 다가왔습니다. 자비에 아귀레사로브의 근사한 촬영 덕분에 그렇게 다가왔던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음악도 좋았습니다. 우디 앨런이 자신의 영화 속 음악을 직접 자신의 음반 컬렉션에서 선별한다는 사실은 유명하지요. 이 영화는 그러나 예외적입니다. 아마존에서 사운드트랙을 검색해보니, 우디 앨런은 스페인 음악을 잘 알지 못했기에 이것저것을 부러 찾아 들으며 영화 속 음악을 선별했다는군요. 그로서는 나름대로 새로운 시도를 한 셈이고, 그 시도는 아주 적절한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그의 안락한 취향에서 벗어나는 음악은 물론 없지만, 스페인 음악만으로 사운드트랙을 만들었다는 사실부터가 우디 앨런으로서는 파격적인 일이겠죠. 우디 앨런 식의 낭만적인 스페인을 그려내는 데는 그야말로 안성맞춤인 곡들만 있기도 하고요.
(정말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라는 제목에 잘 어울리는 곡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레이션은 영화 속 인물이나 우디 앨런이 아닌, 별개의 배우가 맡았는데요. 영화에서 나레이션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다는 측면에서, 우디 앨런이 맡았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더군요. 아마도 작가의 관점을 그대로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 다른 배우에게 나레이션을 맡긴 것으로 짐작이 갔습니다만, 그가 배우로 나오지 않는 영화이니만큼 그의 목소리라도 들어보고 싶은 생각에 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나레이션은 그래서 처음에는 다소 거슬렸지만, 나중에는 중립적으로 들리고 또 나름대로 매력이 있어서, 좋게 여겨지더군요.
페넬로페 크루즈가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을 만한 영화였는지에 대해서는 약간 의문이 남았습니다. 사실 그녀가 이보다 빛나는 조연으로 출연한 예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으리라 생각되었기 때문이지요. 물론 페넬로페 크루즈가 연기한 마리아라는 배역은 적은 분량에도 그 존재감이 강렬하기는 합니다. 스칼렛 요한슨의 미칠 듯이 눈부신 모습조차 페넬로페 크루즈가 등장한 이후로 그 빛을 잃을 정도니까요. 스칼렛 요한슨에 비하자면 초췌한 모습(늙고, 꾸미지 못한 모습)으로 등장함에도 그렇기에 더더욱 놀랍지요. 다만 그 강렬함은 그 인물 자체의 강렬함(혹은 과격함)에서 나오는 것처럼 보였기에, 의문이 생겼던 것이지요.
우디 앨런의 영화에는 관객을 압도하는 힘은 없지만 관객을 유쾌하게 하는 힘은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미학적인 가치와 상반되는 경향이 있었음에도 영화를 보는 내내 무척 유쾌했고. 다 보고 난 다음에도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바르셀로나에 관련된 것은 FC바르셀로나밖에 딱히 떠올릴 수 있는 게 없었기에 이 도시를 낭만적으로 보았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우디 앨런 덕분에 새로운 관점에서 이 도시를 그려볼 수 있게 된 것 같아서 고맙기도 하네요 :)
별점 : ★★★★ (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