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갑작스레 독서량이 늘어났던 저는 초보 독서가답게 독서 예절에 대해 무지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이건 제 책이건 관계없이 모서리 부분을 접어서 어디까지 읽었는지 표시하던 일이었죠. 그 당시에는 그런 행위가 책을 손상케 한다고 생각하지 못했고, 또 설령 그렇다고 해도 그게 뭐가 대수냐는 식이었습니다.
당시 제가 활동하고 있던 도서부에 함께 소속되어 있던 친구가 그러한 제 버릇의 유해함을 지적해준 게 일종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곰곰이 생각해보니 과연 제 행동은 편리하다는 맥락에서만 좋은 일이더군요. 공공 도서관의 서적이나 다른 사람의 책 같은 경우 그런 행위는 예의에 어긋나는 일일 뿐더러 자기 자신이 소유한 책이라 할지라도 함부로 다루어진다는 점에서는 부정적인 일임을 그제야 직시하게 된 것입니다.
그 이후로 저는 책갈피 없이는 책을 쉽사리 읽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책갈피가 없을 때는 기억하기 쉬운 부분까지, 예를 들면 한 장의 끝까지 읽거나 하는 식으로 해서 굳이 접지 않아도 찾는 데 어려움이 없게끔 행동하곤 하는 버릇도 덕분에 생겼고요.
헌책방에 주기적으로 다니기 시작하면서 얻게 된 하나의 즐거움이 있다면 바로 이 책갈피를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헌책 사이에 그 헌책의 옛 주인이 미처 빼지 못했거나 필요 없어서 그냥 내버려둔 것으로 보이는 책갈피가 있는 것을 비교적 자주 발견했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우연으로 생각했는데, 계속 다니며 살펴보니 꽤 빈번하게 이런 행운을 마주하게 되더군요.
초등학교 소풍 때 보물찾기를 하면 늘 아무것도 찾지 못했던 암울한 과거 탓인지는 몰라도, 일상에서 종종 마주치는 소소한 '보물'에 저는 기분이 참 좋아지곤 합니다. 동네 문방구에서 코팅한 것처럼 투박하게 보이고, 조금 진부하고 뻔한 명언이 새겨 있고, 서점의 상호와 전화번호까지 적혀 있는 책갈피는 사실 그리 멋진 소장품으로 볼 수는 없겠지만, 요즘처럼 인터넷 서점이 활성화된 시대에서는 귀한 물건으로 여겨집니다. 저로서는 지난날의 보물찾기 실패에 그 영광을 돌려야 할지도 모르겠지만요.
다음번에 혹시 헌책방에 들르게 되신다면, 헌책방에서 보물찾기를 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저처럼 보물찾기에 서투른 분이라면 헌책을 열심히 구경하고, 보물찾기에 능하신 분이라면 보물을 열심히 찾아보는 것입니다. 그러다 책갈피라는 보물을 발견하면 기분이 좋겠지만, 아니라고 해도 헌책방의 '진정한' 보물인 헌책을 둘러보았으니 본전 이상의 게임으로 여길 수 있겠죠. 어떠한 것을 찾건 간에, 이러한 생각으로 헌책방을 둘러보는 것도 또 하나의 새롭고 유쾌한 경험이 될 수 있을 것 같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