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백/음악

음악들

아는사람 2009. 7. 11. 23:44
 

1. 적당한 성능과 가격의 CD카세트를 하나 살 생각이다. 어설픈 오디오기기를 마련해놓으니 음악을 듣는 일이 부담되고, 막상 들어도 그리 즐겁지가 않다.


2. 이어폰을 사용하면 나중에 귀가 아파서 MP3 플레이어를 거의 들고 다니지 않지만, 가끔 기분이 내키면 사용할 때도 있다. 며칠 전 밖에 나갔을 때도 들고 갔는데, Kem의 Heaven과 못의 카페인을 들으며 울컥하는 감정을 느꼈다. 라디오헤드의 곡을 들으며 거의 항상 그러한 감정에 휩싸인 채 지내던 때가 있었는데. 그러한 시절이 과거형으로만 다가와서 서글프다. 가벼운 유희 혹은 지적인 탐구대상 정도로 음악을 대하는 관습이 생긴 것 같아 더욱 서글프다.


3. 단음계의 피아노 연주, 그리고 끔찍한 노래실력. 나에게는 확실히 음악적인 재능이 부족하다. 감식안도 점차 녹슬어가고 있고, 감성도 피폐해지고 있고...


4. 영화음악은 이러한 상황에서 큰 위안이 되어주고 있다. 영화를 보다가 정말 음악이 황홀하게 사용된 사례를 발견할 때면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하곤 한다. 폴란스키가 [차이나타운]에서 보여준 무척 경제적인 음악사용이 최근에는 가장 인상적이었다(그의 [피아니스트]도 그러고 보면 정말 필요한 순간에만 음악을 사용했던 것 같다). [성스러운 피]로 짐작해볼 때 전 세계를 통틀어 음악을 가장 끝내주게 활용하는 영화감독은 조도로프스키가 아닐까 싶었고, 박찬욱은 영화 속에 음악을 집어넣는 데에는 다소 극단적인 측면이 있지만 사용하는 음악 자체는 훌륭하다는 생각을 [박쥐] 이후로 다시금 하게 되었다. 봉준호와 이병우 콤비는 한국의 주세페 토르나토레와 엔니오 모리꼬네로 소개되어도 무리가 없으리라 생각한다. 프랑소와 오종이 [8명의 여인들]에서 선보인 음악은 정말 유쾌했다. 아, 그리고 짐 자무시를 빼놓을 수 없으리라. 영화계에서 그의 음악취향을 따라올 사람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 확신한다! (아니면 말고!) 


4-1. 10대 중반에 음악에 미쳐 살았다면, 지금은 영화에 반쯤 미쳐 살고 있다. 광적인 수준은 아니지만 광적인 호기심을 지닌 채 이 분야에 접근하고 있다. 이 열정이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지금은 그렇다. 영화와 관련된 스노비즘에는 예전부터 줄곧 거부감을 느껴온 게 사실이고, 그것은 지금도 여전하다. 가령 다른 예술장르와 달리 영화의 고전이나 유명한 작품은 (합법적으로, 특히 극장에서) 찾아보기가 무척 힘들지만, 영화를 진지하게 논하는 이들은 대부분 그러한 영화를 인용하지 않나. 그것은 조금 치사한 일이다. 생소하고 찾아보기 힘든 영화를 거론하는 자신이 미덥지 못한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이고, 그래서 그냥 아무도 안 보는 공간에 대부분의 감상을 기록해놓지만, 주체하지 못할 때가 종종 있다. 


5. 음악은 그러나 영원하리라! 지금은 비록 자주 듣지도 않고 새로운 가수의 곡을 찾아 듣는 데에도 조금 지쳤지만, 음악이라는 예술을 향한 경외감은 여전히 굳건하게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