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백/기타 등등

fiction

아는사람 2009. 7. 21. 23:01


역 주변은 어두웠고,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낡은 여관에 들어갔다. 화장실 바닥에는 날파리 같은 것이 기어다니고 있었다. 배가 아팠다. 30대 중반 가량의 여자가 들어왔다. 그 여자는 시종일관 당당했고, 나는 시종일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입가에 미소가 깃들었다. 웃고 싶지 않았는데도 어느새 웃고 있었다. 그녀는 방을 나서기 전에 자신의 이름이 기쁨이라고 말했다. 나는 기쁜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푹 숙였다.


좋은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여기에는 영혼이 깃들 수도 있겠어. 몸을 씻으며 나는 생각했다. 나는 그러나 다시 실패할 것이고, 다시 게으름에 굴복할 것이고, 재능을 탓하는 악순환의 고리에 갇히게 될 것임을 예감했다. 서커스단에서 자라난 코끼리는 아무리 몸집이 커져도 자신을 묶어놓은 고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하듯, 나 역시 그런 것일지도 몰랐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더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나 자신이 만들어놓은 한계라고 해서 나 자신이 깨트릴 수 있는 것은 아니야. 나는 그렇게 자신을 정당화했다.


그리고는 근처 깨끗한 외관의 모텔로 자리를 옮겼다. 인상 좋은 주인아주머니는 활짝 웃으며 방 키와 일회용품이 담긴 백을 건네주었다. 나는 다시 한 번 온몸을 꼼꼼히 씻었고, 목욕 가운을 입었고, 침대에 누웠다. 죽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악착같이 살고 싶었다. 허리가 아팠다. 옅은 잠조차 쉽사리 오질 않았다. 그럼에도 진하고 따스한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싶었다. 침대는 딱딱했고, 내 마음은 점점 더 고요해졌다. 밑바닥에 있는 사람은 어쩌면 가장 편안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