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백

20100318

아는사람 2010. 3. 18. 22:55


1. 
때로는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괴로울 수도 있다. 


2. 
최근 본 영화들에 대한 짧은 감상: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감독 팀 버튼 (2010 / 미국)
출연 조니 뎁, 미아 와시코우스카, 헬레나 본햄 카터, 크리스핀 글로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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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쁘지 않았다. 엄밀한 미학적 기준을 들이대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 In Wonderland』와 『거울 나라의 앨리스Through the Looking-Glass』라는 심오하고 장난기 가득한 동화가 본래 지니는 복합성에 견주어 이 영화를 평가하자면 당연히 형편없는 점수를 줄 수밖에 없겠지만, 그냥 단순히 웃고 즐기기에는 그리 나쁘지 않은 영화였다. 때로는 이렇게 단순한 엔터테인먼트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인 디 에어
감독 제이슨 라이트먼 (2009 / 미국)
출연 조지 클루니, 베라 파미가, 안나 켄드릭, 제이슨 베이트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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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영혼을 팔아서라도 보고 싶었던 영화였기에, 실제로 보고 나서 더 허탈하고 아쉬운 감정이 들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훌륭한 소재를 훌륭하게 풀어낸 영화라는 감상이 들기는 했지만, 그 훌륭함이 묵직한 울림을 주지는 않았다. 더 깊이, 동시에 더 가볍게, 라이언 빙햄의 인생을 들여다보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래도 좋았다. 

밀크
감독 구스 반 산트 (2008 / 미국)
출연 숀 펜, 에밀 허쉬, 조쉬 브롤린, 디에고 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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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을 겪고 난 이후, 왠지 모르게 진보적 성향을 띠는 정치 이야기에는 거부감이 앞서곤 한다. 그러한 이야기에 담긴 메시지에 공감하는 바가 많고, 또 적극적으로 동의하는 부분도 적지 않음에도, 그저 무관심하기만 했던 예전과는 다르게 그렇게 되어버린 것이다. 정말 당장 무엇인가를 이루어낼 것처럼 격렬했던 움직임이 별 성과를 내지 못하고 끝난 것 같아 생겨난 무력감 탓일까.

잘은 모르겠지만, [밀크] 역시 그렇듯 '올바른' 정치 이야기를 하는 영화였기에 다소 거부감이 들었다. 하지만 [밀크]는 그러한 개인적인 거부감에 구애받지 않는 아름다움을 지닌 영화였고, 상대방을 설득하는 대신 부드럽게 안아주는 영화, 푸치니의 아리아가 흐르는 비극임과 동시에 가벼운 눈웃음과 춤으로 얘기하는 영화였다. 

어느 한 방향으로 고정되지 않은 채 흘러가는 측면은 아마 이 영화의 논픽션적인 성격에서 기인한 것이리라. 숀 펜의 연기가 어떻게 얼마나 뛰어난 것인지는 잘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정말 그가 아니었다면 하비 밀크를 연기해낼 배우가 딱히 없었으리라는 감상이 들었을 만큼, 그가 연기하는 모습은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 클립으로 등장하는 실제 하비 밀크의 모습과도 굉장히 흡사했고. 

500일의 썸머
감독 마크 웹 (2009 / 미국)
출연 조셉 고든 레빗, 조이 데이셔넬, 패트리샤 벨처, 레이첼 보스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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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 울림이 있는 영화였다. 이 정도로 첫 사랑을 시작하고 끝마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축복받은 일이란 감상도 들었다. 사랑에 대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이 늘어날수록, 즉 사랑의 자유가 보장될수록 그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인원은 줄어드는 것 같다. 가령 그것은 자본의 자유를 강조하는 신자유주의가 오히려 다수의 '극빈층'을 만들어낸 것과 마찬가지의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몇몇 소수가 그 누구도 꿈꾸지 못할 다양한 사랑의 가능성을 독차지하는 동안 나머지 인원은 그저 그런 상대방과 그저 그런 몇 번의 데이트 그리고 지나친 환상 같은 것에 갇혀 지내는 것 같다는 얘기다. 그래도 그 정도라도 누릴 수 있다면 나은 편이라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그보다 더 심한 사랑의 극빈층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듯 진정한 극빈층이 존재한다면, 이 영화를 보고 별 위로를 받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사랑은 위대하고, 이 영화는 그 위대한 만큼 진부한 소재를 제법 그럴듯하게 살려냈다. 그것만으로도 좋은 점수를 줄 만하다고 본다.


3.

홍콩에서 무심코 집어온 The Cardigans의 [Life] 음반을 드디어 들어보았다. 이들이 'Lovefool'을 부른 밴드라는 사실을 전혀 기억해내지 못했는데, 오늘 다시 이들의 음반을 들으려다가 우연히 그 곡의 멜로디를 흥얼거리게 되었다. 음악이란 참 신비하고 아름다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