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학교에서 돌아오며, 이번 학기에도 내가 품은 거의 모든 희망이 무너졌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것이 사실이 아니기에 그것이 사실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모든 것은 이렇게 무너질 것이다. 왜냐하면 그럴 리가 없다고 여전히 내가 희망하기 때문이다. 내가 아니더라도 거의 모든 인간이 그 자신의 삶에 대한 희망을 저버리지 못할 것이다. 인간적이라는 것은 정말이지 비굴하다.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자신을 속이게 된다.
눈이 내린다고 했던 것 같은데 오늘은 그저 춥기만 했다. 내일 내린다는 것이었나. 아니면 내일 모래였나.
내일 모래에는 이번 선거에서 부당한 방법을 쓴 총학생회장 당선자를 탄핵하고자 하는 총회가 있을 예정이다. 그 총회에 갈 마음이 있지만 가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두려운 것은 사람뿐이기 때문이다. 정의 같은 것은 몇 번이고 배반할 수 있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나는 나 자신을 벗어날 수가 없다. 나는 아주 치졸한 것만을 욕망하고, 그 어떠한 욕망도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한다. 홀로 있을 때에만 겨우 어떠한 구원의 가능성, 만족감 같은 것이 느껴질 뿐이다. 그렇다면 아예 혼자 있을 수는 없나? 그럴 수는 있겠지만, 그럴 자신은 없다. 온전히 나 혼자 제대로 살 수 있으리란 확신을 이제 더는 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현재 내가 사는 삶이 최선이라고 나는 믿고 있거나 믿고 싶어하고 있다. 이 상태를 유지하지 못한다면 아마 미쳐버리거나 매우 심하게 아플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대로 있다가도 미쳐버리거나 매우 심하게 아플 것 같다. 그럼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나 자신의 문제를 과장하지 말고(자고 일어나는 것만으로 떨쳐낼 수 있는 것이라면 그렇게 하고), 그저 침착히 걸어가야 할 길을 걸어가는 수밖에 없나? 내가 떠올릴 수 있는 방법은 그것뿐이다. 하지만 정말 그것뿐인가? 인간의 삶이라는 게 원래 이렇게 초라한 방편으로 꾸려가야 하는 것이었나?
아예 아무것도 몰랐으면 좋겠다고 그동안 몇 번이나 생각한 것인지 모르겠다. 지금도 다시 그 생각을 해본다. 백치라면 얼마나 좋을까. 신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극단이 아니어서 불행한 것이다. 혹은 극단을 갈망해서 불행한 것이다. 이 삶이 극단을 요구하기에 불행한 것이다. 혹은 행복이라는 것이 극단적이기에 불행한 것이다.
우연히 마주치는 반가운 얼굴이 있다. 그 사람과 인사 이상의 것을 나누고 싶다. 하지만 그런 우연은 좀처럼 벌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