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2011.6.30-7.29)

[유럽] 7월 19일 - 베를린 (포츠담 광장, 이스트사이드 갤러리)

아는사람 2011. 8. 21. 20:20


7월 19일(화)
-브란덴부르크 문, 유대인 학살 기억 조형물, 박물관섬, 포츠담 광장, 베를린 필하모니, 빌헬름-카이저 교회,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


베를린으로 향하는 열차에서 아이폰으로 들었던 릭 스티브스의 유럽 오디오가이드 - '베를린 투데이'에는 인상적인 내용이 꽤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여러 차례 언급되어서 기억에 남았던 바는 베를린에 가면 가이드 투어에 참여하라는 조언이었다. 베를린은 워낙 흥미로운 역사가 있는 도시여서, 그냥 아무런 정보 없이 둘러보는 것과 제대로 된 가이드와 함께 둘러보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그와 비슷한 말을 들었기에 다른 곳은 몰라도 베를린만큼은 따로 현지 가이드와 함께 돌아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 혼자 가이드와 단둘이 돌아다니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어색한 일이 될 것 같았고, 또 한국 단체 관광객 틈에 껴서 돌아다니는 일은 여의치도 않을뿐더러 굳이 참여하고 싶지도 않아서, 일단 현지에 가서 알아봐야겠다는 생각만 막연히 하던 차였다.


베를린에 도착한 다음 날 숙소 로비에서 '무료 워킹 투어'가 매일 있고, 바로 그 숙소에서 투어가 시작된다는 안내 문구를 보았을 때, 내 기분은 그래서 무척 기쁘고 설렜다. 



사실 투어는 숙소에서 시작되지는 않았고, 숙소에서 걸어서 약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파리 광장(브란덴부르크 문이 있는 곳)에서 시작되었다. 그곳에 모인 인원이 무척 많아 도대체 어떻게 이동할지 걱정이 되었는데, 가이드 한 명당 40명의 인원이 배치되는 방식으로 나뉘었다. 투어는 영어나 스페인어 둘 중 하나로 진행되었으며, 비용은 무료였다. 즉, 원칙적으로는 돈을 낼 필요가 없지만, 투어가 끝난 다음에 가이드에게 알아서 팁을 주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투어였다.



통일된 베를린의 상징, 브란덴부르크 문에 대해 빨간 옷을 입은 캐나다 출신 가이드가 설명해주고 있는 모습. 브란덴부르크 문 위에 있는 빅토리아 여신의 마차 동상은 한때 나폴레옹이 파리로 가져갔던 적이 있지만, 곧 다시 독일에서 찾아왔다고 한다. 꼭 그래서는 아니지만 바로 이곳 광장에 프랑스 대사관이 있고, 저 동상의 빅토리아 여신이 창을 향하고 있는 곳은 바로 프랑스 대사관이 있는 방향이라는 깨알 같은 가이드의 설명에 다들 감탄을... 



투어 버스가 꽤 많았다. 비싸긴 했지만, 베를린이 워낙 넓은 곳이어서 짧게 머물 것이라면 저 버스를 타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닐 것 같았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유대인 학살 기억 조형물.



베를린의 중심부, 즉 브란덴부르크 문과 국회의사당이 있는 부근에 이 조형물이 있다. 관광객뿐만 아니라 베를린 시민이 출퇴근하며 매일 지나칠 수밖에 없는 곳을 일부러 선택한 것이라고 한다.   



이 조형물의 입구 부분(즉 테두리)은 비교적 낮은 높이의 콘크리트 덩어리로 둘러싸여 있지만, 그 안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더 높은 콘크리트 덩어리가 자리하기에 위 사진과 같은 모습이 연출된다. 바닥 역시 중앙으로 갈수록 더 깊이 파여 있었다.




이 조형물 아래에는 유대인 희생자와 관련된 박물관이 있다. 하지만 그 위로는 아무런 이름도 새겨지지 않은 콘크리트 덩어리뿐이었다. 이것은 '특정한 몇몇' 유대인에게 애도를 표하는 대신 유대인 전체, 더 나아가 인류 전체에게 이러한 비극을 전하려는 뜻이 담긴 결과라고 한다.



압도적인 공간이었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2차 대전 당시 히틀러의 벙커가 있던 자리. 이곳에는 아무런 표시도 되어 있지 않았을뿐더러, 그냥 그 부지 자체가 평범한 주택가의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었다. 히틀러 같은 전범의 흔적을 관광지로 바꾸지 않고자 부러 이렇게 방치해둔 것이라고 한다. 전쟁은 기억하되, 전쟁을 저지른 자는 이러한 식으로 기억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는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독일 사람들의 생각하는 차원에 감탄했다.



이곳은 어느 건물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베를린 장벽 바로 앞에 있는 곳이었고, 아마 옛 동독의 건물이었을 것이다. 이 벽화는 동독의 체제를 찬양하는 그림으로... 소련 같은 공산권 국가에서 흔히 볼 수 있던 클리셰가 잔뜩 있는 벽화였다.



즐거운 노동, 다 함께 하세.



그 맞은편에 있던 베를린 장벽의 잔해. 가이드의 설명을 들어보니, 오늘날 베를린에 남아 있는 장벽은 처음 지어진 후 세 번째로 다시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이 장벽을 넘어가는 사람을 막고자 오늘날의 형태로 진화한 것이라고 한다. 실제 이 장벽을 건너가려다 죽거나 성공한 사람들의 일화도 들을 수 있었다. 한국인으로서 감회가 남달랐다.

이렇게 돌아보고는, 체크포인트 찰리에 갔다. 통일 이전에 베를린은 동서로 나뉘어 있었고, 그 사이의 검문소였던 곳 중 하나가 바로 체크포인트 찰리다. 이날은 사진을 찍지 않고 그냥 눈으로 보기만 했다. 확실히 예전에 느껴졌을 긴장된 분위기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그냥 관광객을 위한 눈요깃거리 정도로 전락한 것 같았다. 

오전 11시 정도에 투어가 시작해서 이곳에 도착할 무렵에는 점심시간이 되었기에, 그 근처에서 '커피 브레이크' 겸 식사 시간을 30분간 가졌고, 그리고는 다시 투어가 재개되었다.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말로만 듣던 오페라 극장에, 사진과 영상으로만 접하던 다니엘 바렌보임의 (이 역시 사진이기는 했지만) 큼지막한 얼굴을 보니 감회가 남달랐다. 여름 바캉스 기간이어서 바렌보임은 없었다. 엔드류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 [에비타Evita]를 공연 중이기는 했지만, 굳이 볼 것이라면 오페라를 보고 싶기도 했고, 또 이미 암스테르담에서 음악회를 보고 왔던 터라 크게 마음이 움직이지는 않았다.



독일의 미술가 케테 콜비츠의 피에타Pieta상. 피에타는 죽은 예수 그리스도를 품에 안은 동정녀 마리아의 모습을 담은 작품을 일컫는 명칭으로, 미켈란젤로의 조각상이 그중에서 가장 유명하다고 한다. 베를린에서 볼 수 있던 이 조각상은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도 전쟁에 희생된 모든 이들에게 헌정된 것이어서 그 의미가 남다르게 다가왔다.  



사진이 잘 나온 게 없어서 안타깝다. 아무튼 이 조각상 위로 보이는 저 커다란 구멍은 뻥 뚫려 있어서,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눈이 오면 또 눈이 오는 대로 조각상이 그대로 노출된다. 또한 햇빛도, 구름도, 그 어떠한 자연 현상도 다 마찬가지로 이 조각상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다. 이런 것에는 어떠한 의도가 담겨 있다는 설명을 가이드로부터 들었는데... 지금은 잊어버렸다. 아무튼 인상적인 공간이었다.



베를린 대성당. 무척 오래된 건물 같지만 사실 이러한 '오래된' 형태로 보수된 지는 10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파리나 런던 등 다른 대도시의 오래된 건축물을 부러워하던 프레데릭 대왕이 부러 이러한 형식으로 지을 것을 명한 것이라고.



날이 좋아 더 멋지게 보였다.



알테 박물관. 



베를린 대성당과 알테 박물관은 박물관섬에 있다. 박물관섬은 바로 베를린의 주요 박물관 네다섯 곳이 서울의 여의도 같은 섬 지역에 몰려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에서 투어도 끝났다. 꽤 즐겁고 좋은 투어였지만, 이날 햇볕이 꽤 뜨거웠던 터라 조금 부담되기도 했다. 어쨌든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하며 팁을 주고 숙소로 향했다.



다시 돌아온 베를린 중앙역.



다른 어느 대륙보다 철도가 발달한 유럽에는 유서 깊고 멋진 기차역이 많이 있겠지만, 내가 가본 곳 중에서는 베를린 중앙역이 가장 현대적이고 깔끔했다. 전면이 유리로 되어 있어서, [다크 나이트] 같은 영화를 이곳에서 찍으면 매우 멋질 것 같았다. 조커가 이 중앙역을 폭파시키는 장면이 있었다면 정말 근사했을 것 같다고 여러 번 생각했다. 



숙소에서 잠시 쉬다가 다시 밖으로 나와 찾아간 곳은 포츠담 광장!



포츠담 광장은 베를린 근교에 있는 포츠담이란 도시와 혼동될 수 있으나 그곳과는 무관한, 베를린 안에 있는 광장의 이름이다.



그 유명한 소니 센터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카페와 식당과 멀티플렉스 극장 등이 쭉 원형으로 늘어서 있는 곳이었다.



소니 센터 천장 부분. 멋졌다.



굉장히 인공적이고 자본주의적인 공간처럼 여겨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멋진 것은 멋진 것.



한가운데에는 분수대가 있어서 더욱 시원하고 좋았다.



소니 센터.



포츠담 광장에는 영화&TV 박물관도 있었다. 필름하우스라는 명칭답게 시네마테크 시설(상영관, 기념품 가게, 도서관 등)도 함께 있었다.



그 앞에는 독일의 '스타의 거리'도 있었으나... 이때에는 정확히 이게 무엇인지 몰랐던 관계로 건너가 보지는 않았다.



포츠담 광장에서 버스를 타고 베를린 필하모니에 갔다.



그런데 여름 휴관이라는 안내와 함께 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내부 견학이라도 가능할까 싶어서 찾아갔던 것인데 무척 아쉬웠다.



베를린 필하모니.



이런 식의 셀카 아닌 셀카를 찍기도 했다...



베를린 필하모니 앞에 있던 조형물.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빌헬름-카이저 교회. 2차대전 당시 폭격을 맞은 건물을 그대로 보존하여 유명해진 베를린의 대표적인 상징 중 하나다. 



빌헬름-카이저 교회 옆에는 그 잔해로 지어졌다고 하는 예배당이 있었다. 무척 멋졌다. 



사진을 찍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곳이었다..



그런데 베를린 필하모니에 이어 이곳 역시 문을 닫은 상황이었다. 입장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그런 점이야 괜찮았지만, 그 외부가 이렇듯 꽁꽁 둘러싸여 있는 모습은 무척 실망스러웠다. 보수 중이어서 아예 다 교회 건물 주변을 덮어놓은 것인데... 이해는 하지만 관광객으로서는 조금 슬펐다.



그냥 얼핏 보면 평범한 건물처럼 보일 정도로 말끔히 쌓여 있던 빌헬름-카이저 교회의 모습. 



아쉬움을 뒤로 한 채 S반으로 이동하던 중에 본 TV타워의 모습. 예전에는 동독의 우스꽝스러운 건축물로 악명이 높았다지만, 지금은 꽤 유명한 관광 명소가 되었다. 실제로 보니 초현실적이면서도 현실적인 분위기가 공존했고, 그러한 이질적인 두 가지 면이 서로 충돌하는 대신 조화를 이루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그런 인상은 베를린이란 도시에서 느껴지던 것과 같아서 더욱 좋았다. TV타워에 실제로 올라가는 일은 그리 즐거운 경험이 아니었지만... 그 얘기는 다음에 하겠다.




베를린 동역에 왔다.



이곳에 온 이유는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를 보기 위해서였다.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아 사진만 쭉 나열해보겠다.
























갤러리라는 명칭에 걸맞을 정도로 꽤 길었다. 끝까지 걸어가니 다른 전철 역이 나왔을 정도.

무척 인상적이었고, 좋았다.



끝에 이르니 무슨 동유럽풍의 건물이 보이기도 했는데... 무엇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시 중앙역으로 돌아왔다.



하루의 마무리는 맥주로...



이렇게 다 정리하고 나니 생각보다 첫날 꽤 많은 곳을 둘러본 것 같다. 투어는 기대했던 것만큼 흥미진진하지는 않았어도 덕분에 관련 서적을 읽지 않는 한 평생 몰랐을 여러 사실을 알게 되어서 좋았다. 그리고 베를린은 예상했던 대로, 듣던 대로 확실히 개성적인 도시였다. 동독의 정형화되어 있으면서도 어딘지 기이한 건축물이 상대적으로 친숙한 모습의 서독 건물과 공존하고 있었고, 굵직한 관광지를 쭉 둘러보았음에도 여전히 '진짜 베를린'은 어디엔가 숨겨져 있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다음 날을 기대하며 이날도 편히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