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방문기

012. 신촌 공씨책방 : 대학가에 관한 단상

아는사람 2009. 3. 29. 08:25




 

상호 : 공씨책방

주소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창천동 112-12

전화번호 : 02-336-3058

규모 : 지상 1층. 헌책 외에 LP, CD, DVD 등이 비치되어 있음.



며칠 전, 신촌 [공씨책방]을 들렀다 집으로 오는 길에 '아는사람'을 만났습니다. 그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순례기를 쓰는 대신 그와의 대화를 이곳에 옮기는 것만으로도 제가 하고픈 이야기를 다 할 수 있을 것 같더군요. 아래는 그 대화를 어조만 수정해서 옮겨놓은 기록이며, 지극히 사적인 내용을 제외하고라면 삭제하거나 추가한 부분은 없음을 밝힙니다.


아는사람과 모르는사람의 대화
-대학, 책방, 떡갈비에 관하여

아는사람(이하 Q) : 자네, 보아하니 신촌에 다녀오는 길 같은데?

모르는사람(이하 A) : 그걸 어떻게…….

Q : 신촌 특유의 젊음이 느껴지더군. 자네 같은 구닥다리에게는 예외적인 일이지.

A : 구닥다리라니…….

Q : 아닌가?

A : 신촌에 다녀온 건 맞네. 그곳에 있는 [공씨책방]이라는 헌책방에 다녀왔지.

Q : 헌책방에 다녀왔다고?

A : 그렇네.

Q : 헌책방에 가려고 신촌에 갔단 말인가?

A : 떡갈비도 사먹었지.

Q : 떡갈비?

A : 그 왜 요즘 TV에도 자주 소개되는 천 원짜리 떡갈비 있지 않나. 적당한 길이로 자른 가래떡을 나무젓가락에 꽂은 후 다진 갈빗살로 꽁꽁 싸맨 다음 즉석에서 구워 매콤한 양념장 바르고 종이컵에 담아주는, 그 포장마차에서 파는 떡갈비 말이야. 말 그대로 '떡갈비'인 셈이지.

Q : 그러니까 헌책방에 가고 '말 그대로 떡갈비'를 먹으려고 신촌에 갔다는 말인가?

A : 아니, 떡갈비는 우연히 먹게 되었지. 

Q : 자네는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네.

A : 내가 '모르는사람'이긴 하지.

Q : 거 참.



Q : [공씨책방]은 어떠한 곳이었지? 볼만하던가?

A : 규모는 그리 크지 않더군. 하지만 헌책이 분야별로 고루 있는 데다가, 헌책 외에 다른 헌 물건이 많아서 색다른 곳이었지.

Q : LP 같은 헌 물건 말인가?

A : LP도 있고, CD도 있고, DVD도 있었네. LP는 서재 한 귀퉁이를 모조리 다 차지할 만큼 그 수가 제법 많았지. CD는 중고음반과 비닐포장을 벗기지 않은 새 음반이 섞여 있었고, 그 종류는 퍼블릭 에네미의 힙합 음반에서부터 후안 디에고 플로레즈 같은 유명 테너의 독창집까지 다양했지만, 수는 그리 많지 않았네. DVD는 CD보다 수가 더 적었고, 극히 소량이었지만 희귀한 물품이 몇 가지 있는 것 같더군,

Q : 가격은?

A : LP나 DVD는 자세히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CD 같은 경우 그리 저렴한 편은 아니더군. 헌책은 저렴한 편이었지. 헌책 가격은 책 뒷면에 연필로 표시되어 있었다네.

Q : 손님은 많은 편이었나?

A : 그랬지. 대학가에 있는 곳이다 보니 아무래도 대학생이 많이 들르는 것 같더군. 특정한 책을 찾는 이들보다 그냥 둘러보는 이들이 더 많은 것 같아서 기분이 좋기도 했지. 헌책방이 있는지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우연히 지나다가 그곳을 발견하고 들어오는 이들도 꽤 되는 것 같았네. 근처를 지나면서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며 감탄사를 내지르던 이들이 계속 있던 것을 보면 말일세.



Q : 신촌의 이미지가 사실 헌책방과 썩 잘 어울리는 것은 아니지 않지 않나?  신촌하면 떠오르는 것은 '서점'이 아닌 '유흥가'니 말일세.

A : 글쎄, 신촌의 이미지에 관한 생각은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자네가 말하는 '이미지'라는 것이 대중 대다수가 무심코 수용하곤 하는 편견을 지칭하는 것이라면, 그럴 수도 있을 걸세. 실제로도 즐길 거리가 꽤 많은 편이고.

Q : 외국의 대학가는 그와 다른 모습 아니던가?

A : 그렇다고들 하더군. 유럽에는 볼로냐 대학처럼 캠퍼스가 따로 없고 도시 곳곳에 대학건물이 퍼져 있는 곳도 있다고 하는데, 유흥시설이 도시 전체에 널리 퍼져 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네. 미국 보스턴의 대학가는 고적하기로 명성이 높고. 그렇지만 그러한 대학가가 있는 나라가 한국만큼 대학 진학률이 높지 않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 같네. 굳이 생계를 위해서가 아니라 진지하게 학문을 하고 싶어서 대학에 오는 이들이 더 많으니, 대학가 역시 자연스레 그러한 방향으로 진화하는 것으로 볼 수 있겠지.
Q : 그밖에 또 고려해야 할 측면도 많겠지?
A : 그렇지. 대학의 역사가 더 길다는 측면, 즉 대학가가 형성되어온 역사가 그만큼 오래되었다는 측면도 고려해야 할 테고, 그들이 청소년기를 더 자유롭게 보낸다는 측면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되겠지. 서구 사회에서는 보통 대학에 입학하는 시점에서 독립하는 게 보편적인 일이라는 사실 역시 계산에 넣어야 할 거야. 

Q : 독립한 애들이 자기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독립하지 못한 애들은 밖에서 할 수밖에 없다, 그런 얘기인가?
A : 아니, 그런 얘기는 아니지만…….



Q : 대충 이해할 수 있을 법도 하네. 하지만 여전히 개운치는 않군. 굳이 대학가 주변에서 술 마시고 질펀하게 놀아야겠나? 다른 곳에 가서 놀아도 되잖아?
A : 생각해보게. 자네가 학생이라면, 주로 만나는 사람 역시 같은 학교 학생이 아니겠나? 그들과 만나는 장소 역시 그 학교 근처일 테고. 그런데 굳이 다른 장소까지 가겠나? 그것도 대학 주변을 '청결'하게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만으로?
Q : 그건 그렇군. 그래도 여전히 답답하네.
학교 근처에서 술집보다 책방을 많이 찾아볼 수 있기를 바라는 게 불합리한 일은 아니지 않나?
A : 그거야 그렇지. 대학가에 책방이 없다는 사실이 그러나 대학생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하네. 대학가에서만 대학생이 책을 산다고 생각하나? 대학 교정 안에 있는 서점은? 웬만한 양서는 다 비치된 학교도서관은 또 어떠한가? 게다가 요즘이 어떠한 시대인가. 클릭 몇 번만으로 인터넷 서점에서 쉽게 원하는 책을 주문할 수 있는 시대 아닌가.
Q : 대학가에서 책방이 많이 없는 것은, 독자층이 줄어서이기도 하겠지만 독자층이 책을 구하는 방식이 달라져서이기도 하다?
A : 그렇다고 나는 보네.



Q : 그럼 자네의 말은 방탕한 대학가의 모습을 긍정해야 한다는 뜻인가?
A :  글쎄. 나 역시 현재 한국의 대학가의 모습이 안타깝기는 하네. 소형서점이 살아나지 못하는 세태가 대학가에마저 그대로 반영되는 것 같아 더욱 안타깝지. 결국 모든 것의 대형화를 용납하는 것은, 끔찍한 독과점을 낳고, 지역경제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는 일일 테니까. 
Q : 그럼?
A : 그러한 일을 그러나 철없는 대학생 탓으로만 돌려서는 안 된다는 게 내 생각이네. 대학가 상권에서 돈을 버는 이들부터가 우선 대학생이 아니지 않나. 그 상권이 대학생의 욕망에 맞추어 형성되었다고 할지라도, 그 대학생의 욕망이라는 것이 이 사회와 무관하게 그저 겉멋만 든 대학생이 자체적으로 만들어낸 것은 아니라는 말일세. 게다가 한 사회의 가장 충실한 버팀목을 생산하는 대학에 다니는 이들에게 그러한 삶을 등지라고 요구하는 것만큼 우스운 요구가 또 있을까 싶기도 하군. 

Q : 아니, 그것은 결코 우스운 요구가 아니네. 자네도 말했다시피, 대학생은 사회의 가장 충실한 버팀목이 아니라 그저 그러한 것으로 변하는 과정에 있을 뿐이지. 그러한 과도기적 성향은 곧 그들이 얼마든지 자신이 교육받는 사실을 비판적으로 대할 수 있다는 의미 아니겠나?
A : 아마 그렇겠지.
Q : 다른 나라에서도 그렇지만 특히 한국에서는 이러한 대학생의 지위가 특수하다고 생각하네. 10대 때는 입시지옥에 시달리느라, 대학 졸업 후에는 박봉의 사회인으로 시달리느라 대다수 사람이 도저히 다른 일에 시간도 낼 수 없고, 또 다른 일에 신경을 쓰면 경쟁에서 낙오할 수밖에 없으니 시간이 있어도 그럴 일을 할 엄두를 낼 수 없는 나라가 바로 이 대한민국 아닌가? 이 나라에서 대학생만큼 여유로운 신분은 없을 걸세. 개개인의 사정을 떠나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그들만큼 시간이나 물질에 구속받지 않는 계층은 찾기 힘들다는 얘기지. 잃을 것은 분명히 있지만, 다른 이들보다는 적다는 것일세. 그러한 측면에서 대학생이야말로 한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계층이라고 나는 생각하네. 물론 대학생의 여유는 일시적이고 잠정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과거 386세대의 전범을 보면 어쨌든 그러한 여유를 통해 사회에서 주도적인 목소리를 내는 게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얘기 아닌가?
A : 그렇겠지.
Q : 그 시기에, 그러니까 나이로 따지면 20대 초중반, 사회의식이 막 형성될 그 무렵에 독서를 통해 스스로 사유하고 비판적으로 사회를 대하는 일을 경험해보지 못한다면, '기능인'만 양성하는 기존 교육에 굴복하는 수밖에 없겠지. 그렇지 않나?
A : 그럴 걸세.
Q : 자네도 동의하겠지만, 문제는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가 전체적으로 불황을 맞으면서,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 불황을 자초한 신자유주의 기조가 우위를 점하면서 대학생에게 그러한 여유가 사라졌다는 것이고, 비록 현재 미국경제의 몰락으로 세계구조가 재편되는 측면이 없지 않아 있기는 하지만, 이 나라는 그러한 세계적 추세와 별 관계 없이 대학생을 향한 압박수위를 낮추지 않는다는 걸세. 사유하는 인간 대신 공부하는 인간을 배출하고, 학문 대신 스펙을 좇는 학풍을 불러일으키는 현실을 문제 삼지 않는다는 것이지. 그렇듯 지식인 대신 기능인만 쏟아내는 사회의 결말이 어떠하리라고 생각하나? 
A : 약자를 배려하는 사회가 될 수는 없겠지.
Q : 자네가 말하려는 바도 그러한 것이었나?
A : 그렇네. 한국의 화려한 대학가를 통해 우리는 단순히 한국 대학생의 '생각 없음'을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홍세화를 비롯한 몇몇 좌파 논객이 주로 사용하는 논법이지), 그보다는 한국 사회의 '생각 없음,' 그리고 더 나아가서 현 세계 체제가 돌아가는 방식 앞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는 단일 국가의 '생각 있어도 어찌하기 힘든' 모순 등을 짚고 넘어갈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는 얘기였지.  
Q : 그러한 거시적인 접근방식은 자칫 냉소나 허무로 귀결될 위험도 있지 않나? 아마 그러니 그 무용함을 알면서도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듯 대학생을 비난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네. 하여간 정리해보자면, 사회가 시궁창인데 대학 주변만 고상한 모습이기를 바라는 것은 우스운 일이라는 건가?
A : 뭐 꼭 시궁창이라는 표현까지는 쓰고 싶지 않네.



Q : [공씨책방]이 그런데 신촌 어디에 붙어 있나?

A : 신촌역 1번 출구에서 나와서 쭉 올라가다 보면 나오네. 대로변에 있는 곳이지.

Q : 신촌의 대로변에 있는 헌책방이라. 신선하군.

A : 신선하지.



Q : 그나저나 [공씨책방]은 왜 '공씨책방'인가?

A : 나도 모르겠네. 아마 주인분 성씨가 공씨여서 그런 게 아닐까?

Q : 쯧쯧. 조금 적극적으로 이것저것 물어보고 그러게나. 어째 안 다녀온 사람이 다녀온 사람보다 책방에 대해 더 많이 알 수 있을 것 같네.

A : 그야, 원래 자네는 아는사람이고 나는 모르는사람이니 당연한 일 아닌가.

Q : 거 참.



Q : 그런데 떡갈비는 맛있었나?
A : 그냥…….
Q : 가래떡 위에 갈빗살을 두르는 대신 아예 떡 안에 고기를 갈아 넣으면 더 쫄깃하고 맛있을 것 같은데 말이지. 안 그런가?
A : 그럴 것도…….
Q : 그럴 것도 같다고? 당연히 그럴 걸세. 당연히 더 맛있을 것이라는 얘기지. 나중에 내가 한 번 팔아볼 테니 먹으러 오게나. 시간이 늦었으니 이만 가보겠네. 그럼 이만!
A : 거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