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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한 감기에 걸렸다. 숨도 제대로 못 쉬고, 말도 제대로 못 한다. 비로소 마음상태에 걸맞은 몸상태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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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영화를 꽤 많이 보았다. 볼수록 역시 나는 영화광이 될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몇몇 영화는 정말 좋았다. 아래는 그 몇몇 영화를 포함한 여러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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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영화의 시대에 흑백영화로 데뷔한 감독이 몇 명 있는 것으로 안다.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데뷔작 <파이> 역시 흑백영화다. 그것도 무척 인상적인. 롱테이크 대신 빠른 화면전환을 즐겨 쓰는 감독의 작품답게, 어찌 보면 잔잔한 수학자의 고뇌를 무척이나 격렬한 영상으로 담아냈다. MTV가 영화에 끼친 진정한 영향은 곧바로 드러난 게 아니라 이렇듯 10여 년의 기간을 두고 잠복해있다가 갑작스레 분출된 게 아닐까 싶다. 물론 아로노프스키의 영상은 MTV의 영향만으로 설명해내기에는 지나치게 섬세하고 아름답고 복잡하다. 보는 내내 죽고 싶었다. 그래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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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서는 받아들이기 다소 어려운 영화였지만, 무셰트의 눈물에는 어느 정도 공감이 갔다. 마지막 장면은 특히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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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스터 영화. 이 "좋은 친구들"이 어떠한 식으로 끝날지는 다소 뻔하게 그려졌고, 실제로 그렇게 끝났다. 영화적으로 어떠한 충격을 받지도 못했다. 예전에 스콜세지 감독의 <갱스 오브 뉴욕>을 다 보고 난 다음에도 비슷한 감흥이 일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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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 밀러의 세계는 지나치게 어둡다. 굳이 폭력을 쓰지 않아도 될 부분에서까지 폭력을 쓰고, 가볍게 웃어넘길 수도 있는 부분에서 잔뜩 인상을 써서 그렇다. <씬 시티>는 정말 독특한 영화이기는 하다. 영상도 멋지게 보려면 멋지긴 하다. 이 말초적이고 마초적인 영화는 또한 기존권력과 기존체제에 대한 강렬한 비판이 될 수도 있다. 순수하게 살 수도 있었을 개인이 결국 이 죄악으로 가득 찬 도시에서 살아남고자 그렇게 폭력적으로 변한 것일 수도 있으니까. 그래도 불편하긴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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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넨버그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존경스럽다. <네이키드 런치>는 미처 다 보지도 못했다. 다 보지도 못한 영화를 어떻게 비판할 수 있는지 혹자는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맞다, 나는 지금 비판하려는 게 아니라 그의 영화가 준 이질감을 토로하려던 것뿐이다. 피터 잭슨의 초기작을 좀처럼 감당해내기 힘든 것처럼, 나로서는 크로넨버그의 걸작으로 일컬어지는 작품을 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폭력의 역사>에서는 그 특유의 징그러운 특수효과는 찾아보기 힘들었지만, 여전히 호감이 가는 영화는 아니었다. 잔뜩 힘주어서 말하는 영화의 어조와 그 촌스러운 디테일이란! 텍스트로 따져보면 얼마든지 황홀할 수도 있는 이야기지만, 영화로 얘기하려면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한데 그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특유의 건조한 스타일, 미국을 미국적이지 않게 표현해내는 점 등은 마음에 들었지만 그뿐이었다. 비고 모르텐슨의 연기가 과연 그렇게 찬사받을만한 것이었는지도 의문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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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하기가 그리 쉬운 영화는 아니었지만, 이해하지 못해도 좋아할 수 있는, 아니 더 나아가 사랑할 수 있는 영화였다. 언젠가 다시 한 번 천천히 보고 싶다. 어떠한 사람은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를 제대로 보려면 자막 없이 화면만을 응시해야 한다는 말을 남겼더라. 그렇게 하면 더더욱 집중하기가 힘들 것 같기는 하지만, 그 넓은 대지와 무의식을 포착해내는 영상을 상기해보면 정말 그러한 방법이 효과적일 듯도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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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과 마찬가지로, 이 영화 역시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지만-하나의 유기적인 틀로 엮어내어 정리하기는 어려웠지만-정말 좋았다. 환자와 간병인 사이의 관계를 뒤집으며 인간관계의 폭력적인 본질을 드러낸 방식은 탁월하게 여겨졌고, 그 모든 것을 영화로서만 표현할 수 있는 형식에 담아낸 것으로 여겨져서 마음에 들었다. 잉마르 베리만의 다른 영화를 꼭 보아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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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치콕의 영화는 찾아볼수록 그 진가를 점점 깨닫게 된다. 캐리 그랜트, 조안 폰테인 커플은 참 잘 어울리더라. 히치콕이 의도한 결말대로 끝나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러한 결말도 나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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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헐리우드 엔딩 같은 엔딩이 있는 영화 :) 정말 재밌게 봤다. 우디 앨런의 유머코드를 일단 수용하면, 그것만큼 유쾌한 것도 찾아보기 힘든 것 같다. 시트콤 [윌 앤 그레이스]의 데브라 메싱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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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거의 듣고 있지 않지만, 그래도 가끔 듣는 곡이 있기는 하다.
Foo Fighters - Virginia Moon
Lauryn Hill - I Find It Hard To Say(Reb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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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게시판에서 '음독淫讀'이란 단어를 보았다. 음란한 책 읽기. 욕심에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읽지만 정작 자신의 생각이 없음을 가리키는 표현이라 한다. 온전한 자신만의 생각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 표현이 아무런 일리도 없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요즘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이것저것 많이 읽는 편이지만, 아무것도 정리해내지 못하고 있다. 정말 안이 텅 비어 버린 것만 같다(그럼 겉은 꽉 차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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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중에 한 번 여행을 가보고 싶다. 복학하기는 정말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