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에 탄 시체와 사고가 난 차량. [벨라미]는 아름다운 풍경을 응시하다가 문득 그러한 피사체를 보여줌으로써 영화의 도입부를 마무리한다. 그리고는 폴 벨라미 형사가 등장한다. 제라르 드빠르디유가 연기한 이 사내는 처음에는 전혀 형사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범인의 지문이나 단서를 찾아 헤매는 대신 외딴 별장에서 아내와 함께 낱말퍼즐에 열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서전까지 펴낸 유명한 형사인 그에게는 그러나 사건이 찾아오고, 그는 그 사건을 굳이 거부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죽고 난 다음 그 죽음의 배후를 파헤치는 형사가 등장한다면, 흥미진진한 스릴러물을 기대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벨라미]는 그러나 그러한 기대를 아주 침착하게 저버리는 영화다. 오늘날 관객을 지나칠 정도로 극적인 몰입과 전율의 세계로 이끄는 현대 스릴러물의 특성은 이 영화에서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폴 벨라미는 영화가 계속 진행되어도 그저 나이가 많고 자신의 아내를 사랑하는 평범한 중년처럼 보일 따름이고, 살인사건 역시 해결되는 듯싶다가도 미궁으로 빠져들고, 용의자는 시간이 흐를수록 도저히 선한 인물인지 악한 인물인지 분간하기가 힘들어진다.
폴 벨라미와 프랑소와 벨라미 형제 사이의 가벼운 말다툼을 제외하고라면 웃음의 요소도 찾기 힘들다. 클로즈업된 얼굴이 주로 등장하는 이 영화의 흐름은 무척 느리다. 프랑스 영화사의 한 축을 담당했던 끌로드 샤브롤 감독이 여전히 생기를 잃지 않고, 그러나 관객의 흥을 돋우어야 한다는 강박은 전혀 지니지 않은 채 편안히 작업한 듯한 작품이다. 인생의 아이러니를 효과적으로 드러내 주는 이야기는 매력적이지만, 그 이야기가 그리 새롭게 여겨지지만은 않는다는 점, 그리고 그러한 이야기를 담아낸 틀로써 더욱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도 있었을 영화적 장치를 다소 단조롭게 사용한 측면은 약간 아쉽다.
별점 : ★★★ (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