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백/영화 38

충무로국제영화제 = 충무로동네영화제

충무로국제영화제에 다녀왔다. 국제영화제가 아니라 동네영화제 수준이었다. 1. 국제영화제의 셔틀버스라면 그 안에 최소한 2개국어(한국어/영어)로 정거장을 안내하는 시스템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 수준까지 안 되더라도 어쨌든 자원봉사자 한 명쯤은 버스 안에 타서 안내를 도맡는 게 기본 중의 기본일 것이다. 하지만 충무로영화제 셔틀버스 안에는 자원봉사자도 없었고, 안내방송도 없었고, 불친절하고 미숙한 운전기사밖에 없었다. 게다가 교통 및 날씨를 핑계로 툭 하면 늦었다. 셔틀버스 문제는 곧 각 상영관 사이의 거리의 문제다. 이번 충무로영화제에서 사용하는 상영관 수는 다 합쳐야 겨우 10여 개에 지나지 않는다. 요즘 웬만한 멀티플렉스 극장 한 곳의 상영관 수와 비슷한 것이다. 통째로 극장 한두 군데를 빌려..

독백/영화 2009.08.27

용서받지 못한 자

용서받지 못한 자 감독 윤종빈 (2005 / 한국) 출연 하정우, 서장원, 윤종빈, 김성미 상세보기 며칠 전 OCN에서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를 보았다. 군대에 적응한 남자(유태정)와 군대에 적응하지 않으려 했던 남자(이승영)의 대비를 통해 비극적인 이야기를 들려주는 영화였다. 이 영화 속 군대에 적응하지 않으려 했던 남자, 즉, 남자 같지 않고 얌전하고 타인의 상처를 신경 쓰는 이승영이란 인물의 여러 면모는 나의 모습과 상당 부분 겹쳤고, 또 그가 겪은 일이 군대에서 내가 겪은 일과 여러 면에서 유사하게 여겨져서, 영화가 좋고 싫고를 떠나 개인적으로 각별하게 다가왔다. 군 복무를 마치기는 했지만 군대란 조직의 폐해를 나는 직접적으로 낱낱이 경험해보지는 못했다. 자그마한 예비군 중대에서 상근예비역으로..

독백/영화 2009.08.24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영화제에 별 관심이 없던 시절부터 한 번쯤 가고 싶어했던 행사다. 규모가 그리 크지 않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고, 음악이 중심이 되어 영화와 공연을 함께 관람할 수 있다는 점이 매혹적으로 다가와서 그랬다. 청풍호에서 열리는 야외공연을 보고, 그 근처에 있는 호텔에서 묵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으로 상영작 목록만 몇 번이고 쳐다보았던 때가 있었는데, 그 해 출품된 작품이 [원스]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결과적으로는 그때도 그렇고, 그 이후로도 가지 못했다. 여러 가지 부분이 걸렸지만 결정적으로 나의 발목을 잡은 것은 불편한 교통편이었다. 자가용으로는 내가 사는 지역에서 1시간 20분 정도 걸려 비교적 수월하게 도착할 수 있는 곳이지만, 대중교통으로는 시간도 그 배로 걸리는 데다..

독백/영화 2009.08.16

박찬욱 감독전

-서울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매달 한국영화 한 편을 선정해 '다시보기' 행사를 한 지 어느덧 2년이 흘렀다고 한다. 2주년 기념으로 기획된 것이 바로 박찬욱 감독전. [달은...해가 꾸는 꿈]부터 시작해서 [박쥐]까지, [심판]을 제외한 박찬욱 감독의 전 작품을 8월 6일부터 13일까지 두 차례씩 상영해주는 행사. 게다가 관람료는 무료. -8월 6일과 8일에 한국영상자료원을 찾아갔다. 지은 지 오래되지 않은 고층빌딩 여러 개가 밀집한 디지털미디어시티 주변은 황량해서 무섭기까지 했지만, 어쨌든 한국영상자료원의 건물은 오래되지 않은 건물다웠다. 극장 상영관도 마찬가지여서, 서울아트시네마 수준을 예상하고 갔던 나로서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달은...해가 꾸는 꿈]은 박찬욱 감독의 데뷔작이다. 흥행에서뿐..

독백/영화 2009.08.11

[Cold Souls]

[영혼을 빌려드립니다Cold Souls]라는 제목을 보고 영혼이란 단어가 지칭하는 모호한 대상에 대해서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말자. 그 단어는 단지 현대과학의 혜택을 받지 못한 우리 조상이 뇌의 기능을 오해한 데에서 비롯한 것이라며 매정하게 내치지는 말자는 얘기다. 그리고 한 번 생각해보자. 근대에 접어든 지도 어느덧 몇 세기가 흐른 요즘, 우리는 과연 과학적으로 이 인생을 감당할 수 있게 되었는가? 아니면 아직도 여전히 영혼과 비슷한 낡은 개념에 매달려야 할 정도로 혼란스럽게 살아가고 있는가? 지치고 우울한 영혼을 잠시 내려놓고 가벼운 마음으로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늘날에도 그리 드문 일이 아닐 것이다. 억눌린 욕망, 뒤틀린 관계, 좌절된 꿈 등으로 괴로워하는 현대인, 그들은 안식처를 찾는다..

독백/영화 2009.07.26

[OSS 117: Rio Ne Repond Plus]

여기 정치적으로 공정하지 않은 또 한 명의 영웅이 등장했다. 이름하여 OSS 117. 007 시리즈의 패러디물임이 명백한 [OSS 117 : 리오 대작전]의 주인공 OSS 117은 프랑스 최고의 비밀요원이다. 그는 당연히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고, 잘생기긴 했으나 그만큼 느끼하며, 유머감각보다는 웃음소리가 더 매력적인 남자다. 잘생겼다는 사실만 빼놓고 보면 오스틴 파워와 유사하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배경은 60년대고, 미모의 이스라엘 요원과 함께 신나치 추종세력의 지도자를 타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OSS 117은 소수인종과 여성 등을 향한 차별(보다는 차별 발언)을 무차별적으로 하는 백인 남성이기에 정치적으로 무척 불공정하게 보이지만, 이러한 부분은 웃음을 위한 것이므로 너그러이 받아들일 수 있다..

독백/영화 2009.07.25

[Bellamy]

불에 탄 시체와 사고가 난 차량. [벨라미]는 아름다운 풍경을 응시하다가 문득 그러한 피사체를 보여줌으로써 영화의 도입부를 마무리한다. 그리고는 폴 벨라미 형사가 등장한다. 제라르 드빠르디유가 연기한 이 사내는 처음에는 전혀 형사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범인의 지문이나 단서를 찾아 헤매는 대신 외딴 별장에서 아내와 함께 낱말퍼즐에 열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서전까지 펴낸 유명한 형사인 그에게는 그러나 사건이 찾아오고, 그는 그 사건을 굳이 거부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죽고 난 다음 그 죽음의 배후를 파헤치는 형사가 등장한다면, 흥미진진한 스릴러물을 기대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벨라미]는 그러나 그러한 기대를 아주 침착하게 저버리는 영화다. 오늘날 관객을 지나칠 정도로 극적인 몰입과 전율..

독백/영화 2009.07.24

[Mulholland Dr.]

(멀홀랜드 드라이브. 미국 LA에 실제로 존재하는 도로라 한다.) (나오미 와츠, 로라 엘레나 해링.)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0. 하나TV에 [멀홀랜드 드라이브]가 올라와 있어서 다시 보았다. 0-1. 불과 몇 달 전에 EBS에서 이 영화를 방영했던 적이 있다. 그날 나는 밖에 있었고, 정확히 말하자면 린치의 영화 속에 등장할 법한 낯설고 어두운 모텔 방 안에 있었다. 그 방 안 침대에 누워 TV 채널을 돌리다가 EBS에서 [멀홀랜드 드라이브]가 나오는 것을 보았다. 불행히도 그때 막 영화가 시작했던 게 아니라 시청의욕이 좀처럼 일지 않았고 또 너무 피곤했기에 곧 TV를 끄고 잠을 청했다. 그러나 너무 피곤했던 탓인지 잠은 쉽사리 오질 않아 한참을 뒤척였고, 그 도중 몇 번이고 TV를 몇 번이..

독백/영화 2009.07.16

[Blue Velvet]

[블루 벨벳]을 보았다. 괴상한 B급 드라마와 무의식을 탐구하는 예술영화가 뒤섞여 있는 듯한 이 영화에는 안젤로 바달라멘티의 음울한 배경음악과 함께 친숙한 올드팝 두 곡이 흘러나온다. 'In Dreams'와 'Blue Velvet'이 바로 그 두 곡이다. 영화 속에 나오는 중요한(혹은 중요한 것 같은데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는) 대사 대부분은 이 두 곡의 가사에서 빌려온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로지 꿈속에서만 '그대'와 함께 있을 수 있음을 슬퍼하는 'In Dreams,' 사랑을 꽉 붙잡아두려 했지만 결국 그 기억만 남아 눈물을 흘리는 'Blue Velvet'의 주체들은, 비록 영화가 화창한 날씨 속에서 끝을 맺음에도 그 음울한 바탕을 지탱한다. 데니스 호퍼가 연기한 프랭크 부스는 꽤 인상 깊은..

독백/영화 2009.0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