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백/기타 등등 68

기록, 독백

책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지 거의 한 달이 다 되어가는 것 같다. 짧은 글, 기사, 시 몇 편을 제외하고라면 그 무엇도 읽어낼 수가 없었다. 글쓰기에 관해서도 비슷한 상황이다. 이 블로그에 별것 아닌 글을 비공개로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 하는 게 거의 전부다. 한계에 다다른 것 같다. 돌파구가 필요하다. 아, 하지만 이 극적인 해결책을 향한 갈망이 모순적임은 잘 안다, 일상에서 꾸준히 풀어나가야 할 문제일 테니까. 그래도 그러한 것을 바라는 심리는 멈출 수가 없다. 오이디푸스의 뒤에서 걷는 일이란 이렇듯 가시방석이다. 다 알고도 죄악을 저지르고 싶어하고, 다 알기에 그러한 욕망을 짓누른다. 오늘날의 비극은 그래서 모양새가 조금 흐트러진다. 희극으로 눈을 돌리는 사람들이 꼭 속물인 것은 아니다. 그럴만..

오, 여름!

시립도서관에 가보니 초등학생이 그리고 쓴 시화가 여러 점 전시되어 있었다. 주제는 시간·여름·방학 정도로 미리 주어진 것 같았다. 찬찬히 둘러보다 보니 구름에 관한 한 학생의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구름이 동글동글하다느니 푹신푹신하다느니 하는 식으로 다소 뻔한 설명을 하다가 마지막에 '내 마음에 따라 구름도 바뀌네'라는 구절을 집어넣은 글이었다. 내 마음에 따라 구름도! 아, 거 참 초등학생치고는 괜찮은 통찰력인데, 하며 거만한 평가를 마치고 다른 작품을 둘러보다가 도서관 밖을 내다보았다. 오전에 내린 비의 흔적은 한 줌도 보이지 않았고 감당키 힘든 햇살만 있었다. 거 참 지겹도록 내리쬐는군, 하며 도서관 밖을 거닐 때는 몰랐는데 집에 와보니 '내 마음에 따라'가 생각났다. 거 참 지겹도록 살고 있군, ..

환상속의그대

리비도는 무한하고, 현실은 유한하다. 현실이 아니라 환상 속에서 자신의 욕망을 좇는 사람은 예외적 존재가 아니다. 샴푸의 요정, 백마 탄 왕자……등은 외로운 사람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애인을 둔 사람에게 오히려 더 유효한 환상일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완전한 교감을 나눌 수 없다는 것은 더욱 견디기 힘든 좌절이기에. 환상은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다. 바로 이 지점을 사고의 출발로 삼는 것, 여기에서 완전한 남성성과 여성성의 신화를 해체하기 시작하는 것, 그로부터 자유롭게 날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참을 수 있는 존재의 가벼움

나는 내가 말하는 것보다 아주 가벼운 사람이다. 가볍게 행동하는 것보다 무겁게 행동하는 게 훨씬 쉬워서 무거운 사람처럼 있을 뿐, 실상은 깃털보다 조금 더 무거울 뿐인 인간이다. 무겁게 말할 때 진땀이 흐르는 것을 보면 그런 것 같다. 서투른 무거움이란 끔찍하다. 연기는 배우만 하는 게 아니다. 연인 앞에서 사랑을 갈구할 때 진정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데 눈이 어색하게 감기고 얼굴이 일그러지면 분위기가 깨진다. 진심은 반드시 통한다고들 한다. 그렇다, 하지만 기교 없는 진심이 통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리고, 결국 통하지 않을 때도 있다. 내 경험에 비추어보면 그런 것 같다. [손수건을 꺼내라]라는 영화에는 10살이 조금 넘은 소년이 20살이 훌쩍 넘은 여성과 동침하는 장면이 있다. 내가 동경하는 삶은..

ㄲㅜㅁ

1 "남자 대부분은 그저 여자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워하잖아. 그게 혼자 있는 것보다 불편하다고 해도 말이야. 그렇지만 그렇게 단순하게 만족스러워하지 못하는 남자도 있단 말이야." 2 세 갈래로 나누어진 돌담길, 언덕 위쪽으로 어떠한 여자와 함께 올라가려다 문득 저만치 골목 입구에서 친숙한 얼굴의 또 다른 여자를 마주한다. 반가워할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쨌든 아는 사람이니 용기 내어 인사를 건넨다. 그녀는 생각보다 훨씬 반가워한다. 함께 걷던 여자는 내가 곁에서 사라졌다는 것을 눈치채지도 못한 채 계속 돌담길 위로 올라가고 있다. 3 친숙한 얼굴로 나를 반가워했던 그 여자는 이제 나를 계속 죽이려 든다. 나는 어떻게든 그녀를 설득하고자 하지만 소용이 없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나는 완전한 ..

불안, 불면

시간을 있는 그대로 흘러가게 놔두는 데 불안을 느끼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이 사회가 치열한 경쟁을 조장하는 사회이기 때문일까? 살아있다는 것은 원래 끝없는 불안정의 지속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아니면. 허구의 이야기 속에서 불륜을 방관하는 것과 실제 생활 속에서 불륜을 목격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다. 지겨운 통속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그것을 체험하는 일이 늘 새롭고 놀랍다는 데 있지 않을까. 개별자는 애써야만 초연할 수 있다, 평범하건 비범하건. 잠 못 드는 밤, 악의에 관한 글을 읽는다. 반성하고, 어리석음을 참회하다가도 곧 나이 많은 방화범처럼 서투른 몸짓으로 달려가 악의에 기름을 끼얹고 싶어하는 자신을 의식한다. 윤리가 어디에 있는가, 저 아름다운 동상 앞에서 박제된 것은 과연 무엇인가.

끔찍한 생각들

입이 거칠어지고 있다. 남들 앞에서는 물론 단속을 철저히 하겠지만, 혼자 있을 때는 주체할 수가 없다. 잠꼬대로 악의에 가득 차 여러 말을 내뱉는 자신을 잠결에 의식하기도 하고, 깨어 있을 때도 마치 잠에 든 것처럼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인생이 공평해야 한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으면, 정말 울화통이 치미는 세상이다. 공평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마시는 물, 주말 시간을 보내는 방식, 인간관계, 건강, 지성…… 무엇 하나도. 낙관을 잃으면 전향하기 쉽다는 글귀를 한 게시판에서 보았다. 맞는 말이다. 끝까지 전향하지 않으려면 정말 강하거나 정말 바보 같아야만 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어설프게 멍청한 것만큼 불행한 일도 없는 것 같다.

춘천行

이틀 전, 도저히 집에 붙어 있을 수가 없어서 서울로 향했다. 지하철을 타고 청량리역까지 갔다. 그리고 남춘천행 무궁화호 열차표를 한 장 끊었다. 방 안에서, 오가는 기차 안에서, 한적한 식당에서 간단한 여행기를 남겼다. 기형도의 여행기를 염두에 두었으나 내가 쓸 수 있던 것은 다소 천박한 외로움의 기록뿐이었다. 돌아오는 날, 장마가 시작되었다. 집으로 가는 도중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나서 전복되거나 멈춰 있는 차량을 서너 대 가량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