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199

박찬욱 감독전

-서울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매달 한국영화 한 편을 선정해 '다시보기' 행사를 한 지 어느덧 2년이 흘렀다고 한다. 2주년 기념으로 기획된 것이 바로 박찬욱 감독전. [달은...해가 꾸는 꿈]부터 시작해서 [박쥐]까지, [심판]을 제외한 박찬욱 감독의 전 작품을 8월 6일부터 13일까지 두 차례씩 상영해주는 행사. 게다가 관람료는 무료. -8월 6일과 8일에 한국영상자료원을 찾아갔다. 지은 지 오래되지 않은 고층빌딩 여러 개가 밀집한 디지털미디어시티 주변은 황량해서 무섭기까지 했지만, 어쨌든 한국영상자료원의 건물은 오래되지 않은 건물다웠다. 극장 상영관도 마찬가지여서, 서울아트시네마 수준을 예상하고 갔던 나로서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달은...해가 꾸는 꿈]은 박찬욱 감독의 데뷔작이다. 흥행에서뿐..

독백/영화 2009.08.11

악습관

자신만만한 사람을 뻔뻔한 인간으로 여긴다. 그렇게 보이지 않고자 입과 몸을 꽉 붙들어 맨다. 내면에서 끓어 넘치는 오만가지 것들을 향해 채찍을 휘두른다. 만신창이가 되어 세상을 바라본다. 흑백의 세상을 가로지르는 빨간 드레스를 입은 여인, 그 앞에서 눈을 질끈 감았다가 슬며시 뜬다. '사랑은 믿지만, 평화는 믿을 수가 없다.'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어느 것이건 다 믿고, 믿지 않고 성찰하는 이들을 경멸하고, 그들 앞에서 뻔뻔한 인간의 순박한 자신감을 긍정한다.

"사랑하라, 희망없이"

뭘 하든지 내가 겪는 괴로움은 내가 평균 이하이기 때문이라는 자각이 들곤 한다. 나는 엉성한 글조차 완성할 수 없어서 괴로워하고, 개성 있는 옷차림이 아니라 평범한 옷차림조차 따라 입을 능력이 없어서 힘겨워한다. / '88만원 세대의 사랑'에 관한 한겨레21의 기사를 접했다. 사랑은 언제 어디에서나 가난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싶었고, 돈 때문에 헤어질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것 아닐까 싶었고, 그렇게 넘겨짚는 나 자신이 한심하게 여겨졌다.

은둔생활

복학신청을 하러 아침 일찍 학교에 갔다. 한 3년 만에 찾아간 것이었음에도 알록달록한 예술대학 건물은 친숙하게 다가왔다. 학교에 다닐 생각, 즉 그곳에서 다른 이들과 만나 어울리며 지낼 생각을 하니까 그 친숙함은 곧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불현듯 누군가가 강의실에서 공포영화 귀신처럼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정말 두려웠다. 사방을 살펴보며 슬금슬금 행정실로 걸어가서, 절차에 따라 간단한 서류를 채워넣고 전역증을 제출했다. 그게 내가 한 일의 전부였지만 정신이 없었다. 버스에 올라타서 집에 가는 동안 나 자신이 무척 자그마하게 여겨졌다. 내가 걸쳤던 티셔츠는 어제 새로 산 것이었음에도 넝마조각처럼 느껴졌다. /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마트에 들렀다. 거기에서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고, 장..

교차로.

MBC [4주후愛] 시청자 의견 A : 자신을 억누르는 이들의 비극, 말하지 않는 자들의 고통만큼 저의 가슴을 울리는 것은 없습니다. B : 당신이 그러한 사람이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당신이 사람이기 때문입니까? 노약자석 국가는 복지를 담당하기도 하지만 치안을 담당하기도 한다. 노약자는 배려받는 동시에 격리당한다. 구인광고 경력을 요구하지 않는 곳은 없다. 푸드코트에서 홀로 식사하는 일 '이 시끄러운 공간에서 누군가와 함께 식사를 한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멀티플렉스 팝콘과 음료수를 사는 이들은 대부분 가족이거나 연인이다. 메뉴판에 자그마한 글씨로 씌어 있는 생수를 발견하고 주문하는 이들은 대부분 혼자다. 현대 예술의 타락과 가능성이 뒤섞여 있는 이곳에서 늘 풍기는 팝콘 냄새는 몇몇 이들을 헐벗은 것..

여러 가지.

1. 픽사 애니메이션 [업]이 내일 개봉한다. 보고 싶다. 2. 팀 버튼의 [배트맨 리턴즈]를 보았다. [배트맨]을 워낙 실망스럽게 보았던 터라 조금 불안했지만, 무엇보다도 특수효과가 전편보다 훨씬 세련되어서 만족스럽게 볼 수 있었다; 불과 3년 정도 기간을 사이에 두고 제작된 것인데 왜 그렇게 기술적인 부분에서 큰 차이가 나는 것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영화를 다 보고 나니 배트맨 영화 중 이 영화를 최고로 평가하는 몇몇 블로거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그러나 이것보다는 [다크 나이트]가 더 마음에 들었고, 그보다는 [배트맨 비긴즈]가 더 좋았다. 그러나 [배트맨 리턴즈]가 가장 훌륭한 배트맨 영화라고 생각되기는 했다. 아,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묻지 말라, 나도 잘 모르겠다... ..

[Cold Souls]

[영혼을 빌려드립니다Cold Souls]라는 제목을 보고 영혼이란 단어가 지칭하는 모호한 대상에 대해서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말자. 그 단어는 단지 현대과학의 혜택을 받지 못한 우리 조상이 뇌의 기능을 오해한 데에서 비롯한 것이라며 매정하게 내치지는 말자는 얘기다. 그리고 한 번 생각해보자. 근대에 접어든 지도 어느덧 몇 세기가 흐른 요즘, 우리는 과연 과학적으로 이 인생을 감당할 수 있게 되었는가? 아니면 아직도 여전히 영혼과 비슷한 낡은 개념에 매달려야 할 정도로 혼란스럽게 살아가고 있는가? 지치고 우울한 영혼을 잠시 내려놓고 가벼운 마음으로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늘날에도 그리 드문 일이 아닐 것이다. 억눌린 욕망, 뒤틀린 관계, 좌절된 꿈 등으로 괴로워하는 현대인, 그들은 안식처를 찾는다..

독백/영화 2009.07.26

[OSS 117: Rio Ne Repond Plus]

여기 정치적으로 공정하지 않은 또 한 명의 영웅이 등장했다. 이름하여 OSS 117. 007 시리즈의 패러디물임이 명백한 [OSS 117 : 리오 대작전]의 주인공 OSS 117은 프랑스 최고의 비밀요원이다. 그는 당연히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고, 잘생기긴 했으나 그만큼 느끼하며, 유머감각보다는 웃음소리가 더 매력적인 남자다. 잘생겼다는 사실만 빼놓고 보면 오스틴 파워와 유사하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배경은 60년대고, 미모의 이스라엘 요원과 함께 신나치 추종세력의 지도자를 타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OSS 117은 소수인종과 여성 등을 향한 차별(보다는 차별 발언)을 무차별적으로 하는 백인 남성이기에 정치적으로 무척 불공정하게 보이지만, 이러한 부분은 웃음을 위한 것이므로 너그러이 받아들일 수 있다..

독백/영화 2009.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