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199

여러 가지

1. 오랜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연락오는 사람이 많지도 않은데 누구인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도 못했다. 2. 낮술을 마셨다. 맥주 한 캔이었지만, 어쨌든 술은 술이었고, 기분이 안 좋아서 마신 것이었으니 더더욱 낮술다웠다. 곧 있으면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데, 오랜만에 여러 사람을 만나서 겪는 일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고, 그 모든 것이 다시 한 번 반복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확신이 드니 정말 괴롭다. 3. 꽤 오래전, 로만 폴란스키의 [피아니스트]를 무척 감동적으로 본 지 얼마 되지 않아 우연히 미카엘 하네케의 [피아니스트]란 영화도 그에 못지않게 좋다는 얘기를 듣고 DVD를 샀더랬다. 처음에는 도저히 이자벨 위페르가 연기하는 피아니스트에 공감할 수가 없었는데, 나이..

여러 가지(충무로영화제)

앞서 올린 충무로 영화제 관련 글은 거칠고 어쭙잖은 감이 있어서 영 개운치 않지만 그냥 당분간 놔둘 생각이다. 이렇게라도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면 억울해서 못 견딜 것 같다. 올해 최고의 화제작은 뭐니뭐니해도 대부인 것 같다. 극장에서 대부를 1편부터 3편까지 한 번에 볼 기회가 흔치 않을 테니. 하지만 나는 코폴라 감독에 대한 편견이 강해서 부러 예매하려 들지 않았다. [지옥의 묵시록]은 메시지만 좋은 영화, 바그너의 음악을 잘 사용한 영화... 정도라고 생각한다. 내가 지나치게 영화의 서사 부분만 중요시했던 시기에 본 작품이어서 더 나쁜 인상만 남아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를 포함해 알프레드 히치콕, 오손 웰즈 등 몇몇 전설적인 영화 거장의 작품은 좀처럼 좋아하기가 힘든데 왜 그런..

독백/영화 2009.08.29

충무로국제영화제 = 충무로동네영화제

충무로국제영화제에 다녀왔다. 국제영화제가 아니라 동네영화제 수준이었다. 1. 국제영화제의 셔틀버스라면 그 안에 최소한 2개국어(한국어/영어)로 정거장을 안내하는 시스템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 수준까지 안 되더라도 어쨌든 자원봉사자 한 명쯤은 버스 안에 타서 안내를 도맡는 게 기본 중의 기본일 것이다. 하지만 충무로영화제 셔틀버스 안에는 자원봉사자도 없었고, 안내방송도 없었고, 불친절하고 미숙한 운전기사밖에 없었다. 게다가 교통 및 날씨를 핑계로 툭 하면 늦었다. 셔틀버스 문제는 곧 각 상영관 사이의 거리의 문제다. 이번 충무로영화제에서 사용하는 상영관 수는 다 합쳐야 겨우 10여 개에 지나지 않는다. 요즘 웬만한 멀티플렉스 극장 한 곳의 상영관 수와 비슷한 것이다. 통째로 극장 한두 군데를 빌려..

독백/영화 2009.08.27

용서받지 못한 자

용서받지 못한 자 감독 윤종빈 (2005 / 한국) 출연 하정우, 서장원, 윤종빈, 김성미 상세보기 며칠 전 OCN에서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를 보았다. 군대에 적응한 남자(유태정)와 군대에 적응하지 않으려 했던 남자(이승영)의 대비를 통해 비극적인 이야기를 들려주는 영화였다. 이 영화 속 군대에 적응하지 않으려 했던 남자, 즉, 남자 같지 않고 얌전하고 타인의 상처를 신경 쓰는 이승영이란 인물의 여러 면모는 나의 모습과 상당 부분 겹쳤고, 또 그가 겪은 일이 군대에서 내가 겪은 일과 여러 면에서 유사하게 여겨져서, 영화가 좋고 싫고를 떠나 개인적으로 각별하게 다가왔다. 군 복무를 마치기는 했지만 군대란 조직의 폐해를 나는 직접적으로 낱낱이 경험해보지는 못했다. 자그마한 예비군 중대에서 상근예비역으로..

독백/영화 2009.08.24

If I fell

복학에 앞서 생각은 점점 늘어가고, 마음은 지쳐간다. 그만큼 설레기도 하지만……. 더는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는 생각만 수차례. '내가 사랑에 빠져도If I fell in love'란 비틀즈의 노래 가사가 '내가 넘어져도If I fell'로만 들리는 나날들. 멀더, 넘어지더라도 괜찮은 거죠? 걱정 마요 스컬리, 외계인은 우리가 넘어지건 말건 신경 쓰지 않을 거예요…… 그래,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다 잘 안 되더라도 괜찮다.

독백/음악 2009.08.21

폭염/폭우

폭염 어제 그렇게까지 더우리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한 채 서울에 갔다. 시청광장에 도착했을 때는 정오에 조금 못 미친 시각이었다.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땀이 줄줄 흘렀다.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막걸리를 마시는 아저씨 몇 분이 보였다. 상주로 나와 있던 정치인 몇 명이 손을 꽉 잡아주었다. 더운 날 따스한 손이 그리 밉지는 않았다. 폭우 오늘 이렇게까지 비가 내리리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한 채 깨어나 줄곧 집에만 틀어박혀 있다. 홀로 점심을 차려 먹고 비 내리는 바깥 풍경을 내다보았다. 저녁도 홀로 먹게 될 것 같다. 집안에서 이렇게 혼자 끼니를 해결하다 보면 군것질거리나 음주로 식사를 대신하는 이들이 절로 이해가 간다. 허기는 무엇으로도 잠재울 수가 있지만, 외로움은 그렇지가 않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영화제에 별 관심이 없던 시절부터 한 번쯤 가고 싶어했던 행사다. 규모가 그리 크지 않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고, 음악이 중심이 되어 영화와 공연을 함께 관람할 수 있다는 점이 매혹적으로 다가와서 그랬다. 청풍호에서 열리는 야외공연을 보고, 그 근처에 있는 호텔에서 묵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으로 상영작 목록만 몇 번이고 쳐다보았던 때가 있었는데, 그 해 출품된 작품이 [원스]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결과적으로는 그때도 그렇고, 그 이후로도 가지 못했다. 여러 가지 부분이 걸렸지만 결정적으로 나의 발목을 잡은 것은 불편한 교통편이었다. 자가용으로는 내가 사는 지역에서 1시간 20분 정도 걸려 비교적 수월하게 도착할 수 있는 곳이지만, 대중교통으로는 시간도 그 배로 걸리는 데다..

독백/영화 2009.08.16

교차로2

발터 벤야민에게 "당신은 저의 아버지를 닮았습니다. 거의 항상 얄미울 정도로 적합한 말만 하고, 심지어 유연하기까지 하죠. 저는 아버지를 존경하듯 당신을 존경합니다. 그렇지만 아버지를 좋아할 수 없듯 당신도 좋아할 수는 없더군요. 어쩌면 훗날 저는 당신을 향한 사랑을 고백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당신이 저를 인정해줄 날은 영영 오지 않을 것 같네요." 홍상수 어린아이는 성욕에 무지하기에 가장 순수하게 자신의 욕망을 좇아가고, 어른은 순수해지고자 자신의 욕망을 놓고 저울질하다가 이도 저도 실패하고야 만다. 그러니 조금 편하게 살자, 그게 정답이다. 뭐 아니면 말고. 데이빗 린치 다른 그 어떠한 것의 도움 없이 오직 직관만으로도 절정에 이를 수 있다. 다만 그것은 직관의 천재에게만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