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백 140

여러 가지2

1. 영화제 때 보았던 몇몇 영화가 계속 생각난다. 특히 [매거진 갭 로드]는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한번 보고 싶다. 타르코프스키에 비견될 수 있을 만큼 정적이고 아름다운 영상으로 담아낸 홍콩의 모습은 몇 년 전에 가서 내가 보았던 것보다 훨씬 우아했고, 황홀했다. 감독은 니콜라스 친. 한때 영국 BBC에서 역사 다큐멘터리를 연출했고, 이 작품은 그의 첫 영화 연출작이라 한다. 내가 인상 깊게 본 부분은 감독의 역할보다는 촬영감독이나 미술감독이 공헌한 바가 더욱 컸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관련 정보를 더 찾아보고, 조금 더 성의 있는 감상문을 써보고 싶다. 2. 얼마 전에 별생각 없이 아멜리 노통브의 『앙테 크리스타』를 펼쳐들었다가, 책을 읽는다는 자각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몰입해서 단숨에 독서를..

여러 가지

1. 오랜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연락오는 사람이 많지도 않은데 누구인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도 못했다. 2. 낮술을 마셨다. 맥주 한 캔이었지만, 어쨌든 술은 술이었고, 기분이 안 좋아서 마신 것이었으니 더더욱 낮술다웠다. 곧 있으면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데, 오랜만에 여러 사람을 만나서 겪는 일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고, 그 모든 것이 다시 한 번 반복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확신이 드니 정말 괴롭다. 3. 꽤 오래전, 로만 폴란스키의 [피아니스트]를 무척 감동적으로 본 지 얼마 되지 않아 우연히 미카엘 하네케의 [피아니스트]란 영화도 그에 못지않게 좋다는 얘기를 듣고 DVD를 샀더랬다. 처음에는 도저히 이자벨 위페르가 연기하는 피아니스트에 공감할 수가 없었는데, 나이..

여러 가지(충무로영화제)

앞서 올린 충무로 영화제 관련 글은 거칠고 어쭙잖은 감이 있어서 영 개운치 않지만 그냥 당분간 놔둘 생각이다. 이렇게라도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면 억울해서 못 견딜 것 같다. 올해 최고의 화제작은 뭐니뭐니해도 대부인 것 같다. 극장에서 대부를 1편부터 3편까지 한 번에 볼 기회가 흔치 않을 테니. 하지만 나는 코폴라 감독에 대한 편견이 강해서 부러 예매하려 들지 않았다. [지옥의 묵시록]은 메시지만 좋은 영화, 바그너의 음악을 잘 사용한 영화... 정도라고 생각한다. 내가 지나치게 영화의 서사 부분만 중요시했던 시기에 본 작품이어서 더 나쁜 인상만 남아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를 포함해 알프레드 히치콕, 오손 웰즈 등 몇몇 전설적인 영화 거장의 작품은 좀처럼 좋아하기가 힘든데 왜 그런..

독백/영화 2009.08.29

충무로국제영화제 = 충무로동네영화제

충무로국제영화제에 다녀왔다. 국제영화제가 아니라 동네영화제 수준이었다. 1. 국제영화제의 셔틀버스라면 그 안에 최소한 2개국어(한국어/영어)로 정거장을 안내하는 시스템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 수준까지 안 되더라도 어쨌든 자원봉사자 한 명쯤은 버스 안에 타서 안내를 도맡는 게 기본 중의 기본일 것이다. 하지만 충무로영화제 셔틀버스 안에는 자원봉사자도 없었고, 안내방송도 없었고, 불친절하고 미숙한 운전기사밖에 없었다. 게다가 교통 및 날씨를 핑계로 툭 하면 늦었다. 셔틀버스 문제는 곧 각 상영관 사이의 거리의 문제다. 이번 충무로영화제에서 사용하는 상영관 수는 다 합쳐야 겨우 10여 개에 지나지 않는다. 요즘 웬만한 멀티플렉스 극장 한 곳의 상영관 수와 비슷한 것이다. 통째로 극장 한두 군데를 빌려..

독백/영화 2009.08.27

용서받지 못한 자

용서받지 못한 자 감독 윤종빈 (2005 / 한국) 출연 하정우, 서장원, 윤종빈, 김성미 상세보기 며칠 전 OCN에서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를 보았다. 군대에 적응한 남자(유태정)와 군대에 적응하지 않으려 했던 남자(이승영)의 대비를 통해 비극적인 이야기를 들려주는 영화였다. 이 영화 속 군대에 적응하지 않으려 했던 남자, 즉, 남자 같지 않고 얌전하고 타인의 상처를 신경 쓰는 이승영이란 인물의 여러 면모는 나의 모습과 상당 부분 겹쳤고, 또 그가 겪은 일이 군대에서 내가 겪은 일과 여러 면에서 유사하게 여겨져서, 영화가 좋고 싫고를 떠나 개인적으로 각별하게 다가왔다. 군 복무를 마치기는 했지만 군대란 조직의 폐해를 나는 직접적으로 낱낱이 경험해보지는 못했다. 자그마한 예비군 중대에서 상근예비역으로..

독백/영화 2009.08.24

If I fell

복학에 앞서 생각은 점점 늘어가고, 마음은 지쳐간다. 그만큼 설레기도 하지만……. 더는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는 생각만 수차례. '내가 사랑에 빠져도If I fell in love'란 비틀즈의 노래 가사가 '내가 넘어져도If I fell'로만 들리는 나날들. 멀더, 넘어지더라도 괜찮은 거죠? 걱정 마요 스컬리, 외계인은 우리가 넘어지건 말건 신경 쓰지 않을 거예요…… 그래,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다 잘 안 되더라도 괜찮다.

독백/음악 2009.08.21

폭염/폭우

폭염 어제 그렇게까지 더우리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한 채 서울에 갔다. 시청광장에 도착했을 때는 정오에 조금 못 미친 시각이었다.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땀이 줄줄 흘렀다.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막걸리를 마시는 아저씨 몇 분이 보였다. 상주로 나와 있던 정치인 몇 명이 손을 꽉 잡아주었다. 더운 날 따스한 손이 그리 밉지는 않았다. 폭우 오늘 이렇게까지 비가 내리리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한 채 깨어나 줄곧 집에만 틀어박혀 있다. 홀로 점심을 차려 먹고 비 내리는 바깥 풍경을 내다보았다. 저녁도 홀로 먹게 될 것 같다. 집안에서 이렇게 혼자 끼니를 해결하다 보면 군것질거리나 음주로 식사를 대신하는 이들이 절로 이해가 간다. 허기는 무엇으로도 잠재울 수가 있지만, 외로움은 그렇지가 않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영화제에 별 관심이 없던 시절부터 한 번쯤 가고 싶어했던 행사다. 규모가 그리 크지 않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고, 음악이 중심이 되어 영화와 공연을 함께 관람할 수 있다는 점이 매혹적으로 다가와서 그랬다. 청풍호에서 열리는 야외공연을 보고, 그 근처에 있는 호텔에서 묵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으로 상영작 목록만 몇 번이고 쳐다보았던 때가 있었는데, 그 해 출품된 작품이 [원스]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결과적으로는 그때도 그렇고, 그 이후로도 가지 못했다. 여러 가지 부분이 걸렸지만 결정적으로 나의 발목을 잡은 것은 불편한 교통편이었다. 자가용으로는 내가 사는 지역에서 1시간 20분 정도 걸려 비교적 수월하게 도착할 수 있는 곳이지만, 대중교통으로는 시간도 그 배로 걸리는 데다..

독백/영화 2009.08.16

교차로2

발터 벤야민에게 "당신은 저의 아버지를 닮았습니다. 거의 항상 얄미울 정도로 적합한 말만 하고, 심지어 유연하기까지 하죠. 저는 아버지를 존경하듯 당신을 존경합니다. 그렇지만 아버지를 좋아할 수 없듯 당신도 좋아할 수는 없더군요. 어쩌면 훗날 저는 당신을 향한 사랑을 고백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당신이 저를 인정해줄 날은 영영 오지 않을 것 같네요." 홍상수 어린아이는 성욕에 무지하기에 가장 순수하게 자신의 욕망을 좇아가고, 어른은 순수해지고자 자신의 욕망을 놓고 저울질하다가 이도 저도 실패하고야 만다. 그러니 조금 편하게 살자, 그게 정답이다. 뭐 아니면 말고. 데이빗 린치 다른 그 어떠한 것의 도움 없이 오직 직관만으로도 절정에 이를 수 있다. 다만 그것은 직관의 천재에게만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